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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연 Mar 24. 2022

영국 문화 맛보기

뮤지컬, 축구

2021년 초여름 즈음부터 영국 코로나 상황이 나아져 조심스럽게 time slot을 지정해서 박물관, 미술관도 다녀오고, 뮤지컬 관람도 할 수 있었다.

박물관, 미술관 입장료가 무료라는 게 신기했다. 물론 언제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donation 독려가 있었고, 아이들이 gift shop이나 그 안 카페 같은 곳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거의 없어서 정말 실질적으로 무료로 다녀온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해도 말이다. 

동네 미술관에서는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자원봉사로 설명도 해 주시는 정감어린 분위기가 좋았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박물관, 미술관을 다니면서는 영국이 얼마나 많은 문화재를 강제로 자기 나라로 가져 왔는가가 여실히 보이며 씁쓸해지기도 했고, 미술 작품들의 화려함과 미술관의 웅장함에 압도되기도 했었고, 세계의 굵직한 최초(특히나 교통 관련)를 만들어 온 자기네 역사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을 느끼며 그것이 세계 역사에 가져 온 다면적 영향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게도 되었다. 하지만 어딜 가나 아이들(영국에선 아이들이나 강아지 동반자들에게는 정말 친절하다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 그러했다)에게 관대한 그들의 문화대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친절 - 질문하는 아이들에게 정성껏 대답을 해 준다든지, 아니면 자기네가 먼저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하는 질문을 해 준다든지 - 을 베풀어 주고, 코로나 시대인 만큼 한정된 범위였지만 자기네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련 체험 - 손소독제를 비치해 놓고, 게임 같은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체험 등 - 을 하도록 해 주는 태도는 정말 좋았다.


박물관 등에서 느낄 수 있었던 영국인들의 자부심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이 1년 머무르는 동안 느꼈던 그들의 자부심이 도드라졌던 분야는 '영어', '뮤지컬', '축구'였다.


'영어'에 대해선 이미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의 차이, 특히 발음상 차이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만, 아이들의 초등학교에선 'neighbor'라는 철자엔 선생님이 친절하게 'neoghbour'라고 고쳐 준 흔적, 주차장을 표현하는 아이의 'parking lot' 표현에 British English로는 'car park'라 한다는 첨언 등을 볼 수 있었고, 영국인 지인은 특히나 'English'는 그 말 자체에서 'the language of England'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어디서나 줄을 서던 그곳에서 항상 눈에 띄던 'queue'라는 단어도, 'line'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내게는 처음에 생소하게 다가왔었다.


'뮤지컬'에 대해선 역시나 미국의 Broadway보다도, 'Cats'와 'the Phantom of the Opera' 등 뮤지컬 작곡가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배출한 자신들의 West End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다.

십수년 전 뮤지컬에 대해 거의 백지 상태에서 갔었던 미국 Broadway에도 뮤지컬별로 '전용극장'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아쉽게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국 West End는 '레 미제라블'은 Sondheim Theatre, '오페라의 유령'은 'Her majesty', '라이온 킹'은 Lyceum Theatre라는 전용극장 개념이 확실히 있었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이 공연되던 'Her Majesty' 극장에선 샹들리에가 몇 층씩 휙휙 날아다니고, 펑펑 터지는 효과음 하며, 전용극장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할 여러 효과들이 빛을 발했던 것 같다. 그리고 '레 미제라블'에서 자베르 역할을 하던 Bradley Jaden을 비롯해서 배우들의 실력도 뛰어난 것 같았다.

한 가지 놀랍고도 아쉬웠던 것은, 그때도 실내 마스크가 권고되던 시점이긴 했는데도 intermission에 나가서 '맥주'를 들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 원래 영국 뮤지컬 관람 시에는 그렇게 맥주 마시는 게 허용된다는데,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다, 아이들도 같이 관람하고 있었던 터라 그런 광경은 좀 충격이었다.


마지막으로 '축구'. 코로나가 심하던 2,3월 즈음에 명문구단들만 참여하는 European Super League라는 것의 창설 문제로 영국은 시끄러웠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코로나 관련 briefing을 할 때 어떤 기자가 그 문제를 질문하는 걸 보면서, 우리는 속으로 혀를 찼다. '지금 코로나가 이렇게 심해서 코로나 브리핑을 하고 있는데, 저런 질문을 하다니...' 하지만 보리스 존슨은 football에 대한 질문에도 답을 하겠다면서, 명문구단 등의 이름들에서 보듯이 그 이름에서부터 English Heritage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football의 이념에 명문 구단들만 모여 새로운 리그를 창설하는 건 맞지 않다고 답변을 했다. 


