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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목 Dec 19. 2021

한 판만...아...아냐...나가자ㅠㅠ


'그래, 나가자...'




고열에 몸살 기운을 호소하는 아내를 종일 쉬게 한 토요일.




강의와 회의, 해외 콘텐츠 교육으로 한참 지쳤던 금요일의 피로는 호소할 곳이 없었다. 내겐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주니어가 있기 때문에.


점심 먹고 한참을 놀아준 덕인지 녀석의 관심은 요새 한창 빠져있는 포켓몬 딱지놀이로 향했다. 앗! 내게 틈이 생긴 것이다.




간만에 롤이라도 한 판 해볼까?




한 때 꽤나 알아주는 게이머였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손이 안 따라주는 허접이 되었지만, 그래도 게임에 대한 열정만은 여전히 프로게이머인 나다.




몇 달,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더블클릭을 하자 업데이트가 진행된다. 영겁의 시간같은 업데이트가 다 되고, 마침 접속해있던 지난 날의 전우들이 어쩐 일이냐며 반갑게 귓말을 날린다.




아직 거실의 작은 친구는 피카츄와 이브이의 대결을 주선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그래, 아빠도 오랜만에 협곡에서 대결 좀 해보자!




하드캐리. 말 그대로 삽시간에 게임을 휘어잡았다. 눈을 굴리며 적을 괴롭히는 캐릭터로 온 전장을 휘어잡았고, 오랜만에 쉬운 승리를 맛본 늙은 전우들은 ㄱㄱ를 외치며 다음 게임으로 진입을 재촉했다.




하지만...한창 재밌게 놀던 아들녀석이 창 밖에 하얗게 쌓인 눈과, 눈치없이 나와서 눈놀이를 하는 청년 둘을 보고야 말았다.




"아빠, 사람들이 전~~~부 나와서 눈놀이를 하는데요?"




'...전부는 무슨...딱 둘이다...이 놈아...'




"그래, 근데 춥기도 하고...저녁 먹고 나가자. 그 때 더 많이 쌓였을 거야. "




...차라리 나가고 싶다고 떼를 썼으면 반항이라도 좀 했을 텐데, 한 게임이라도 더 했을 텐데... "네" 하고 대답하며 순순히 돌아서는 녀석의 뒷모습을 봐 버렸다.




"담에 봅시다."




전우들에게 짧게 메시지를 남기고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게임에서 짧게나마 눈을 굴렸으니, 현실에서도 굴릴 차례다.




"얼른 옷 입어. 나가자."




함박 웃음을 짓고 옷을 챙기러 우다다 뛰어가는 아들에게


"뛰지 마, 아랫집 전화온다!" 라고 버릇처럼 외치며 나도 웃는다.




며칠 전 아내가 산 눈오리 집게와 장갑, 목도리까지 단단히 챙겨 나가 눈싸움도 하고 눈모양도 만들며 한참을 놀았다. 못생겼지만 착해보이는 눈사람도 하나 만들었다. 아들 녀석 기분이 좋아보인다. 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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