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 처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첫 적응에 관한 단상.

by 전종목

장교 복무 시절, 키, 덩치, 외모, 학력 수준, 심지어 외모까지 비슷한 신병 둘(A, B라 칭하겠다.)을 받은 적이 있다. 딱 평균이었던 둘을 보며 ‘둘 다 무난히 적응하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한 녀석은 아주 잘 적응해서 선임들의 예쁨을 받았는데, 다른 녀석은 매사에 책잡히며 거의 병사들 표현으로 폐급 수준이 되었다. 면담 때에는 둘을 비슷하게만 봤는데… 내가 잘못 본 것이라기엔 나 외에 경험 많은 간부들 또한 둘을 비슷하게 봤었다.


둘의 군생활을 가른, 아주 작은 차이가 첫날 있었다. 적응 잘 한 녀석의 고향이 당시 실세였던 병장과 같았던 것이다. 크지 않은 지방 도시 출신이어서인지 소대 내에 한 명도 없었는데, 같은 지역에서 막내가 와서인지 꽤나 반가웠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 실세 병장이 특별히 챙겨준 것도 없었다. 내가 아는 녀석의 성격 상 사근사근 챙겨줄 리 없었다. 주변에 별 관심을 안 갖고 자기 할 일만 하는 스타일이었으니. 그냥 첫날 이것저것 물어보고 힘든 일 생기면 말하라고 한 게 전부였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신병 둘의 표정이 사뭇 달랐다. 동향 사람을 만난 덕인지 A의 표정은 꽤 편안해 보이는 반면, B는 동기가 찾은 여유 때문에 더 불안했는지 훨씬 뻣뻣해 보였다. 이후 나도 다른 간부들도 나름대로 신경 써 준다고 챙겼는데도 B는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눈덩이 효과처럼 둘의 차이는 시작점에서 멀어질수록 더 커져 나갔다.


둘의 성향적인 차이를 배제하고 생각해 본다면, 옛 말처럼 첫 단추의 중요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안정감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불안감으로 사고가 한쪽으로 편중된 상태라면 스스로의 역량을 발휘하기 어렵게 된다.


그 이유는 편도체라는 뇌의 작용 때문이다. 두려움의 기억을 저장하고 위험을 피하게 하는 이 뇌는 생물을 생존하도록 도와주지만, 사회적 활동 시기에 작용하게 되면 사람을 움츠러들고 겁에 질리게 만든다. 자신 답게, 이성적 사고를 하는 전두엽이 활약할 타이밍을 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후 나는 신병들이 오면 별도의 공간 (주로 야간 수송을 다녀온 병사를 위한 수면 장소)으로 데려갔다. 과자를 먹이고, 함께 누워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주변 간부들은 어차피 ‘주적은 간부다!’라고 하는 녀석들이라 잘해줘도 소용없다고들 했다. 뭐, 나도 대충 겪어봐서 안다. 나를 좋아하라고 했던 일은 아니다. 그냥 적어도 초반 첫 단추만 잘 끼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랬다. 나도 첫 적응에 실패했던 것이 군생활이었고, 사회에서 비슷한 경험도 많았으니까. 첫 적응에 실패하고 반복되다 보면 무기력해지고, 적응이 잘 되었던 다른 곳에서의 좋은 기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현재 환경을 탓하게 되거나, 무기력해지거나, 그 간의 때문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기까지 하니까. 문턱을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는 위치였으니 그렇게 했었다.


얼마 후 내가 사단 수송관으로 부임하게 되어 부대를 옮길 때, 대원들이 의리로 만들어 준 앨범에서 내 노력이 아주 무의미하진 않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편지를 적기 귀찮아 대충 적은 놈들이 괘씸하고 서운하기도 했지만(생각할수록 괘씸한 것이, 내가 먹인 음식들만 해도 엄청난데도 정말 무성의한 놈들이 꽤 있었다!) , 내 덕에 가장 힘든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고,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감사하다고 적은 한 병사의 편지가 있었다. 나와 추억을 나눈 시기가 얼마 안 되는 기수여서 진심을 더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울 때 내밀어 주는 누군가의 손길의 온기는 더 따뜻하게 느껴지나 보다.


내가 얻은 아주 사소한 팁들이다.


1. 내가 적응이 필요하다면 약간의 친밀함을 얻기 위한 노력을 하자.

인사 밝게 하기. 어색해도 말 걸어보기. 리엑션 잘하기 등.


2. 사람과 친밀해지기 어렵다면 장소라도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하자.

자주 마주하게 되는 장소들을 내 방식으로 꾸며보거나 눈여겨보기 등.


3. 적응이 필요한 사람이 보이면 작은 말 한마디를 해 주자.

괜한 농담 건네기. 작은 것들로 친근감 표현하기. 장점 관찰해서 칭찬하기 등.


나도 뭐 매번 잘 실천한다고 자신하진 못한다. 가장이 되어 나 살기 바빠서 마음을 차마 못 준 사람들도 많기도 하고. 그래도 그나마 내 인간관계에서 장점 중 하나인 부분이라 정리를 해 보았다. 강의에 가서 신입사원들을 보면 꼭 해 주고 싶어서 강의에 녹이곤 한다. 그래서 탄생한 강의 모듈과 프로세스가 있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그 처음이 성공적이라면 그 성공이 앞으로의 대박 성공을 보장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평소의 자신답게 해 볼 수는 있게끔 해 줄 테니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신을 찾지 못해 초조한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