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한 문제 그리고 좌절감
면접 당일이 되었다.
오후 면접이어서 편하게 채비했다.
오전 11시, 자사고를 향해 떠났다.
자사고 정문에 도착했다.
내 또래 아이들, 그들의 부모님들, 붉은 자켓, 떨리는 입술, 그리고 불안한 눈빛
나는 그 속에 부모님과 함께 서 있었다.
선생님께 학생증을 보여 드리고 자사고 정문을 통과했다.
통과하자 내가 걸어가야 하는 아주 높은 언덕이 보였다.
그 높은 언덕은 내가 걸을 때마다 점점 더 높아졌다.
마치 면접에서 불합격할 거라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그 언덕은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딛어도 면접 대기실이 보이지 않았다.
흘러가는 시간을 천으로 삼아 온 우주를 감쌀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면접 대기실인 강당 앞에 도착했다.
강당 앞에 자리표를 확인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주위는 온통 경쟁자들.
그들은 하나 같이 무언가를 보고, 외우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읽고 싶어서 구매했지만 첫 30페이지만 계속 읽은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 법칙'
이 책을 읽으면 긴장감이 완화되고, 면접을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면접을 기다리며 떨리는 손으로 책을 넘겼다.
첫 번째 조가 들어갔다.
긴장감에 사무친 눈빛들
난 그들이 빨리 면접을 볼 수 있어 부러웠다.
두 번째 조가 들어갔다
세 번째 조가 들어갔다
....
책을 200페이지 보았다.
내 차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시간을 확인할 수 없었다.
핸드폰이 없었다. 시계도 없었다.
기다리느라 지쳐 있었지만 기다리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버텼다.
다시금 책을 한 장 한 장 읽기 시작했다.
50페이지 더 읽었을 때였다.
마침내 차례가 왔다.
읽었던 책을 덮고 가방을 싸는 순간
책을 덮는 소리, 중얼거리는 소리, 바닥을 울리는 또각또각 발소리.
조명은 유난히 밝았고, 같은 조 아이들의 뒷모습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손끝에는 책장의 감촉만이 남아 있었다.
긴장, 두려움, 희망, 불안을 가득 안고,
아이들의 뒷모습을 따라 면접 준비실을 향해 발을 뗐다.
면접 문제를 푸는 교실에 도착했다.
면접 문제지가 뒤집어져 놓여 있었다.
마지막 조원까지 도착해
바닥을 보고 있는 면접 문제의 고개를 하늘을 향해 돌렸다.
면접 문제를 마주했다.
'아 망했다.'
좌절했다.
과학 면접 대비 선생님을 원망했다.
지구 과학 문제가 나왔다.
중학교에서 공부했을 때, 가장 어려워 했던 파트였다.
그리고 면접 대비 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파트였다.
창밖을 보았다.
내 마음은 우중충한데 하늘은 맑았다.
평화로워 보였다.
내가 저 풍경을 내년에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무조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마음은 가벼워졌고, 면접 문제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 주기와 관련된 문제였다.
총 2가지 방식으로 면접 문제를 접근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방식은 각도를 사용하지 않은 간단한 해설과 깔끔한 풀이,
두 번째 방식은 각도를 사용한 복잡한 해설과 지저분한 풀이었다.
첫 번째 방식으로 풀면 답이 깔끔하게 나왔고,
두 번째 방식으로 풀면 답이 지저분하게 나와
면접을 할 때는 첫 번째 방식으로 설명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10분이 흐르고,
면접실로 향했다.
면접실에 들어간 후 면접 선생님들께 바르게 인사했다.
면접 문제에 대한 설명을 진행했다.
첫 번째 방식으로 면접 문제를 설명했다.
설명 이어가던 중 선생님들의 얼굴에 의문의 표정이 서렸다.
설명이 다 끝난 후, 풀이가 틀린 것 같으니 각도를 사용해 다시 풀라고 하셨다.
그 순간 어제 아침에 본 카페 글이 생각났다.
만약 면접 선생님께서 수학 면접 문제를 다시 풀라고 하면 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망했다.
왜 첫 번째 풀이였을까.
왜 두 번째 풀이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왜, 왜, 왜.
5개월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려 빠르게 2번째 문제 풀이로 풀고 설명했다.
찜찜하고 후회되는 기분을 안은 채
자소서 기반 면접을 했다.
자소서에 한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자소서 과학 파트에는 양자역학의 중첩 원리,
수학 파트에는 신경과학의 의식과 인공지능의 가능성 및 경사하강법에 대해 작성했다.
좋아하고, 관심도 많은 주제여서 모든 면접 질문에 대해 툭 하면 바로 대답이 나올 수 있게끔 열심히 준비했다.
질문: 양자역학의 중첩 원리란 것은 무엇인가요?
대답: 아 먼저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친숙한 사례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질문: 뇌의식 이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대답: 저는 전역작업공간이론과 통합정보이론이라는 두 뇌의식이론을 탐구했습니다. 전역작업 ...
질문: 경사하강법이 무엇인가요?
대답: 경사하강법을 아주 단순한 예로 먼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최고차항계수가 양수인 이차함수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이차함수의 극소점을 찾는 것이...
그렇게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던 와중
면접 선생님께서 시간이 되었다면서 대답하던 중간, 내 말을 끊으셨다.
순간 정신이 무너졌다.
내 대답이 이상해서 들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신건가?
그래서 중간에 끊으신건가?
내 수학 문제 풀이가 틀려서 떨어질 게 뻔하니
자소서 기반 면접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나?
면접 완전 망했나?
내 몸은 인성면접 준비실로 가는 중이었지만 마음은 아직 수학 면접실에 있었다.
그 때 나는 마음을 다 잡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