그리고 원래 2020년에 열리려다 코로나로 인하여 열리지 못했던 Euro 2020의 열기가 잉글랜드 전체를 감쌌다. 

6월 어느 주말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매치가 벌어졌던 때부터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로 구성되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GB[Great Britain], UK[United Kingdom]이라는 약칭을 쓰니 하나의 영국으로서의 소속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접해 본 런던 사람들은 스코틀랜드에 대해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은 했지만 아예 '다른 나라'(?)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다) 뭔가 열기가 심상치 않았다. 

스코틀랜드에서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까지는 꽤 먼 거리인데도 스코틀랜드 국기를 두르고, 전통의상인 킬트를 입고 원정 응원을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때가 코로나 델타 변이가 조금씩 늘던 때라, 솔직히 걱정이 많이 됐다. 그래서 속으로 '제발 비겼으면...그것도 0대 0으로...환호의 순간은 좀 위험하지 않은가' 생각했는데, 정말 내 바람대로 승부는 0대 0 무승부였다.


그러나, 그 다음에 잉글랜드인들이 나름 숙적으로 생각하던 독일을 이기면서부터, 런던의 분위기는 손 대면 데일 정도로 아주 이글이글 뜨겁게 달아올랐다. 

큰아이 친구 중에 독일인의 피가 섞인 혼혈아가 있었는데, 그 아이만 독일이 진 것을 아주 슬프게 생각한다고 했을 뿐, 런던은 그때부터 축제의 도가니였다. 잉글랜드 국기를 차에 붙이고, "우리가 독일을 이겼어!"라는 들뜬 표정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던 그 분위기는, 우리의 2002년 월드컵 때를 연상케도 했다.


그 후 우크라이나와의 경기는 내 기억으로 잉글랜드가 골을 많이 넣은 대승이었던 것 같다. 한국 엄마들끼리도,  Harry Kane이 잘 한다, Sterling이 빠르다, 개념있는 축구선수로 유명한 Marcus Rashford는 어떻다(Marcus Rashford가 아이들 급식의 질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걸로 알고 있다. 그 이후에도 인종차별 등에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항의했던 용기있는 선수라고, 아이들 학교에서도 그 사람이 학교 Asssembly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고 했다) 등의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덴마크와의 4강 경기. 그 경기는 평일 저녁에 있었고, 이웃 사람들도 모두 집에서 TV 시청을 하느라, 동네는 조용했다. 


그런데...작은아이네 같은 반 엄마들이 모인 whatsapp 단톡방에서, 반 대표 엄마가 자기 아이가 없어졌다는 다급한 톡을 올렸다. 사실 그 남자아이는 그전에도 한번 큰 숲에서 사라진 적이 있어서 그 엄마가 whatsapp에 자기 아이 못 봤느냐는 톡을 올린 적이 있었고, 같은 반 친구 아빠인 이웃이 찾아 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난 '어지간히 말썽쟁이인가 보네. 또 그애가 말썽을 피웠군. 어디 있겠지..' 하며 그냥 잉글랜드와 덴마크의 축구 경기를 보려 했다. 

하지만, 작은아이가 아무래도 맘이 편칠 않다며 우리도 함께 그애를 찾아 나서자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진지한 표정의 작은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고, 아이아빠와 큰애는 집에서 축구를 계속 보았다. 

동네라고는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을지 난감해 하는데, 작은애는 아마 그애가 뛰어 노는 걸 좋아하니 근처 숲 안의 작은 놀이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거기로 향했다. "ooo, are you there? Where are you?"를 외치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던 동네에선, 중요한 빅 매치가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듯이, 간간이 터져 나오는 함성과 아쉬움도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작은 놀이터에 아이는 없었다. 다시 그 아이 집으로 향하는 골목골목(무슨 무슨 Road, Way를 많이도 거쳤다), 밤 9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축구경기가 8시 정도에 시작했던 것 같으니, 1시간 가까이 동네를 헤맸나 보다)에도 아이를 찾았다는 연락은 없었다. 6월 하순 런던에서 밤 9시엔 해가 아직 지지 않았지만, 시계를 보니 나도 불안해졌다.


