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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연 Feb 14. 2024

2021년에 썼던 신앙 수기

가톨릭평화방송에 응모했으나 입상은 못했던 내 기록 보존을 위해

“In the name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미사의 좋은 점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양식이 같아서, 말을 잘 못 알아 들어도 미사의 흐름을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지금도 런던 에드워드 성당에서 토니 신부님께서 미사를 시작하시던 그 음성이 귀에 생생합니다.


코로나가 온 세계를 덮친 2020년, 남편의 연수로 영국 런던에서 1년 살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로만 가톨릭 성당이 있는 곳에 살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에, 낯선 이국 땅에서, 그것도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이었는데도, 집에서 그렇게 가까이 가톨릭 성당이 있다는 것이 참 든든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놓지 않고 품어주시는, 주님의 강하고 큰 손길이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코로나가 최고로 심한 곳 중 하나인 런던에 있으면서, 저희 가족은 한번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왔습니다.”

영국에서 돌아오고 난 뒤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면서, 마음 속으로 주님께 감사의 화살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봉쇄와 방역완화의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코로나 시기 영국에 있으면서, 매일 묵주기도를 드리고, 매주 목요일 유튜브 채널로 ‘성체조배’ 영상을 시청하며 주님께서 지켜 주시리라 믿었고 주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셨기에, 저희 가족은 건강하게 영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영국생활을 되돌아보며 주님의 자비와 사랑의 뜻을 되새겨 보면서, 영국의 성당을 중심으로 한 체험과, 또 한편으로 한국에서 다니던 성당과 여러 채널로 소통을 하며 제가 얻을 수 있었던 위로와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1. 어디서나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2020년 연말 영국발(알파) 변이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2021년 1월 초부터 잉글랜드는 봉쇄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가족이 함께 있었고, 필요할 때 외출을 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러 나가는 것 등은 다 가능했지만 낯설고 물선 곳에서 그런 상황을 맞이해서인지, 어쩔 수 없이 우울감도 찾아 왔습니다.


집에서 3분 거리인 성당에도 조심스러워서 못 나가던 그 시기, 묵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매일매일 cpbc 유튜브를 통해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를 돌아가면서 검색을 하고 영상과 함께 기도를 함께 드렸습니다. 세계의 성지들, 그리고 익숙하고 그리운 한국의 성지들을 영상으로 보면서 화면을 따라 묵주기도를 드리다 보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어떤 시기에서든 저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재의 수요일’엔 집 근처 성당에서 줌(zoom)으로 진행하는 미사에 아이와 함께 참석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가정에서 재의 수요일 예식을 하라고 하시면서, 서로의 이마에 십자 성호로 ‘축복’을 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과 달리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 아울러 ‘영광’(glorification)이라 표현이 되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사순은 부활과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은혜로운 시기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팬데믹 시기 맞이하는 사순시기라 아무래도 좀더 우울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영광스러움’을 힘주어 강조하시는 토니 신부님의 말씀에 어쩐지 힘이 났습니다.


게다가 영국에선 신자들이 재의 수요일 전날인 ‘Shrove Tuesday’(죄 사함의 화요일)을 팬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즐겁게 보내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팬케이크의 달걀은 창조(Creation), 밀가루는 삶의 여러 가지 요소(The Staff of life), 소금은 완전함(Wholesomeness), 우유는 정결함(Purity)을 뜻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저희 가족에게 위안을 주면서, 주님이 고난을 겪으시는 사순시기, 저희도 고난에 동참하면서도, 그것이 결국 주님께서 더 큰 기쁨과 영광을 마련해 주시기 위한 것이라는 깨달음도 얻을 수 있었던 소중한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봉쇄되었던 시기부터 방역이 풀렸던 귀국 직전까지, 목요일마다 cpbc 유튜브 채널로 ‘성체조배’ 방송을 보았습니다. 영국 시간으로는 주로 목요일 오후 2시부터 시청이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녀님들의 맑은 음색으로 부르는 성가와 기도를 들으며, 마음으로 성체조배를 함께 하였습니다. 어디서나 이렇게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시는구나 하는 감사의 마음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 나왔습니다.

