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 #아버지
칠순 기념으로 아버지만의 노래를 제작하기 시작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간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생신이 있는 3월 안에 레코딩은 물론이요, 음원 및 CD 프레싱까지 다 마쳐 있어야 했다.
작곡가인 친구에게서 곡을 받고 편곡에 반주 녹음까지 다 마쳤는데, 문제는 작사였다.
아버지의 인생을 담은 곡이라 함부로 가사를 적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소스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을 시도했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인터뷰를 통해 상대의 소스를 얻는 일이니까.
내가 누구인가. 강연을 넘어 그 사람의 삶을 코칭하는 전종목 코치 아닌가.
조심스럽게 인생에 대해, 철학과 신념에 대한 질문을 드렸다.
이윽고, 입을 여시는 아버지. 한 남자의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오진 않았다...
"뭘 그렇게 자꾸 묻냐. 전문가한테 맡기면 알아서 해 주는 것 아니냐? 저번에 말해 줬는데 또 적으라고?"
... 가족과는 일하면 안 된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제가 그 전문가거든요...'
하긴 효준이가 나한테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고 생각해보니,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겠구나 라고 공감하긴 했다.
어쨌든 작사를 하지 않으면 노래는 완성이 안 되니, 툴툴대는 아버지께 그래도 아주 조금이나마 소스를 받았다.
평생 들어온 아버지의 철학 + 새로 얻은 소스, 이 정도면 가사는 금방 만들겠지!라고 나는 야심 차게 작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문학과 창작에 소질이 있다고 평소 자부했던 내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역시...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야. 돈 주고 맡겨야겠다...'
그래도 기왕 빼든 칼 뭐라도 썰으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초안이라도 적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또 깨달음을 얻었다. 칼 빼어 든 게 뻘쭘하면 그냥 다시 집어넣는 게 맞다는 걸.
내가 봐도 졸작인 가사들을 다 집어던져버리고, 밖에 나가 작곡가 친구가 준 음원을 들으며 걸었다.
수십 년을 지켜본 아버지의 인생, 그의 철학...
나는 엄마와 누나를 잃은 것이지만, 그는 아내와 자식을 잃었지...
만약 내가 아내와 효준이를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텐데...
아버지는 어떻게 버텨내신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버지로서가 아닌 한 남자로서, 한 사람으로서의 아버지에 대해 공감하다 보니
쓸만하다고 느껴지는 가사가 조금씩 써졌다.
'그래, 작사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
아주 일부분이지만 음에 맞게 가사가 구성이 되었고, 작곡가도 꽤나 훌륭하다며, 음에 맞춰서 이렇게 적기 어려운데 잘했다는 말을 해줬다.
덕분에 자신감이 생긴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아버지와 누나가 함께 있는 3인 카톡방에 공유했다.
밀려오는 감동 때문인지 두 사람은 메시지 옆 숫자가 사라진 뒤에도 답이 없었다.
잠시 후, 누나는 자신의 감동을 담아서 이렇게 메시지를 줬다.
"너무 우울한 것 아냐? CCM이냐?"
아버지는 자신의 소스로 완성한 가사이니만큼 만족!... 을 못 하셨나 보다.
"우리 합창단에 글을 잘 쓰는 작가분이 있는데, 거기에 맡겨보겠네."
...
그렇게 3월 완성 프로젝트는 물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