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목 강사님의 코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동안 혼자서 많은 강의를 했지만, 이번에는 오랜만이고, 전문가 아들도 있으니..ㅎ"
안 그래도 당장 도와 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메시지를 남기셨다. 기쁜 마음으로 당장 날짜를 비워서 만나 뵈었다. 세바시, 말하는 대로 등 강연 코치를 벌써 7년 정도 해 왔지만 아버지를 코치해 드리는 것은 처음이었다.
청중들에게 인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며 전해 주신 이야기 중 첫 번째를 1인칭 수필 형식으로 재구성해 보았다.
취업을 앞둔 때의 일이다.
“그래, 졸업하고 어떤 회사 갈 건데?”
여자 친구의 단골 문구점 주인아줌마의 관심이 못내 피곤하다.
성적이 좋았던 나는 여러 기업들에 합격을 했지만, 정작 가고 싶었던 종합 금융사는 서류 전형 통과부터도 어려웠다. 4년 내내 수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지만 학교가 소위 "SKY"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게다가 넉넉지 않은 집안에 지방 출신이라 추천을 받을 만한 연줄도 없었다.
“글쎄요. 가고 싶은 곳은 있는데 소개가 없으면 서류통과도 어렵대서요.”
쓴 내가 날 정도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만하면 더는 안 묻겠지 싶었는데, 웬걸? 아줌마가 팔을 걷어 부치며 물어온다.
“아니, 거기가 어딘데 그래?”
‘아니 아줌마, 말해도 모르시잖아요. ‘
안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 드는데 귀찮게 왜 이러시는 걸까. 그래도 여자 친구를 생각해서 최대한 없는 친절함을 끌어올려 말을 건넨다.
“ㅇㅇ종합금융이라고 있어요. ㅇㅇ은행 자회사요.”
말을 마치고 얼른 나가자고 여자 친구 손을 잡아 끌려했는데 아줌마가 되묻는다.
“어디 은행이라고?”
한숨이 나올 뻔한 것을 애써 멈추며 대답했다.
“ㅇㅇ은행이요.”
“그래? 어이구야 있어봐라. 그 은행 이사가 아줌마랑 제일 친한 친구 남편이거든? 내가 전화로 부탁해 둘 테니까 기다려 봐 봐. ”
응원하는 마음에 하는 허풍 섞인 말씀이겠거니 생각하고 고맙다고 고개를 꾸벅이고 여자 친구와 나섰다. 그래도 마음이 참 감사하니, 더 힘을 내야겠다는 다짐도 하면서.
다음 날, 입사지원서 준비를 하러 가는데 문방구점 아줌마가 저 멀리서 손짓하며 외친다.
“야야, 이리 좀 와봐라.”
에휴. 취업 시즌이라 시간도 없는데.
그래도 잠깐이면 될 테니.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 아줌마가 전화 넣었고, 서류 통과는 해 줄 테니 대신 시험을 잘 준비하라고 하셨다 더라. 자기 체면도 있으니까. 아줌마 봐서라도 너 잘해야 한다?”
씩 미소 지으며 던진 아줌마의 말씀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체념하고 있었던 문제를 문방구 아줌마 덕에 해결하리라 그 누가 생각이나 했으랴? 그 후 이를 악물고 열심히 준비한 덕에 나는 결국 원하던 종합 금융사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작은 인연들이 서로에게 귀인이 수도 있다는 것,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문방구점 아줌마를 통해 배운 덕에 나는 갑의 위치에 있을 때에도 친절하게 상대를 존중하며 사람들을 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도 나를 좋아해 줬고,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불어온 IMF라는 태풍은 신의 직장이라 불렸던 종금사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어떤 곳으로 가야 할까? IMF 한파로 모두 구직이 어려웠던 그때, 모 기업 영업부의 한 차장에게 전화가 왔다. 업무 상 완전히 을이었던 자신을 늘 존중해 주고 친절히 대해줘서 고마웠다며, 일자리를 추천해 드리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그는 그 간 놀라운 행보를 통해 증권사 사장이 되어 있었다.
그 인연으로 투자신탁에 좋은 조건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뒤이어 다른 영업부 출신 인연의 추천이 이어졌고, 운용본부장에서 대표이사까지, 5년 만에 4단계 승진이라는 유래 없는 성공을 할 수 있었다. 사원 출신으로 증권계에서 흔한 일은 아니었다. 현역에서 물러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고맙게도 나를 잊지 않고 좋게 기억해 주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많은 인연을 좋은 관계로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스치는 인연임에도 나를 이끌어줬던 그 옛날 문방구점 아줌마 덕분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