     

cpbc 유튜브를 통한 간접적 만남보다 저희에게 조금은 더 직접적인 유튜브 만남도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엔 거의 활동이 없었지만, 2019년까지 아이들은 집 근처 성당 초등부 어린이 미사에 열심히 다니고 주일학교 활동도 했었는데, 바로 그 지도 신부님이셨던 보좌 신부님(최영진 그레고리오 신부님)께서 직접 무반주로 노래하시는 유튜브 채널을 알게 된 것입니다. 

코로나 이전 아이들의 어린이 미사에 함께 참례를 할 때면, 미사 시작의 성호경을 ‘삼위일체’ 노래로 하는 게 참 좋았었습니다. 그냥 습관적으로 미사 시작하며 긋게 되는 성호경이 아니라, 천천히 ‘성부’, ‘성자’, ‘성령’을 부르며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경배를 드리러 왔음을 아뢰는 노래를 하며 마음을 다잡게 되는 과정이 ‘미사’의 의미를 곱씹게 되는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바로 그 ‘삼위일체’ 노래가, 보좌 신부님께서 개설하신 유튜브 채널을 통해 친숙한 육성으로 흘러나오는 걸 영국에서 같이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릅니다. 코로나 이전 아이들은 주일학교 여름 캠프에도 참여했었는데, 그때 다른 친구들과 합창하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또한 보좌 신부님의 맑고 정성스런 음성으로 유튜브 채널 목록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반가운 그 노래를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따라 부르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역시나 주님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국에서든 영국에서든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런던 성당 생활그리고 아들의 첫영성체부제님의 신앙

코로나 상황에 따라 영국에서는 미사를 직접 드릴 때도 있었고, 유튜브 미사를 드릴 때도 있었습니다. 

미사를 직접 드릴 때는 정통 영국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 사는(런던 인구의 거의 절반이 이주민 출신이라 했습니다) 런던의 특성상, 늘 색지에 프린트된 영어 미사 통상문이 배부되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가 심했을 때는 사전에 웹사이트를 통해 미사참례 예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사의 풍경은 우리나라 미사와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선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작은 성당이라 그랬는지, 복사가 눈에 띄지 않고 종신 부제이신  앤서니 부제님이 미사에 함께 입장과 퇴장을 하셨습니다. 앤서니 부제님은 평생 교사로 일하셨고, 부인과 사별하신 후 종신 부제(permanent deacon)가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 부제님은 물론이고 독서나 보편지향기도를 하러 신자들이 제대에 올라 갈 때 그냥 허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토니 신부님은 2022년에 현직에서 물러나실 것으로 예정된 할아버지 신부님이셨고, 앤서니 부제님 역시 손주들이 있는 할아버지이신데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한쪽 무릎을 함께 꿇으시는 모습이 참으로 경건하게 보였습니다.


또, 평일미사든 주일미사든 사도신경 대신 항상 “I believe in one God.”로 시작하는 니케아 신경을 바쳤습니다. 사도신경보다 조금 길었지만, 의미를 천천히 생각하면서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에 해당하는 “I look forward to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world to come.”까지 미사통상문의 기도문을 다 읽던 모습은 마치 모두들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림 속에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가장 특이했던 부분은, 보편지향기도의 마무리를 ‘성모송’으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편지향기도를 한 뒤 맨 마지막엔 항상,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같이 기도하시기를 청하면서 성모송을 함께 바쳤습니다. 성모성월 때 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미사 중에 늘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기억하고 청원함으로써, 평소에도 기도를 하면서 더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저희에게, 주님의 뜻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주님께서는 저희 아들 야고보가 그곳에서 첫영성체를 하는 큰 축복을 주신 것과, 앤서니 부제님께서 가족을 잃으시는 고통을 당하셨음에도 담담하고도 의연하게 사목 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본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희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 근처 성당에서 첫영성체를 사정상 하지 못하고, 코로나로 성당활동이 정상화되지 못했던 4학년 1학기를 마친 후 영국에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만 5세부터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영국 학제상 아들은 그곳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초등 마지막 학년에 아직 첫영성체를 하지 않았다 하니 성당의 교리 담당 수석 교사 Alvaro(Chief Catechist)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서 주셔서 교회력으로 새해 가 시작되는 대림 1주일부터 교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첫영성체 교리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년 이상 주일학교(Sunday school)에 다녔다는 증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다니던 성당에 연락을 하게 되었는데,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렸음에도 초등부 주일학교 지도신부님이신 보좌 신부님께서는 흔쾌히 증명서를 작성해서 스캔 파일을 보내 주셨습니다. 첫영성체반 아이들은 전부 20명 정도였는데, 코로나가 심할 때는 줌(zoom) 교리로 진행되었고, 방역수칙 완화에 따라 나중엔 성당 뒤편 교실에서 대면 교리를 받았습니다.

