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았던 친절의 기억(1)
커피를 마시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입맛이 몹시 무딘 사람이라, 어디 커피가 맛있고 어디는 맛이 별로고 하는 것을 실감나게 느끼지 못한 채 살아온 사람이고, 사무실에서 습관적으로 늘 타 마셨던 믹스커피에도 별다른 불만이 없었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다시 마신 믹스커피가 왜 예전만큼 맛이 없을까 했고, 남편이 내려 준 커피마저도 입맛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남!겨! 버렸다.
그렇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커피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내셔널 갤러리 입구 쪽으로 들어가는 쪽에 있었던 가판대였는지 아니면 정식 까페였는지도 가물가물한, 이름은 더더욱 기억나지 않는 까페에서 작년 9월 초 주말에 takeaway(우리에게 익숙했던 takeout이 아니라 영국에선 takeaway라고 한다는 걸 알아가던 무렵)하여 마셨던 그 커피...
아마 오후 네다섯시 쯤 되어 그 까페에서 커피를 주문했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주문했었을 것이다. 까페 주인 여자분은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제 문을 닫으려 했다고 하면서, 그래서 아이스크림은 이미 정리를 한 상태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실망한 아이들의 얼굴을 본 그분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내셔널 갤러리 안의 가게에까지 뛰어 갔다 오시면서 아이들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다. 재밌었던 건 자기 아이스크림까지 같이 사 왔었다는 것. 9월 초였는데, 영국의 여름이 그렇듯이,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좀 뜨거운,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와 남편에겐 주문한 커피를 내 왔는데, 세상에나, 커피 맛(은 물론 다른 음식도)에 둔감한 내가 느끼기에도, 그리고 나름 맛에 대해 민감한 남편에게도, 그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잊을 수 없는, 최고로 맛있었던 커피. 광장에 쭈그리고 앉아 사람 구경을 하며 커피를 마시는데, 맛있어서 연신 감탄했었던 기억이 난다.
올해 들어 두 번인가 트라팔가 광장 쪽에 갔었는데도 그 까페에 다시 들르진 못했지만, 눈부시게 새파란 런던의 하늘 아래, 아이스크림을 들고 뛰어 오시던 그분의 이미지는, 맛있었던 커피와 함께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