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에게는 독특한 루틴 하나가 있다.
남편은 이 루틴을 일요일 아침에 행하기를 바라는 편인데, 바로 '제모'다.
사실 남편은 제모에 대해 처음에는 방어적이었다. 요즘도 제모 전 수염을 짧게 깎고 나오면 내가 사 온 제모기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긴장한다.
제모기를 사기 전 남편의 논리는 심플하지만 간결했다.
"아픈 게 싫어"
하지만 나의 끈질긴 조언과 회유 끝에 남편은 두 가지 길을 선택해야 했다. 피부과에서 전문 레이저 제모 시술을 받을지, 혹은 편안한 환경(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구매한 제모기로 케어를 받을지 고민해야 했다.
나는 제모기를 구매한 후 총 12주 프로젝트로, 주말이면 면도한 남편의 얼굴을 무릎 위로 불러들인다. 두꺼운 피부가 고통이 덜하기에 얼굴도 바깥부터 안쪽으로 들어가는 방향으로 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도록 한다.
남편은 몸은 큰 데 아픈 걸 무척이나 싫어해서 제모를 받기 전 나에게 연신 확인을 하는 편이다. 일전에 두꺼운 피부에 적합한 다리 제모용 헤드를 잘못 사용해 남편의 얼굴을 제모했는데 그때의 트라우마가 심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요즘은 먼저 맞는 매가 낫다며 연한 피부 순으로 제모를 해달라고 요청해 순서를 바꿨다.
인중 - 턱 - 볼 순이다.
제모를 마친 이후에는 스킨과 로션, 면봉 순으로 놀란 남편의 마음, 아니 피부를 진정시켜 준다. 스킨을 톡톡 두드려 건조한 피부에 흡수시키고, 앰플도 몇 방울 뿌려준다. 그리고 수분 크림으로 피부를 진정시킨다. 뭉친 목 마사지는 서비스다. 누운 김에 면봉도 꺼내 든다. 귓속을 한 번 파고, 다시 한번 파내고 건조한 귀에 바셀린을 발라 마무리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평안에 이른 남편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고마워!'를 해맑게 외치며 침대 밖을 빠져나간다.
이렇게 남편에게 고통 주고 약 주는 주말 아침의 시작.
남편의 굵고 검던 수염이 점차 연해진다. 남편이 면도날에 다쳐 피를 흘리며 나오는 일도 없고, 조금 더 잘생겨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