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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Nov 10. 2022

마음의 여유를 만드는 팁 ①

# 멍때리기

월요일에 출근할 때면 선배들은 나의 주말 라이프가 궁금한지 묻고는 했다. “요즘 뭐 봐?” 혹은 “주말은 어떻게 보냈어?”와 같은 질문들... 의례적으로 묻는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참 어려웠다.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한 날도 있었고, 놀러 다니기에 바빴던 날도 있었다. 나에게 그 대답이 유독 어려웠던 건 광고를 기획하는 사람의 주말은 광고업을 위해 영감을 받는 날들로 채워야 했을 것만 같다는 그런 의무감 내지 압박감이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내 주말을 온전히 대답한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몇 번의 부끄러움 끝에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유명하다는 유튜버의 방송을 챙겨보고,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전시회를 들르고, 독립서점에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영감을 강박적으로 내 곁에 두려고 했던 것만 같다. 그렇게 알게 되거나 생각하게 된 부분이 모여 색다른 광고를 기획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안의 진정한 호기심과 광고에 대한 열정은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주말마다 즐기던 콘텐츠들이 조금씩 재미를 잃고 스터디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알아야 할 셀럽은 왜 이렇게 많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채널에서 방영하는 예능은 왜 이렇게 많다니. 나에게 이 모든 작위적 '영감의 요소'들은 도움이 되었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술에 대한 내성이 점점 세어지듯, 나의 주말은 점점 계획을 완수하는 시간의 덧셈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눈길을 끄는 대회명을 신문에서 보았다. ‘멍 때리기 대회’였다. 그 당시 2회 혹은 3회 차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나에게 또한 이 행사는 매우 참신하고 새로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분명 게으름의 척도였는데 이런 비생산적인 행위를 겨루는 대회가 있다니!  물론 나는 이 대회에 임하지는 못했다. 하루하루 야근으로 바쁘던 시기였다. 하지만 멍 때리기 대회가 원활히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내심 안도했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야만 마음이 놓이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선물해 볼 용기가 생겼다.


뇌도 좀 쉽시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뜯어도 아이디어가 샘솟지 않을 때 나는 머리에 ‘Stop’ 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생각의 고리를 끊는다는 건 사실 참 힘든데, 한 번이 힘들지 계속하다 보면 나름 잘 되는 루틴이기도 했다. 스탑 모드의 나는 회사 15층에 있는 카페에 올라가고는 했다. 가만히 앉아 멍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저 멀리 있는 남산이 눈에 들어오면 남산을 본다. 잡생각이 밀려오면 내 멍의 기운이 이들을 몰아내리라 믿는다. 내 멍아, 내 잡념 좀 때려서 없애줘- 이런 어이없는 주문을 외우듯 조급함을 내려놓고 잠깐 뇌를 쉬게 한다. 생산적인 무언가를 생각하는 때보다 머리가 더 맑아지기만 했다. 혼란한 머릿속이 잠재워지면, 그다음 스텝으로 나가는 건 쉬워졌고, 이런 하루 10분 멍 때리기는 어찌 보면 카페인으로 뇌를 각성시키는 것보다 더 큰 각성을 주는 '고효율 휴식시간'으로 제 역할을 해냈다. 특히 하루 12시간 근무가 당연해지는 광고업계 사람으로서, 그 잠깐의 쉼은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정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쉬지 않고 일하는 부품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매일매일 우리는 너무 쫓기기만 하니까, 의도적으로 나를 비워주거나 놓아주거나, 아무것도 아니게 둘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비워야만 더 채울 수 있는 걸 모르고, 자꾸 채우려고 하는 우리들. 그런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시간이 정작 필요한 게 아닐까?


우리 휴식만큼은 나를 치열하게 하지 말고 그냥 쉬어주게 하자구요! 광고 일을 더 사랑하고 오래 일하려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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