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대한 해석만이 모든 것을 지킬 수 있다.
장인어른께서 편찮으셔서 서울 보훈병원에 입원하셨다. 올해 알게 된 심근경색이 심각한 상태라 늘 걱정이었는데, 며칠 전 각혈 후 경련 증세가 있으셔서 급히 입원을 하게 되셨다. 그래도 국 중심으로 짜게 드시던 습관을 버리고 식단 조절을 하셔서 인지 낯빛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장인께선 직업군인이었던 젊은 시절, 수류탄 사고를 당하셨다. 현장에서 4명 이상 사망한 큰 사고였다. 뇌 손상으로 인한 전신마비가 되어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을 만큼 심각한 부상이었다. 그 뒤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여 불편할지언정 몸을 움직이실 정도가 되어 장모님을 만나 결혼도 하고 세 딸도 낳으셨다.
“내 이름이 병상이라 그래. 불꽃 병, 서로 상. 불꽃은 하나만 있으면 아무것도 못하지만 함께라면 큰 일을 일으킬 수 있다는 뜻으로 지어 주셨지. 그런데 웬 걸. 병상에만 누워있게 될 줄이야.” 입원 전에도 자주 신세한탄처럼 하시던 말씀이었다. 늘 슬쩍 웃으며 받아 넘겼는데, 수척한 모습을 뵈어서 그런지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장인어른, 제가 볼 때 오히려 병상에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신 게 이름 덕이 아니었을까요? 그때 죽은 사람도 있었던 큰 사고였는데 목숨을 지키시고, 의사들도 어려울 거라고 말했던 회복도 해 내셨지 않습니까. 병상에서 회복하라는 좋은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건강하던 사람도 아무리 애를 써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요.”
“그래, 자네가 그리 이야기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도 얼마나 속상했는지 아는가?
사고가 나고 처음으로 정신을 차렸을 때 의사에게 제일 먼저 했던 질문이 '선생님, 제가 자식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였네. 내가 5대 독자였거든. 깨어나자마자 그런 질문을 하니 얼마나 의사도 당황스러웠겠는가? 아무 말 않고 나가더라고. 나는 영락없이 ‘애도 낳지 못하게 됐구나!’라고 생각했네.
그런데 며칠 후에 나를 불러서 이런저런 검사를 시키더니 ‘애는 낳을 수 있겠어.’ 이러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말만 철썩 같이 믿었지. 점점 몸이 회복되더군. 한참 후 퇴원을 하고 자네 장모와 만나 결혼을 했지. 그런데 세상 참. 딸만 둘을 낳았지 뭔가. 그래서 포기하고 그만 나으려고 했는데 시골 사람들이라 주변에서 하나 더 낳으라고 난리였네. 그렇게 고민 끝에 낳은 자네 처제가 지 언니와 6살 차이가 나지 않았는가.
딸만 셋을 낳고 나니 어찌나 세상이 원망스럽던지. 주변에선 입양을 해서 키우라고 하더군. 고민을 하다 우리 마을에 여든 넘은 어르신이 한 분 계셔서 그분께 여쭤봤지. 입양을 하면 어떻겠냐고 말이야. 그런데 평소에 큰 소리도 안 내시던 분께서 갑자기 호통을 치셨네.
‘이 어리석은 작자야. 네가 아들 욕심에 입양한다 치자. 그놈이 커서 사춘기 때 사고를 치거나 지 출생 때문에 삐뚤어지면 감당할 수 있겠나? 게다가 딸들 잘 키워서 시집가면, 사위들이 예를 갖춰서 장인어른 하며 어른 대접을 할 텐데 뭐가 아쉬워서 아들을 찾나!’
그 말씀에 아들 없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네. 그렇게 자네들을 만났지. 상견례 때 내가 한 말 기억하는가? 자네는 내 사위이기도 하지만 아들이기도 하네. “
살가운 성격이 아닌 데다 어색하기도 해서 “그럼요.”라고 대답만 짧게 했다.
대신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서 아들답게 몇 마디를 말씀 드렸다.
“장인어른, 저희 어머니께서는 아마추어 수영선수에 테니스도 선수 못잖게 잘 치셨습니다. 건강에 대해 한 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었는데, 검사하니 위암 말기라고 하더라고요. 그 후 몇 개월 뒤 돌아가셨죠. 누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최고의 의료진이 노력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죠. 저는 회복에 대한 확신이 가장 필요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인어른께서는 못 깨어날 거라는 예측도 이겨 내셨죠. 그리고 회복해서 이렇게 아들 같은 사위에 손주도 만나셨잖아요. 이번에도 그 회복력을 믿고 힘내세요. 저는 꼭 회복하실 거란 생각이 듭니다.”
고맙다 말씀하시는 장인어른께 인사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며 삶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불의의 사고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다가 결국 병으로 고통받는, 어렵게 가진 자식이 모두 딸이라 실패한 삶으로 볼 것 인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큰 사고에서도 목숨을 건지고, 식물인간이 될 팔자에서도 회복을 해서 사랑스러운 딸들과 아들 못지않은 건실한 세 사위를 얻은 성공한 삶으로 볼 것인가.
삶은 원래 불공평하다.
금수저, 흙수저처럼 경제적인 것 뿐 아니라
나처럼 가족을 병으로 연달아 잃기도 하고
장인어른처럼 자신의 몸의 통제력을 잃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고난에 세상을 저주하고 모든 것을 잃는다면
그 만한 어리석음이 없다.
삶은 해석이다.
결국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관건이다.
세상은 불공평한 것임을 알고 그 안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를 결정하자.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 고난에 대한 해석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