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지능지수를 알게 된 후 나보다 높은 사람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물론 지능지수는 큰 의미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족쇄처럼 여기곤 했다.
딱히 공부를 놀랍도록 잘한 적은 없었다. 불성실한 성향도 있었겠지만 다 핑계다. 지금 돌아보면 재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포토 메모리 같은 능력도 없고. 이해를 빨리 하는 정도는 지능지수 덕이 아닌 사고 성향에서 오는 이점 정도였을 것이다.
오히려 나보다 지능지수가 낮은 큰누나는 장학퀴즈 장원에 서울대를 거쳐 옥스퍼드 박사가 되었다. 그래서 IQ 높으면 뭐하냐고 빈정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잘난 척을 한 것도 아니고 수치를 말한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거 참 속상한 일이다.
그것 말고도 나는 나를 꽤 잘 알고 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능력적으로도, 성격적으로도.
인정 욕이 강하고 자기비판도 강하다. 그래서 어지간한 인정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주변에 인정을 요구하게 된다. 그게 꽤 민폐라는 걸 알면서도. 늘 꿍얼거리는 나를 잘 받아주는 사람들만 내 곁에 남아있다. (내가 미처 다 표현을 못하고 있지만 애써서 나를 인정해 주는 진짜 고마운 사람들이다. 알라뷰 에블바뤼)
감정적 동요가 생기면 공격적이 되거나 주변에 심하게 투정을 부리기도 한다. 찌푸리면 착한 인상도 아닌데 툴툴대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경우가 된다. (이건 참 미안합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열등감도 많아서, 타인을 바라볼 때 질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를 제대로 칭찬하지도 못한다. 옹졸하다 참.
게으르고 안일하기도 하다. 생각은 많은데 행동으로는 잘 옮기지 않아서 늘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 스트레스'만' 받으며 산다.
이렇듯 살아가면서 알던 단점들을 더 명확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고.
알면 알수록 참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도 이런 내게도 장점이 있다.
난 꽤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내 행동은 선의를 가지고 있다.
자기만족의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적어도 나쁜 평가를 듣고 싶지 않아서라도 좋은 일을 하려고 애쓴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걸 좋아해서인지 누군가를 돕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하곤 한다. 그 덕에 빚을 진 사람이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아이디어를 잘 만드는데, 창조는 물론 아니다. 상황에 맞춰서 잘 연결해 낸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상황에서는 재치와 유머가 되기도 하고, 일을 할 때는 임기응변과 문제 해결을 가져오기도 한다.
생각이 많다는 점이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연결을 잘하는 성향과 만나 쓸모 있는 철학적 사고를 하곤 한다. 누군가에겐 영감을 주거나 도움이 되곤 했으니.
그리고 나를 알아가면서 서른일곱이 된 올해 새롭게 깨달은 내 장점은 경청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잘 듣는 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세바시 연사들을 코칭할 때도, 강의를 할 때도, 상담을 할 때도. 순간의 재치로 말을 잘 만들어서 하는 타입이라 생각했을 뿐 잘 듣는 귀가 있으리라 생각을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나를 잘 돌아보니 뽐내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래도 곧잘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건넬 수 있었던 건 아주 집중하고 몰입해서 잘 듣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 관점을 가지고 구조적으로 들으며 전체를 파악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현상을 들으며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고, 끝없이 기존 지식들과 연결하며, 직관적으로 큰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추론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잡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다양한 정보들과의 연결을 빠르게 시도해 보며 새로운 그림이 더 나은지 점검해 보곤 했다. 이런 능력들이 특히 '훈수'를 잘 두게끔 만들어 주었다.
뭐 매번 대단하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 덕에 꽤 잘해 온 것이다. 누군가는 도움이 되었다고 했으니까.
이것들 말고도 발견한 장점이 많다. 물론 언급하지 않은 단점도 수두룩 빽빽이다.
'나'라는 광산은 이렇듯 파도 파도 끝이 없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가 모르는 영역도 계속 나오고, 안다고 여겼던 부분도 새롭게 보게 되곤 한다. 삶은 결국 나에 대해 알아가는 탐험이다.
그런데 나는 이 여정을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채우지 못하는 갈증 때문에.
늘 나를 탐험하면서 나를 좋아하게 되기보다는 싫어하게 되는 경우가 비율적으로 더 많았다. 안 그러려고 해도 기준보다 못한 나를 더 잘 알게 되니 말이다.
그렇지만 가끔씩 좋은 부분을 발견하고 스스로 인정하면 꽤나 뿌듯했다. 내 장점이 나를 증명하는 것처럼 느꼈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된 것처럼. 갈증이 잠시나마 해소된 것처럼 느꼈다.
그런데 여기서 스스로 만든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잠깐의 자기만족으로 채운 갈증은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더 크게 밀려온다는 걸 말이다.
나는 왜 뭔가 잘해야만, 좋은 면이 있어야만 괜찮아진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래서는 절대 갈증을 제대로 해소할 수 없다.
아이에게 '특별히 뭔가 뛰어나거나 잘하지 않아도 너는 괜찮은 사람, 소중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자주 해주곤 했는데, 정작 그 말은 나 스스로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자신을 알아가는 탐험을 장점, 단점을 알기 위해서가 아닌 그냥 오롯한 탐구심으로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야 더 오래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다 내 모습인데...
이제부터라도 부족한 부분은 가다듬고, 잘하는 면은 더 좋은 방향으로 활용하면서,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