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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목 Nov 16. 2022

행복한 어린시절의 힘

아들 생일, 새로운 다짐


내가 없는 틈에 도착한 생일 케이크로 제3차 생일 축하식을 거행한 모양이다. 참 좋은 엄마를 둔, 복 받은 녀석이다.



어릴 적 화목한 가정에서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했던가.




책을 쓰느라 돌아본 내 과거, 말하자면 어머니 사후 몇 년은 지독히 아프고 외로운 나날이었다. 의지할 곳은 오직 작은 누나뿐이었을 정도로 위태로운 시절을 보냈다.




슬픔을 외면하고 억누른 채 거짓된 밝음을 연기하느라 내 마음은 만신창이였고, 텅 빈 집이 싫어 선택한 친구 놈들과 보낸 시간에 했던 건 주로 치기 어린 비행이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거나 음악 cd나 과자를 훔치며 시작된 비행. 반항이 목적이 아니었지만 일탈을 하며 느껴지는 스릴이 좋았던 것 같다. 훔친 물건을 친구들과 나누며 우쭐해하기도 했다.




6학년 때였을까? 친구 놈과 함께 백화점 음악코너에서 cd를 훔치다가 처음으로 붙잡혔다. 이후 친구 엄마가 오셔서 아들 녀석과 나를 인솔해 가셨다. 친구는 손바닥이 매끈해질 정도로 싹싹 빌었고, 아주 많이, 아주 세게 두드려 맞았다. 한참을 타작하시던 친구 어머니께서는 내 사정을 뻔히 알고 계셔서였는지, 우리 집에 따로 알리지 않으셨다. 다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잠깐 혼을 내신 후 저녁밥을 차려 주셨다.




나는 차려 주신 밥을 우물거리며 가족들이 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모르게 서럽고 아쉬웠다. 등짝을 얻어맞으며 엉엉 울면서 싹싹 비는 친구가 부러울 만큼 나는 외로웠다.




그렇게 3~4년 정도 방황 아닌 방황을 했다. 딱히 심하게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늘 가슴속에 불만이 가득했고, 외롭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 사후 건강 악화, IMF와 재혼 등 고난을 이겨내느라 정신없으셨던 아버지, 엄마 역할을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어리고 상처가 많아서 분위기를 오히려 망쳤던 우울증 걸린 새어머니, 공부에 더 매달렸던 큰 누나.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때에 나까지 챙기느라 애썼던 둘째 누나. 모두 외줄을 타듯 각자 버티기조차 힘든 시간 들이었을 테지. 하지만 만 10살 남짓의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상실이었다. 슬픔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의지할 존재가 없다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게다가 장례식 때부터 연기한 거짓 웃음 때문에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던 감정들이 곪아버렸다. 애정결핍처럼 언제나 외로움에 몸부림치게 만들었고, 감정조절을 어렵게 했다. 외로움이 극에 달했던 대학시절에는 일상생활이 힘든 지경까지 이른 적도 있었다.  




그런 시간을 무사히 지나 보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그러니까 딱 10년의 시간 덕분인 것 같다. 화목한 가정에서 받았던 충분한 사랑, 완전한 안정감.




친구들이 선을 넘는 비행을 하려고 하거나 가출 모의를 할 때 나는 단번에 거절할 수 있었다. 내게 있어 가족은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거니까. 내가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가족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애초에 내 거짓 웃음의 목적부터가 가족을 지키기 위한 마음이었지. 그래. 사무치도록 그리운, 행복했던 어린 시절, 그 덕분에 수많은 상실을 겪으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나 보다.




딱 서른 살 차이 나는 아들. 녀석이 지금 내 나이가 되어, 지금의 내가 그랬듯 ‘엄마 아빠와의 행복한 시절 덕에 잘 살아올 수 있었다.’라는 소감을, 건강한 상태로 직접 듣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요 정도는 바라고 노력해도 괜찮겠지?




위대하고 훌륭한 아빠는 못 되더라도, 사랑을 많이 주는 다정한 아빠, 오래오래 함께 하는 건강한 아빠가 되고 싶다. 그리고 참 좋은 엄마인 아내를 꼭 잘 지켜내 주고 싶다.



어디서 배워왔는지 아내에게 중국어로 대뜸 쪽지로 사랑고백을 다 한다 ㅋㅋㅋ엉뚱하고 재미있는 녀석이다.


효준아! 아빠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빠도 힘낼게!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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