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부족함에 위로받았다. 위로받고야 말았다.

나는 나아가려고 애쓴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길 바라며

by 전종목

그랬다.

그의 실력이 엉망이라는 말에 위로받았다.

위로받고야 말았다. 나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다.


좋아요가 많은 그의 글과, 그를 칭찬하는 댓글들을 보면 부러웠다.

내 글들은 나를 꾸준히 응원해 주는 사람들 이외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것 같은데

그의 글은 수백 명이 반응하고, 영감을 얻었다고 칭찬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내 글을 초라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 그의 실력이 실제로는 수준 이하였다, 엉망이었다는 지인의 말에 위안을 얻고야 말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소셜 네트워크는 화려한 파티처럼 모두가 멋져 보인다. 나는 익숙하지 않다. 한껏 꾸민 사람들을 처음 보는 어린아이처럼 내 눈은 휘둥그레 하다.

나는 좋아요라는 버튼도 잘 누르지 않는다.

진짜 '좋다'라는 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글일지라도 그 글이 진짜 좋아야 누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보면 내 인정욕이 나를 배고프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좋겠다는 마음이 내 안에 있으니까.


그래서 파티에서 빛나던 사람의 민낯이 볼품없음에 위로를 받는 걸까.

애초에 삶은 경쟁이 아닌걸 잘 아는데도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게 되는, 이미 생겨버린 관성을 거부하지 못한다.


인간은 이리도 자유롭지 못하다.

스스로를 속박한다.

내 주변의 진짜 훌륭한 사람들에게 배워야 하는데도, 내가 가진 훌륭한 부분을 바라봐야 하는데도

중독된 것 마냥 작은 창을 통해 평가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나를 본다. 그런 뒤 다시 후회하면서.


그래서 나는 노력 중이다.


퀄리티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는 중이다.

내 눈에 차지 않아서

시도조차 하지 못한 시간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쌓지 못한 탑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좀 덜 애쓰기로 했다.


무관심에 익숙해지려고 애쓴다.

인정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잠깐의 갈증에 익숙해져야 하니까.


스스로를 길들여 가는 과정,

익숙한 대로 살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노력

비교의 대상을 타인에서

지금까지의 나로 바꾸는 시간


나의 부족한 모습을

좌절하고 혐오하거나

핑계 대고 부정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한

존중이며 배려이며

사랑의 표현이니까.


믿고 가보자.

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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