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규리 Nov 29. 2023

가훈家訓의 중요성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 세 명과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고 있다. 우리의 요즘 화두는 ‘사는 문제’이다. 10대에는 대학입시가, 대학을 간 이후로는 연애가 고민이었는데 말이다.


특히 이번 11월 모임의 화두는 각자의 성격에 대한 것이었다.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까?”


누군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니 나머지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서 사수가 요청한 일을 대응하거나 일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업무 시간이 길어지고는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4당5락’, 즉 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속설을 철석같이 믿고 화장실에 숨어서 공부를 했더랬다.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새벽에 방의 불을 켜면 벌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을 가서도 이러한 ‘고됨’은 끝이 나지를 않는다. ‘취업’이라는 관문은 1학년부터 우리의 어깨를 조금씩 짓누르고 있었고, 학점 관리와 자격증 취득, 공모전 수상, 인턴 경험 등 취업에 수반되는 다양한 도장들을 수없이 깨야 했다.


직장은 더하다. 내 일에 대한 적응을 할 만하면 새로운 일이 주어지고, 퇴근할 때쯤이면 녹초가 되어 ‘이 일이 나와 정녕 맞았던가’ 하는 본질적인 고민을 할 틈새도 없어 보인다. 이러면서도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도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러한 레퍼토리의 흐름들을 모두 밟아온 우리들은 우리의 가훈家訓이 대체 무엇이었던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가훈에 기반한 삶을 살았온 것은 아닐까?


어릴 적 우리 가족의 가훈은 “항상 밝게 최선을 다하자”이다. 영어로는 Always stay positive and do your best. 정도로 번역될 듯한 이 말에는, 최고의 빈도 부사인 Always가 문장 서두에 배치되고 있다. 자주, 종종, 대부분도 아닌 '항상' 웃으며 최선도 다하라니! 어려운 상황에 웃는 게 일류라는 정신을 품고 있다.


언젠가 직장생활이 힘들어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가 떠오른다. 아빠의 진심을 다한 위로는 이랬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니? 우리 딸 파이팅!"


아아- 힘을 빼고 싶은 나날조차 힘을 주게 만드는 집안의 철학(!)으로 나는 힘 빼는 법을 여전히 잘 모른다. 그리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은 내가 외면과 내면이 강하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물론 그 착각은 내가 의도한 것이기도 하지만 가끔은 서글퍼질 때도 있다.


그렇다면 나와 성격이 거의 같은 M양은 어떠할까? M양의 가훈은 "근면·성실"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받고 집에 가자 아빠가 "근면성실로 하자."라고 급 제작(?)하셨다는 후문이다. 그 친구의 말로는 나와 유일한 다른 점은 '자기는 나처럼 밝게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3년 동안 옆에서 지켜본 M양은 그야말로 성실함의 대명사였는데. M양은 고등학교 시절 제일 먼저 눈을 떠 아침 자습을 시작했고, 정해진 분량을 성실하게 공부하며 자신의 패턴을 지켜나갔다. 지금도 야근을 불사하며 성실히 살아간다.


반면 우리와 성격이 가장 다른 S양의 가훈은 "인생은 얇고 길게~"라 했다. 그녀는 언제나 초연하며 경쾌하다. 수능을 마친 날 채점하던 교실을 금세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녀 역시 울었지만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며 쿨하게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를 시청하는 모습은 정말 호탕해 보였다. 친구 아버님은 언제나 친구에게 마지노선만 주셨다고 한다. “1등 할 필요는 없고, 이만큼만 면해라!” 힘 빼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가훈이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내가 가훈 때문에 이렇게 힘주는 삶을 살게 된 거 같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자, 엄마는 "그러면 이제 너희 집 가훈 만들어"라고 쿨하게 말씀하셨다.


사실 남편과 나는 우리만의 가훈이 있다. 결혼할 당시 반지에 새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라는 문구였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 삶을 만들어 가자는 의미이다.


이제는 원하는 방향에 맞게 나를 내맡긴 채 나아가는 연습. 타성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 내 결정에 조금 더 믿음을 가져보는 연습. 그렇게 새로운 우리 집의 가훈을 되새겨보기로 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하니 조금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호사로운 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