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추억하며

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드는 전주에서, 그리움을 담아 적어보는 추억.

by 전종목

내게 전주는 특별한 곳이었다. 이름만으로도 반갑고 정겹고 따뜻한 곳이었다. 굳이 과거형으로 적은 이유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달라진 건 딱 하나뿐이다. 내게 반가움과 정겨움, 따뜻함을 주던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에. 내게 전주는 할머니의 품 그 자체였다.


할머니를 추억해보면 늘 종목아! 를 외치며 꼭 안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너무 세게 안겨서 숨도 막혔던, 뭔가 조금은 낡은 천의 쿰쿰한 냄새가 났지만 신기하게도 싫지 않았던 그때의 기억.

낡은 주공아파트 그 작은 집에는 늘 아들 내외와 손주들을 위해 준비한 백숙, 갈비찜이 있었다. 그뿐 아니라 언제 다 준비하셨는지 모를 전, 떡, 사탕이 끈 이질 않았고, 평소에 이틀을 족히 먹을 양을 반나절만에 해치워야 했다. 끝난 줄 알았던 음식의 행렬은 식혜, 과일, 음료수를 거쳐 다시 다음 끼니로 이어졌다. 더는 못 먹어요 라고 손사래 치며 말하면서도, 맛 때문인지 사랑 때문인지 신기하게 꾸역꾸역 들어가졌다.


늘 틀어져 있는 티브이에서는 할머니께서 오랜 세월 즐겨보신 프로그램들이 이어졌다. 우리말 겨루기, 골든벨, 가요무대, 아침마당, 진품명품 등등 퀴즈와 뉴스를 특히 좋아하셨던 할머니. 그중에 가장 사랑하셨던 프로그램은 어르신들의 무한도전, 전국 노래자랑이었다. 흥얼거리시거나 크게 웃음 지으시며 보고 계신 덕에 언제나 만화나 야구중계를 보고 싶어도 말 조차 꺼내지 못했었다.


가끔 주말의 명화를 보기도 했다. 엑소시스트 같은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잠이 통 오지 않아서 할머니한테 매달려서 배 아프다 꾀병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 주름진 손으로 배를 쓸어주셨고, 거짓말처럼 무서운 생각이 사라지고 편히 잠들곤 했다.


할머니께서는 교육을 받지 못하셨지만 굉장히 영리하셨다. 기자 할머니라고 할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밝으셨는데, 뉴스를 열심히 보신 덕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땐 기록을 기가 막히게 하셨던 덕이 더 크다. 손바닥만한 작은 노트에 뉴스에 나온 내용을 기록해서 자녀들이나 손주들에게 한참이고 설명하며 자주 전해 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소통 방법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내 예능적(?) 재능은 할머니 덕이 아닐까. 그녀의 모노드라마와도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언제나 훌쩍 지나갔다. 목청도 좋으셨고 판소리도 잘하셔서 노인정 인기스타셨던 그녀. 춤과 악기도 참 잘하셨다. 자녀들에게 그 흥과 끼가 전해진 덕에 친척들이 모이면 어지간한 축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흥겨운 시간이 이어졌다.


전주의 유명한 제과점에 가서 빵을 사 주시거나 용돈을 주셨던 기억 등 나를 무조건적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셨던 기억은 한도 끝도 없다. 하지만 가장 큰 기억은 내가 가장 외롭고 괴로웠을 때 나를 돌봐주셨을 때의 기억이다. 어머니의 발병 소식에 할머니는 아들과 어린 손주들을 돌봐주기 위해 전주에서 올라오셨다. 그 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빈자리를 몇 해 동안 채워 주셨다. 할머니께 혼도 나고 짜증내고 대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집에 계셔 주신 덕에 내가 집을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할머니께 받은 건 정서적 사랑뿐이 아니었다. 대학 입학 때에도 결혼 때에도, 아버지께 받는 생활비를 아끼고 모아서 큰돈을 쥐어 주셨으며, 아내가 임신했을 때에도 축하한다며 돈을 보내 주셨다. 얼마나 근검절약을 하셨던 분인지 적은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자식들에게 통장 등 적잖은 돈을 유산으로 남기셨다. "본인 쓰시라고 보내드린 돈을 어찌 고스란히 모으고 사셨는지."라며 통탄하시던 아버지 말씀이 귀에 생생하다. 멋지게 성공한 아들이 고생하지 마시라고 보내드린 용돈을 모아서 다시 자식에게 주는, 그게 그녀의 사랑 방식이었다.


곧 찾아올 기일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전주라는 도시의 기억이 거의 다 할머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일까?

전주에 가니 그냥, 할머니를 추억하고 싶었다. 별 다른 의미를 담지 않은 글을 적고 싶었다. '내가 아직 당신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그냥 떠올리고 싶었다.


할머니의 묘소를 들르지 못한 채 서울로 향했다. 조만간 아내, 아들과 함께 들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께서는 효준이가 태어나던 그 해 봄에 돌아가셔서 효준이를 못 보셨더랬지. 효준이가 할머니를 쏙 빼닮았는데... 그래서 누나와 나는 효준이를 "할머니의 현신"이라고 농담하기도 했었다. 언젠가 조금더 큰 효준이에게 할머니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줘야겠다.


'너랑 닮았지? 아빠에게 진짜 큰 사랑을 주셨던, 아주아주 소중한 분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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