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잎 하나가 떨어질 때

마침내 나는 문을 열었다. - 자사고 면접 2

by 안헬


I messed up tonight, I lost another fight
Lost to myself, but I'll just start again - try everything




인성 면접 준비실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텁텁한 공기 속 종이와 흑연이 뒤섞인 면접실 특유의 냄새가 내 숨통을 천천히 조여왔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의 떨리는 눈빛, 이들을 환하게 비추는 조명.

학생들의 얼굴에는 집에 오랫동안 보관한 추억의 사진처럼 여러 감정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침울, 불안, 두려움, 환희...

들어온지 30초 정도 지났을까 마지막 학생이 들어왔다.


마지막 학생이 의자에 앉고 면접 풀 준비를 마친 직후

면접 감독 선생님께서 "이제부터 지문을 읽고 풀이를 작성해주세요"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책상에 놓인 인성 면접 지문을 펼쳤다.


주제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었다.

그 순간 내 중학교 시절이 레코드 속의 음악처럼 하나하나 재생되었다.

깨진 유리창 하나가 방치되면 주변이 무질서로 물든다는 이론.

중학교 때 읽었던 심리 책, 자기계발서에서 읽었던 구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레코드의 피날레가 흘러나오는 것처럼 면접 대기할 때 읽은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구절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을 유영했다.


떠오르는 문장들을 천천히 배열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어떻게 설명할지, 학교 학습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각 구절은 바람직하고, 적절한 답을 형성해갔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선생님께서 이제 이동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면접실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가 하나둘 들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점점 발자국 소리가 희미해져갔다. 애들을 뒤따라 인성 면접지를 챙기고, 면접실로 향했다.


인성 면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멀리 보이는 두 책상에 흰색 셔츠와 흰색 kf94 마스크를 쓰신 여자 선생님과 검은색 셔츠에 회색 패딩을 입으신 노년의 남자 선생님께서 앉아 계셨다. 남자 선생님의 오른편 창문을 바라보니 노을이 지고 있었다.

두 선생님께 바르게 인사하고, 붉게 물든 의자에 앉았다.

붉은 빛을 뿜고 있는 면접 문제지를 손에 든 채 풀이를 설명드렸다.

내가 생각한 답과 설명 도중에 떠올린 생각을 덧붙이며 자신 있게 풀이 설명을 진행했다.

그렇게 내 설명이 면접실 안을 수없이 튕긴 것 같을 때 설명이 끝났다.


전에 본 면접 때문인지 풀이 설명이 끝나고 어깨가 움츠러들었고, 입술이 떨렸다. 눈은 갈 길을 잃어 오직 면접 선생님만 응시했다.

하얀색 마스크와 검은 머리, 큰 눈동자, 흰 셔츠의 선생님은 손에 든 기록지를 바라보고만 계셨다. 그렇게 5초 정도 바라보시다가, 면접 선생님께서 눈웃음을 지으시며 자소서, 생기부 기반 면접으로 넘어가셨다.




질문이 마치 5년 동안 막힌 댐이 뚫린 듯이 쏟아져 나왔다.


질문:
생기부를 보니 학생은 책을 많이 읽으셨던데 왜 그러셨나요?
책을 선정하는 데에 기준이 있었나요?
가장 좋았던 책은 무엇인가요?
읽으면서 이 책은 아니다라고 생각한 책이 있었나요?
(좀 더 자세하게)
왜 책을 많이 읽으셨나요?
책을 통해 인식의 확장과 제 편향성 개선 및 다른 사람의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책은 제게 이런 인생도 있구나를 깨닫게 해주어 인식을 확장해줍니다. 예를 들어 책 1984의 주인공 같은 삶, 책 유진과 유진의 유진 같은 삶 등 저와는 다른 삶, 다른 시간의 삶, 다른 공간의 삶, 다른 이념의 삶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 편향성을 개선해줍니다. 여러 책을 보고 그 책 속에서 교훈을 얻으며 제가 가진 신념이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에쎄이 작품을 읽을 때, 자서전을 읽을 때 제 생각이 편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비문학책에서나 소설책에서나 작은 교훈부터 큰 교훈까지 아주 다양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책을 좋아하고, 이 때문에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




10분쯤 지나간 것 같다.


"면접 보시느라 수고했어요."

하는 선생님의 말씀이 내 귀를 통과했다. 창문을 바라보니 하늘은 붉은색과 보라색이 섞여 있었다. 4시 30분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면접실 문을 닫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면접 대기실에서의 삭막한 고요, 수과학 면접에서 흘린 땀방울, 연필과 함께 떨리는 내 오른손, 다시 풀라는 선생님의 목소리, 그리고 붉게 물든 인성 면접실의 풍경. 지난 5개월 간 노력하던 내 모습이 단편 영화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면접이 끝난 후 복도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적막했다. 재즈를 듣고 싶었다. 의자는 차가웠다. 겨울로 만든 술 한 방울이 스며든 것 같은 차가움이었다. 사실 의자가 차갑기보다 내 마음이 차가운 걸 수도 있었다. 그렇게 차가움에 대한 고민을 하며 만약 내 인생이 소설이라면 5개월의 노력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지 생각했다. 허무의 결말일까, 두려움의 결말일까, 아니면 환희의 결말일까. 결론을 내렸다. 아무 결말이든 상관없었다. 단지 면접에서 내 본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만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 그리고 의자에 앉는 소리.