11월부터 시작하여 2021년 6월 첫영성체를 받기까지 6개월여 동안 주일에 ‘I belong’이라는 첫영성체 교리 교재를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의 모습은, 저희 가족의 런던살이에 있어 늘 큰 힘이고 기쁨이었습니다.

 ‘I belong’ 교재는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각 장의 순서는 미사 전례의 핵심 주제에 따라 배치되어 있었고, 각 장마다 구약성경 내용 한 구절과 신약성경 내용의 한 구절이 서로 연결되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제1장 ‘아버지 하느님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에 구약 창세기 중 천지 창조의 내용과, 신약 중 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내용 및 예수님의 세례 내용이 함께 소개되어 있고, 제2장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Lord, have mercy)에서는 구약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짓는 내용과 신약의 돌아온 탕자 내용이 함께 연계되어 소개되어 있는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교재의 내용이 구약에서부터의 하느님의 약속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되는가로 연결되는 방식이 짜임새 있게 잘 구성되어 아들의 신앙교육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부활절을 앞두고 첫영성체 교리반에서 부활의 의미를 담은 그림들을 모아 성당 홈페이지에 게시도 했고, 첫영성체 교리 기간 동안 고해성사도 두 번 받는 등의 과정을 거치며, 아이가 주님께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허락하신 것, 그것은 저희의 영국 생활을 돌이켜 볼 때 정말 잊을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이자 축복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앤서니 부제님이 보여 주신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앤서니 부제님은 결혼을 하셨었으나 종신 부제의 서약을 하시고 사목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셨는데, 가끔 강론 시간에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다는 돌이 갓 지난 손자 올리버(Oliver)의 이야기를 하실 땐 귀여운 손주에 대한 사랑에 넘치는, 평범한 할아버지셨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슬프게도, 이스라엘에서 부제님의 아들 가족이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가장 나이 어린 손자 올리버는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좀더 큰 손녀 아이는 다리를 크게 다쳤으며, 아들과 며느리 또한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당 교우들은 크게 놀랐고, 부제님의 아들 가족이 그렇게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에 믿기지 않아 했습니다. 부제님은 일단 이스라엘로 급히 떠나셨고, 거기서 마음 아프게도 손자 올리버의 장례미사를 치르고 좀더 가족들을 지켜 보시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돌아온 부제님은 의연히, 신자들이 걱정하고 기도를 드려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손녀를 비롯한 가족들은 계속 회복될 것이라 믿는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손녀는 휠체어를 타고 조금씩 움직이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하게, 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이끌어 가시면서 강론도 하시고, 복사의 역할도 하시고 사목 활동을 이어 가셨습니다. 성당에서 하는 지역 축제 같은 행사에서 하프 마라톤에도 참여하시는 등 가족을 잃은 슬픔이 적어도 겉으로는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 삶을 봉헌하신 성직자에게, 어째서 주님은 저런 슬픔을 주시는가’. ‘부제님은 정말 주님이 원망스럽지 않으실까.’