하지만 9시가 살짝 넘은 시각, 반갑게도 그 아이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 아이는 유대인이었는데, 가까이 사는 같은 반 유대인 여자아이 아빠가 차까지 몰고 가서 버스로 15분 거리인 쇼핑센터에서 아이를 찾았다 했다. (그럴 때 보면 유대인끼리의 연대의식이 참 남다르구나 생각되기도 했다.)

런던 버스와 지하철은 초등학생까지도 요금이 무료인데, 대신 초등학생들은 어른과 함께 이용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아이는 혼자 버스를 탔는데, 아마 버스기사가 일행이 있겠거니 하고 그냥 태워서 그 버스 종점인 쇼핑센터까지 간 것 같았다.


암튼 잉글랜드와 덴마크와의 경기는 제대로 못 봤고, 아이친구가 없어졌던 해프닝으로 기억되지만, 결과는 잉글랜드의 승리로, 'Football's coming home'의 노래가 아이들을 통해 우리집에까지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오 필승 코리아' 같은 국민 응원가였던 'Football's coming home'은 1966년 월드컵 우승 후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못했지만 축구의 종주국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표현한 노래였다. 


결국 이탈리아와 우승을 겨루게 된 잉글랜드는 그야말로 환호의 도가니였고, 결승전은 7월 어느 일요일에 열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BBC 기사에서는 어느 학교 교장 선생님이 (일요일에 잉글랜드가 우승할 수 있으니) 아이들에게 월요일엔 1시간 늦게 등교하라고 했다고 결정했다는 소식까지 보도되고,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Parent Mail을 통해 '우리 학교는 월요일에 평소처럼 예정된 시각에 등교합니다. 하지만, 지각하는 아이들도 나는 충분히 이해합니다'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Euro 2020 일정이나, 잉글랜드가 어디까지 올라갈 지 몰랐기에, 결과적으로 결승전이 열리게 된 날 우리 가족 이름으로 꽤 오래 전에 Royal Opera House의 공연을 예약해 둔 상태였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가까워 오고 있었고, 애써 예매한 표를 취소하기도 아쉽고, 경기는 저녁 때 시작하고 우리가 관람하는 시간은 낮 시간이니 괜찮겠지 싶어서, 그날 예정대로 Covent Garden에 있는 Royal Opera House에 갔는데...


지하철역 Leicester Square에서 내릴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거리응원을 하려고 단단히 준비한 한 무리의 젊은 남자들이, 지하철역에서부터 'Football's coming home'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응원의 외침을 같이 하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가니, 경기 시작시간은 멀었는데도 벌써부터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응원을 하는 것이 보였다. 

Royal Opera House 앞에선 작은 악단이 모여서 'Football's coming home'  연주를 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구경도 하고 있었다. 거기까진 평화로웠으나...


ROH에서 하는 공연을 관람하고 다시 Leicester Square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차도를 사람들이 다 점거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고함인지 응원인지 모르는 외침이 들려왔고, (영국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인데) 깨진 맥주병 조각들이 도로에 즐비하게 버려져 있었다. 그리고 Leicester Square 지하철역은 폐쇄되어 있었다.


아이들까지 데리고 나왔던 터라 깨진 병 조각들에 발 찔릴까 조심조심 걸어서, 인근 Charing Cross 지하철역으로 향했으나 거기도 폐쇄. 그리고 Covent Garden 지하철역도 폐쇄...집까지 걸어서 가야 하나...

간신히 Tottenham Court Road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다행히 거긴 열려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무사 귀가를 하면서 그 무질서함에 질린 나는, 이탈리아 팬들이 그런다는 것처럼 속으로 'Football's coming Rome',  결승전에서 이탈리아가 승리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그리고, 내 바람대로, 이탈리아가 우승했다!!!


실망하고 허탈해 하는 영국인 이웃들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얼마나 안도했던지...우승까지 하면 그야말로 나라가 뒤집어질 기세였고, 그로 인한 코로나 확산이 걱정되어 나로선 어쩔 수가 없었기에, 잉글랜드의 준우승에 그친 결과가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평소 예의 바르고, 속상한 티도 잘 안 내고 말을 부드럽고 완곡하게 하는 걸로 유명한 영국인들이지만, 축구에 관해선 글쎄요...평소 에너지를 너무 억누르다 축구할 때 모두 분출을 시키는 것인지, 알쏭달쏭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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