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았던 친절의 기억(2)
9월 초 어느 일요일, 아들의 피아노 선생님을 구하려고 M** studio에 trial lesson을 받으러 갔었다.
딸과 남편은 근처 놀이터에서 놀고 있고, 나와 아들만 들어가서 피아노를 쳐 보고 상담을 받고 나왔는데, 대문이 그냥 밀고 나가거나 간단히 열고 나가는 구조가 아니라 안에서 잠겨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너무나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 방금 전 상담을 하고 나왔던 studio의 벨을 누르니 아무도 답을 하지 않고, 그 studio에 전화를 해도 안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플랏 구조의 주택이라 다른 집에서라도 누군가 외출을 한다면 문을 열어 줄 텐데, 영국 온 지 얼마 안 되어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 집 벨(그리고 벨이 어디 있는지 눈에 바로 띄지도 않았다. 영국엔 벨이 없이 똑똑 두드리게 만든 동그란 고리가 달려 있는 집도 많다)을 누를 배짱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딸과 남편도 집앞에 도착했지만, 벨도 없었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영국 집엔 담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고, 있다 해도 그렇게 높진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집엔 담마저 다른 집보다 높았다. 그래도, 몸집이 작은 아들은 담을 넘어 밖으로 빠져 나가고, 안에 나만 있는 채 동동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큰 개와 함께 길 가던 어떤 긴 곱슬머리의 영국인 남자(영국인이 아니었을 지도 모르지만)가 다가오더니, 우리의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는, 그 큰 키에 밖에서 안으로 대문을 쿵 뛰어 넘었다. 자기 주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개가 짖고, 우리도 어리둥절해 있는데, 그 남자는 자기 허리춤에서 무언가 도구를 꺼내서 그것을 이용해 안에서 잠겨 있는 그 문을 열려고 했다. 그러더니 놀란 우리를 보고 씩 웃으며 자기는 도둑이 아니고 옆집에 사는 사람이고, 이 집 정원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쨌든 그 사람이 안에서 잠겨 있던 문을 열었고, 그 큰 개는 주인의 품에 안겼고, 나도 무사히 그 집을 빠져 나왔으며, 그 사람은 다시 갈 길을 갔다.
물론 그런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고 우리 집에서 멀기도 해서 그 studio가 아닌 다른 피아노 교습소를 다니게 되었고,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긴 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 모습은 런던의 지하철에서 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었고, 그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져 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