각자의 막을 내려 면접이란 공연을 종료한 학생들이 하나 둘 인성면접실에서 나와 복도 대기실로 오기 시작했다. 한 친구는 합격의 막을 내린 듯한 표정이었고, 다른 한 친구는 불합격의 막을 내린 듯했다. 아마 불합격의 막을 내린 친구는 관객에게 질타를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지막 학생까지 오고, 면접 안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컴퓨터실에서 상산고 면접에 대한 설문 조사에 응하시면 됩니다. 그 후 아래 작은 강당으로 가서 면접 결석 확인서를 받으면 진짜 면접이 끝납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컴퓨터실에 가 컴퓨터를 키고 설문조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이전부터 무엇 하나 대충 한 적이 없던 나였기에, 설문 조사를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응했다. 그러나 글자 하나씩 정성스레 누르며 면접에서 느낀 내 감정들이 하나하나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인상 하나하나가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가슴은 텁텁해져갔고, 어깨는 움츠러들었으며, 목구멍은 내 감정을 삼킨 듯 콱 막혀왔다. 이미 끝난 면접이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끝내 설문 조사를 다 완수했다.


설문조사가 모두 끝난 후 작은 강당으로 가 선생님의 훈화의 말씀을 듣고, 면접 결석 확인서를 받았다.


면접이 진짜 끝났다.




작은 강당에서 나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저녁 겨울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옆 소나무의 가지에 까치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둘은 부부인 걸까 같은 가지 위에 붙어 있었다.

고독했다. 겨울 저녁 냄새를 맡았다. 붉은 빛이 맴도는 그 냄새는 여전히 낯설었다.


그 다음 5시간 전 올라왔던 언덕을 내려왔다.

분명 올라갈 때는 아주 큰 언덕이었지만 내려올 때는 아주 작았다.

작은 언덕을 내려오니 어머니께서 정문 앞에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는 오늘 오전 11시와 똑같게 검은색 스웨터에 베이지색 코트, 빨강과 검정, 초록 스트라이프 목도리를 입고 계셨다.


엄마와 마주하니 눈은 촉촉해졌고, 손과 입술은 떨리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내가 가진 가방을 들면서 말씀하셨다.

"가방 무겁지? 들어줄게"

"감사합니다."

"면접 기다리느라 힘들었겠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나오지 않을 줄은 몰랐어. 아빠는 기다리다 지쳐 차로 돌아갔고" 어머니께서 내 가방을 어깨에 들며 말씀하셨다.

"그래서 면접은 어땠니? 불합격한 거 같아? 표정이 안 좋아보이네"

떨리는 손을 패딩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애써 표정을 환하게 바꾸며 대답했다.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해드릴게요"




해가 지고 어두운 저녁, 부모님께서 예약하신 근처 서양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므라이스와 피자를 먹었다.

그 공간은 밖과 다르게 너무 아늑했고, 따듯했다.


저녁을 먹으며 부모님께 솔직히 말씀드렸다.

"면접에 떨어질 것 같아요... 인성 면접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수과학 면접에서 문제 풀이를 틀려 다시 풀었어요. 근데 다시 풀어도 답이 깔끔하게 나오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면접 선생님께서 대답 중간에 시간이 되었다면서 제가 하던 말을 끊으셨어요.."



부모님께서 투자한 시간들,
나를 케어해주시며 희생한 그 많은 날들,
투자 비용들



그 모든 생각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이 투자하신 시간, 비용에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아서, 다른 학생들보다 내가 너무 초라하게 보여서, 내 마음은 점점 위축돼 오직 죄송한 마음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림 속 얼굴들이 나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조명마저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갑자기 가슴이 턱 막혀와 잠시 숟가락을 내려 놓으며 말씀드렸다.


"저는 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부모님 말씀처럼 일반고나 갈 걸 그랬어요. 그냥 조용히 나대지 말고 고집부리지 말고 살 걸 후회되네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내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진솔하게 말씀드렸다.

모든 이야기를 들으신 후 부모님께서는 생각을 정리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10분 같은 10초가 지난 것 같았을 때,

부모님께서는 조심스럽게 한 마디씩 말씀을 이어가셨다.


"너는 우리의 보물이야."

