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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Feb 24. 2023

그럼에도 광고를 계속 하려는 이유

광고회사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오늘이(이게) 한계야'아닐까. 아무리 노하우가 쌓여도 매번 과제가 어려운 이유는 세상은 빨리 바뀌고, 알아야 할 건 늘 많고, 클라이언트의 과제는 브랜드가 놓인 상황이 어떠하든 그 자체로 ‘걱정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저녁모임과 사적인 인간관계를 포기해야하는 광고회사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애초에 광고를 택한 게 잘못이었을까?

 

그런데 그렇게 퇴사한 사람치고 업계를 떠난 사람은 거의 없다. 긴 여행이나 휴식을 다녀온 뒤 그들은 다시 광고회사로 돌아오거나, 프리랜서로 광고와 연관된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고회사만의 강력한 매력은 무엇일까? 우선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함께 선사하는 곳이 광고회사다. 그런 패턴이 관성처럼 몸이 배도록 만드는 장소다. 까마득하게 느껴진 온-에어가 현실이 되어 티브이에 나오고 길거리에 깔리면 그 순간 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잠깐의 순간을 위한 고통의 기간은 너무나도 길고 치열하다. 경쟁 PT를 준비하려면 우선 최소 한 달간은 저녁 약속을 비워둬야한다. 브랜드 분석에서부터 크리에이티브 도출까지 ‘내가 컨설팅회사에 온 것인지, 디자인회사에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야근으로 하루하루를 가득 채우기 마련이다.

 

거기에서 돌아오는 과실이 있다면 함께 밤을 지새운 동료들과의 전우애 정도. 층마다 야근하는 사람들이 상주해있으니,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지?”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가 위로하고, 가까스로 보이는 종전의 순간을 보며 희망을 되뇌이기도 한다. 마치 오랜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처럼. 그러다 승전 소식이 들리면, 얼른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나 살아있어' 알리고 긴 잠을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기에 캠페인을 마무리하고 남는 내 이름 하나에 내 성취와 기쁨이 담겨있다. 광고 소재가 라이브되면 ‘TVCF’라는 광고 사이트에 ‘만든이’ 정보가 업데이트된다. 제작자, 감독, AE, 카피라이터, 아트디렉터... 칸 옆에 적힌 전우들의 이름.

나도 이 프로젝트에 함께 했다는 작은 뿌듯함 또한 과실 중 하나다.

모든 광고 소재가 업로드 되는 TVCF 사이트 내 만든이 정보

또 작은 열매가 있다. 광고 소재가 방송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연락이 온다. “이 광고 잘 만들었더라” 하며 인증 사진과 영상을 보내고, 부모님도 주위 사람들에게 한 번쯤 지나가듯 자랑하시기도 했다. 우리 딸이 어떤 광고를 만들었는지, 이 광고를 만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그 고생과 애틋함을 알리려고 부모님 핸드폰에는 내가 만든 광고가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었다. 부모님께서 만드신 것도 아닌데, 그렇게 좋아하시고 티브이에 나오면 신나서 전화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참 즐겁긴 하다.

 

잠시 쉬고 있는 이 순간, 누군가 “너 다시 광고회사로 복귀할 거야?”라고 물으면 “아직은 생각 중”이라고 답한다. 그리고는 이 말을 덧붙인다. “광고 일을 할 때 행복감의 크기로 비교하면 내가 지금 즐기는 행복감의 크기는 미미한 것 같다”고. 행복의 빈도보다 행복의 강도에 더 심취해 있는 스스로를 나도 가끔 이해 못할 일이다. 동료들은 "어서 오라"며 저 멀리서 손짓한다.


지옥의 문에서 어서 들어오라고 따수운 미소를 보여주는 저승사자인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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