신자들은 그런 생각들을 했지만, 조용히 부제님을 위해, 그리고 부제님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제님은, 인간적으로 당연히 큰 고통 중에 있으시면서도, 주님께 대한 강한 신앙 속에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소장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미술관에는 에르트 드 겔더(Aert de Gelder)의 ‘시메온의 찬가’(Simeon’s Song of Praise)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시메온이 생전에 구세주를 보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장면을 그린 아름다운 그림인데, 거기서 성모님께서는 조용히 눈을 감고 간절히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계시고 계십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메온은 성모님께, 이 아기로 인하여 당신의 가슴은 예리한 칼날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 예언을 합니다. 그때 성모님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저는 가족을 잃은 큰 슬픔 속에서도 묵묵히 기도하고 사목 활동을 하시는 앤서니 부제님의 담담한 모습에서, 문득 위 그림 속의 성모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부제님과 같은 그런 큰 고통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사는 것이 힘에 부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모으신 성모님처럼, 앤서니 부제님처럼, 그렇게 주님께 기도하면서 영광 속에 실현되실 주님의 뜻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깊은 울림을 주신 부제님의 신앙의 힘을 보면서, 신자들은 감동 속에 더욱 열심히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3. 다시 돌아와서주님의 은총 속 딸의 첫영성체

1년간의 런던 생활을 건강하게 마치고, 저희 가족은 다시 원래 다니던 집 근처 성당 공동체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3학년 딸아이가, 9월 한 달 간 주 2회 평일미사와 기도 생활의 준비 기간을 거쳐 10월 한 달 동안 첫영성체 교리를 열심히 하고, 10월 말 첫영성체를 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물론 학원 등은 그 기간 동안 쉬어야 했고, 직장맘으로서 주 2회 평일 저녁미사에 딸과 함께 참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딸아이가 묵주기도 성월에 조용히 성당 성모상 앞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는 감동스런 모습도 보고, 첫영성체를 받은 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평일미사에 가자고 저를 조르고, 어린이 미사에서도 전례부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은 엄마로서 저를 흐뭇하게 하는 광경입니다. 


제가 저의 어머니로부터 신앙을 물려 받고, 어떠한 순간에서든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보고 자랐듯이, 저도 아이들에게 삶의 등불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이어 줄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래 왔는데, 주님께서 이렇게 이끌어 주고 계시는구나 새삼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어린이미사에서 성가 반주를 하게 된 아들은, 영국에서의 신앙생활을 ‘가랑비에 옷 젖듯 신앙이 나에게 스며든 시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누가 어떻게 인위적으로 이끌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석에 끌리듯이, 아이들이 삶 속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뜻에 따라 살게 되기를 늘 기도합니다. 

    

영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성가 중 “Be still for the presence of the Lord”라는 성가가 있었습니다. ‘주님의 현존에 그저 잠잠하라’ 정도로 번역될 제목일 텐데, 특히 제가 좋아하는 대목은 2절의 “Be still for the glory of the Lord, Is shinning all around, He burns with Holy fire, With splendor He is crowned”라는 구절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거룩한 불에 불타고 계시면서, 영광 속에 관을 쓰시고, 온 누리를 밝힌다는 그 영광을 노래한 구절에서, 코로나로 힘든 우리 모두와 언제 어디서든 함께 하시면서, 결국 빛으로 오실 주님이 느껴집니다. 

또 하나의 성가로 영국에서 알게 된 성가 중 “Here I Am, Lord”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주님의 빛을 백성들에게 가져다 줄 이를 찾고, 그에 응답하는 내용의 가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성가의 가사처럼, 그렇게 주님의 현존과 영광에 고요히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 그리고 사무엘과 이사야가 그러했듯이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Here I Am, Lord)라고 응답하고 기도하면서, 이 코로나 시기의 신앙을 지켜 갈 수 있기를 바래 봅니다.

어디서든 저희를 지켜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저희를 구원해 주심을 믿습니다.

주님의 강하고 부드러운 손으로 저희를 늘 살펴 주시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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