"기 죽지 마, 너는 충분히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야.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실패도 경험이고, 실패를 통해서만 진정한 성공이 나오는 거야"

"자사고가 대수니? 일반고 가서도 잘하는 학생들 엄청 많더더라"

"항상 엄마와 아빠가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



부모님께서는 아주 따듯한 위로와 위안을 해주셨다.

그 말씀이 차갑게 얼려 있던 내 마음을 녹였다.

(어렸을 적, 슬픈 일이 있어 울었을 때, 아버지께서 남자는 인생에 세번만 우는 거라고 장난삼아 이야기하셨는데 그날만 세 번 넘게 울음이 나왔다.)




이후 상산고는 잊고 지냈다.

정확히는 이미 떨어졌다 생각하고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졸업식 축제 날, 춤 무대에 서자고 제안했다. 무슨 춤인지 물어보았다. HOT의 캔디였다. 승낙하기 전 춤과 노래는 어떤지 보아야 할 것 같아 캔디 춤 영상을 보았다. 캔디의 운율은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춤도 괜찮았다. 귀여웠고, 학생다운 춤이었다. 춤과 노래 모두 괜찮아 친구의 제안을 승낙했다.

이후 학교가 끝날 때마다 연습실에 친구들과 모여 함께 대형을 맞추며 춤을 췄고, 쉬면서 같이 수다를 떨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일반고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얻기 위해 수학, 영어 공부도 틈틈히 했다.


그렇게 공부하다 보면 가끔 면접 생각이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가라앉고 침울해졌지만 '일반고 가서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열심히 공부하고, 춤 무대를 연습하고, 가족과 따듯한 시간을 보내면서 지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댄스 무대 리허설의 날이 밝았다.

'오늘이 상산고 합격 발표일이었나?'

학교는 쉬는 날, 적막한 길을 따라 홀로 학교를 향해 걸어가며 생각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낙엽이 다 떨어진 휑한 나무들만 보였다. 내 왼편, 아직 떨어지지 않는 옅은 갈색의 작은 잎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 순간 바람이 불며 그 작은 잎은 여력을 다한 듯 떨어지고 있었다. 작은 잎 하나 떨어지는 소리가 온 세상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강당에 도착했다. 강당은 리허설 준비로 북적였다.

무대 리허설을 준비하며 보았다. 중학교 댄스 동아리가 추는 4minute의 '미쳤어, 엑소의 '으르렁'과

두 친구의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보컬과 피아노 연주, 또 한 친구의 발라드 노래까지.

행복해보였다.


그렇게 리허설 무대들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아마 오후 1시인가 2시였을 것이다.

리허설을 같이 준비하던 친구가

"00아, 상산고 합격했는지 지금 홈페이지에 떴어"

하고 말했다.


사실 같이 춤 무대를 준비하는 친구도 상산고에 지원했었다. 그 친구가 내게 알려준 것이다.

원래 오후 5시에 공개될 예정이었지만 앞당겨서 공개한 것 같았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만 같았다. 숨이 다시금 턱 막혀왔다. 예전의 수과학 면접실, 인성 면접실로 다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면접 종이 냄새, 흑연 냄새, 학생들의 떨리는 눈빛, 붉은 노을, 환한 조명.

그러고 보니 리허설을 준비하던 지금도 똑같았다. 학생들의 떨리는 눈빛, 환한 조명, 그리고 학교 특유의 그 냄새. 지금 당장 학교를 뛰쳐나가 집으로 가고 싶었다. 무대 리허설을 망칠 것만 같았다. 절망적이었다.


그렇지만 긴장된 마음으로 혹여나 합격하지 않았을까 기대를 했다.

새로운 작은 잎이 내 마음 속에서 점점 자라고 있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로그인을 했다.

뜨는 창을 하나 둘 없애며,

마지막으로 합격했는지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이 반짝였다. 하늘색과 파란색이 중간쯤 섞인 표가 보였다.

표 속에 수많은 검정색 글씨가 보였다. 그 아래 빨간색 글자가 보였다.


'합격'


내 눈을 의심했다. 잘못 본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핸드폰이 잘못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부모님께 전화했다. 지금 자사고 합격 결과가 나왔으니 확인해줄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1시간 같던 1분이 지난 뒤 부모님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00아 합격이야"


놀라웠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부모님께 감사하단 말씀을 전하며 친구들과 함께 합격의 즐거움을 나누었다.

물론 나에게 소식을 전해준 친구도 합격했다. 그래서 즐거움이 배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리허설이 끝났다.

리허설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try everything'을 들었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해준 노래. 그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내게 새로운 문이 보였다. 항상 그곳에 존재했지만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움츠려든 마음으로는 볼 수 없는 문. 나는 그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쥔 것만 같았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위를 향하며 지나온 순간들을 되돌아보았다. 면접에서 틀렸던 나의 풀이, 250페이지 읽은 조던 피터슨의 책, 적막한 분위기 속의 차, 그리고 길게만 느껴지던 길까지.


마침내 나는 문을 열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