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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Feb 17. 2023

쫌! 감독님과 CD에게 맡겨주세요

광고촬영장에서 꽤나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한 가지. 콘티 보고까지 클라이언트 컨펌이 떨어졌는데, 현장에서 방향을 트는 장면이다. 현장에서 일부 클라이언트는 스스로 카피라이터가 되기도 하고, CD가 되기도 하며 본인의 아이디어를 아무런 필터링 없이 가감 없이 외치고는 한다.


이 대사 대신에 이 카피 어때요?

장소를 색다르게 바꿔보면 어때요?

모델분 표정을 다른 감정으로 한번 해봅시다


AE는 광고 기획의 총책임을 맡는 사람으로, 광고주-대행사의 소통창구 역할을 한다. Aㅏ.. E이것도 제가 하나요?란 뜻이기도.ⓒ조자까


기획 단계에서 전혀 논의가 없던 내용을 클라이언트가 에디슨에 빙의해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라는 명목으로 '요구'를 할 때면 AE는 참 난감하다. 이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감독,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전해야 하는 역할을 바로 AE가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는 누구나 답답하고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다.


크고 작은 요청에 모델도 감독도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광고가 짧게는 6초에서 15초라는 단초短硝 안에 메시지를 전하는 특성이 있기에, 0.3초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상업(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피가 한 줄이라도 늘어나면 모든 게 틀어지고는 한다.

그 카피를 완벽하게 따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느라 촬영시간을 몇 시간씩 지연시키기도 했으니까.


조금 연차가 쌓인 후에는 클라이언트가 터무니없는 요청을 할 때면 슬쩍 CD님과 이야기하여 "클라이언트를 다시 설득해 볼까요?"라고 말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선배들은 누군가를 어차피 설득해야 하는 문제라면 감독과 모델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이를 반영하지 못해 무능력한 AE로 클라이언트에게 비난받기보다는 '당신이 고집한 고놈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별로인지' 직접 보여주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이었기 때문이리라.


대부분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조금 더 좋은 광고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그런데 정말 똑똑한 클라이언트라면 사전작업 때 그런 방향성에 대해 교정을 해줬어야 했다. 현장에서 사사건건 새로움을 제안하는 클라이언트는 대부분의 경우 처음에 별 생각이 없다가 현장에 들어서니 '이런저런 본인의 생각들을 늦게나마 정리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때론 그런 뒤늦은 욕심이 감독과 모델의 의지를 떨어뜨리거나, CD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거나, 수많은 관련자의 일정을 해치는 일일 때가 많다. 특히나 카피나, 모델의 감정, 스타일에 대한 것들은 기획의 단계에서 논의되어야 하지 현장에서는 혼선을 빚을 뿐이다.


아마도 지금 어느 촬영장에선 "제가 해봐서 알아요.", "보고에 유리할 거 같으니 이것만 더 시도해봐 주세요."라고 요구를 할 테고, 현장의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답니다.라는 메시지를 고요 속에 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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