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회적 신용등급제도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빠앙~~!’
나도 모르게 눌러버린 경적.
‘후…’
한 숨이 절로 난다. 이번 달만 벌써 세 번째. 조심한다고 했지만 적응이 될 턱이 없다. 이번에도 등급이 하락하게 되면 보통 일이 아닌데. 다음 날 예정된 여행 걱정이 앞선다. 역시나, 도로 옆 전광판에는 내 차 번호가 떠 있다. 제기랄.
왜 경적을 울린 것 만으로 한숨을 내쉬는 걸까? ‘등급’이라는 것이 뭐길래 여행을 걱정하는 것일까? 그건 바로 사회적 신용등급제도 때문이다. 중국에서 14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국민의 행동에 대해 각종 부분에서 점수를 매겨 등급에 반영을 한다. 상해 같은 경우 경적을 울리거나 주차를 살짝 위반하는 경우 감점이 되고, 장쑤성에서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 뵙지 않을 경우에도 감점이 된다. 자주의 개념조차 모호하니 얼마나 불합리한 제도인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등급이 낮으면 어떤 피해를 입을까? 직장에 지원하거나 대출을 받으려 할 때 불이익을 얻을 수 있고 비행기나 기차를 예매할 때 거부당할 수 있다. 더 나아가면 병원 진료 또한 거부당하고 사회 지원금을 박탈당하기 까지 한다고. 게다가 인터넷도 자유롭지 않다. 가장 대형 구매 사이트인 알리바바에서 사는 모든 기록들이 신용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게임을 사면 악영향을 준다고 감점 대상이 된다. 웃기는 건 기저귀를 사는 사람은 사회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어떤 행동도 관심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친구들과의 교제, 휴식, 아내와 애들에 대한 태도, 혼자 있을 때의 얼굴 표정, 잠꼬대, 심지어 몸 움직임의 특성까지 모두 면밀히 관찰된다. 일탈적인 행동, 미세한 특이 행동, 달라진 습관, 긴장한 모습 등 내부 갈등을 보여 주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포착된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없다.
-조지 오웰, 《1984》
기사로 이 이야기를 접하고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시험적으로 아주 작은 지역에서 도입한 개념이 아니라 베이징, 상해 같은 대도시에 이미 시행이 되고 있고 수천만대의 CCTV를 통해 국민을 감시하고 있다. 게다가 2020년까지 전 지역에 도입할 예정이라 하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자유를 앗아가는 일이 이리도 거국적으로 진행되다니.
하긴 더 가까이 있는 북한에서는 더 한 일들도 일어나겠지. 위도와 경도를 조금만 바꿔서 태어났다면 나도 그들처럼 통제 받으며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이 곳에서도 언론을 장악하고 혹세무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서로를 옥죄는 ‘비교’라는 통제도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으니 그나마 낫다는 것에 안도를 할 뿐 완전한 자유로움은 이 나라에서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는 통제가 어떤 것이 있을까. 외모, 재정, 직업 등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마음도 어쩌면 통제가 아닐까? 진정한 자유로움이란 어떤 것일까? 그 자유를 찾아 나선 자연인이 부러워서 40~50대에게 '자연인'프로그램이 인기인 걸까? 내 안에 나를 억합하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지 돌아볼 필요가 생겼다. 그 통제를 풀어냈을 때 내가 얻고 싶은 자유로운 모습 또한 생각해 봐야겠다. 자유와 통제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