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기 위해 꼭 만나야 할 한 사람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나는 이것저것 참 많이 서툰 아이였다.
말하기나 계산 등의 영역은 또래보다 뛰어났지만, 기본 생활적인 부분에서 많이 미숙했다. 특히 대인관계가 많이 어려웠다.
툭하면 울었고, 먼저 말을 걸지 못하면서도 혼자 있는 게 외로웠다.
학교 마치고 만나는 엄마가 그렇게나 반가울 수 없었다.
나는 참 여리고 서툰 아이였다.
이후 어머니를 암으로 잃고 밝아진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불안했다.
특히 교우 관계에서 의존적이었다.
여전히 민감하고 여렸지만 아닌 척하느라
쉽게 상처받고, 표현을 잘 못해 화를 냈다.
당시 친구들은 나에 대해 ‘안 그래 보이는데 잘 삐진다.’
‘감정 조절을 잘 못한다.’는 생각을 했으리라.
그런 성향은 초등 고학년부터 대학 졸업 후 군 장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연인이나 친한 친구에게 많이 의존하면서 큰 애정을 기대하다 보니 부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기대보다 적은 반응이 돌아오면 쉽게 상처받았고, 상처 표현도 여전히 미숙했다.
마음의 허전함, 정서적 미숙함의 지지대는 작은 누나였다.
누나는 내가 아주 서툴던 어린 시절부터 군 생활 때까지 늘 곁에 있어 주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시절에도, 어설프게 삐딱선을 탔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몸만 독립했던 대학 및 군 시절에도, 늘 내 마음의 쉼터, 가장 친한 친구, 큰 위로자였던 작은 누나. 그런 누나를 20대 후반에 들어서며 떠나보냈다.
당황했다. 정서적으로 기댈 곳을 잃은 나는 휘청거렸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전종목이란 사람이 성인이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잠깐 휘청이던 나는 이내 일어섰다. 그렇게 처음으로 감정을 나 홀로 감당하게 된 것이다.
완전히 털어놓지 않더라도, 늘 응석 부리며 위로를 구했던 존재의 상실이, 절벽으로 떠밀려진 상황이 나를 스스로 서게 만들었다.
그 시기부터다. 사람을 만나도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타인으로부터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어머니와 누나의 절대적인 애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오히려 가벼워졌다.
내 마음은 누군가가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돌봐야 하는, 온전히 내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텅 빈 애정 탱크를 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채워봤자 금방 마르는 걸 잘 알았으니까. 그렇게 굳이 채우려 애쓰지 않고 뚫려있는 구멍을 홀로 메워나갔다.
그 후 아내를 만났다. 진짜 내 편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주어진 수동적 사랑이 아니라, 내가 만든 관계, 나로서 얻은 사랑이었다. 아내는 내 마음속 애정탱크의 절반 이상을 채워 주었다. 그 덕분에 한층 더 여유가 생겼다. 누구와 대화를 하더라도 예전처럼 심하게 서운해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또 다른 인물이 등장했다. 사랑을 빨아들이고 뿜어내는 존재. 내 아들 효준이가 태어났다. 애정을 한없이 갈구하고, 절대적으로 부어주는 녀석 덕분에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서툰 아빠지만 사랑받는 아빠라는 확신이 있다.
세상에 확실한 내 편, 사랑을 늘 채워주는 존재들이 생기니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두 사람이 어머니, 누나와 다른 점은 내가 나로서 사랑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갈구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고민이 아예 없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수십 년 동안 애정결핍으로 괴로워하며 찾은 내 소중한 존재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제야 올바르게, 균형 있게 사람들을 마주한다. 인정과 애정을 갈구하지 않더라도 괜찮다 보니 나다운 표현을 할 수 있다. 지나친 기대가 사라지니 서운함도 없고,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해 줄 여유가 생겼다.
때론 심각한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회사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 갈등 속 해법을 찾을 시야가 생겼고, 관계 속에서 지칠 때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살필 여유도 갖게 되었다. 가끔은 알면서도 져 주고, 상처 입힌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면 스스로 서지 못한다. 자립 없이는 자기다움도 없다.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는 딱 한 사람이 필요하다.
단 한 사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나면 된다.
그렇다. 살면서 꼭 한 번 만나야 하는 사람. 바로 자신이다.
다른 누가 잠시 채워주더라도 마음의 구멍이 뚫려있는 상태라면 결국 텅 비어버리게 된다. 애써서 채워주던 이들도 지칠 수밖에 없다.
내가 나를 만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두 발로 서지 못한 상태로 아내와 아이를 만났다면, 그들 모두 지쳤을 것이다.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며 할퀴는 내 거친 손길에 상처 입었을 것이다. 동료들 또한 질려 버렸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면 그 관계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자립을 통해 우리는 어른이 되고, 인간이 되고, 자기다움을 찾게 된다.
내 마음의 구멍, 내 애정 탱크의 구멍은 스스로 막아야 한다.
추하든, 약하든, 비겁하든,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이다.
약한 나를 인정하며 우리는 나아질 수 있다. 나아갈 수 있다.
내 마음은 내가 돌봐야 함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신의 주인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나로서 사랑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