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의 러브스토리(1)

첫 만남

by 전종목

아내를 만나기 전 나는 감정 기복이 참 심한 사람이었다.


타고난 인정욕과 열등감으로 인해 나는 주변 사람에게 의존적이었다. 어떤 상태였냐면… 아주 잘 삐졌다. 조금이라도 집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거나 뜯대로 풀리지 않으면 여지없이 삐졌다. 삐진다는 게 귀여운 외모가 있거나, 아니 적어도 어울려야 삐졌구나 라고 받아들일 텐데. 목소리나 외모로 볼 때 나는 삐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졌으니 주변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말이 좋아 삐짐이지, 성질이 더러웠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대학교, 해병대 장교 복무 등을 거치며 삐지는 빈도는 줄어들었지만 감정 기복은 여전했다. 다혈질 기질로 수 틀리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기도 했고, 때론 말도 안 될 정도의 우울감에 주변을 온통 갑분싸로 만들기도 했다. 그나마 그런 감정의 구멍을 채워준 건 둘째 누나였다. 어리광을 부릴 유일한 대상이었으니까. 그녀의 빈자리를 겪은 후 나는 내 구멍 난 마음은 절대로 메워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걸 채워 준 게 바로 아내다.


누나가 떠난 지 거의 2년이 지난 겨울, 크리스마스. 강남역이었다. 아내는 서울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하다가 재충전 겸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퇴직을 하고 고향인 영주로 내려간 상황이었다. 크리스마스라서 서울에 있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잠시 올라왔는데 덜컥 나를 만난 것이다.


나는 왜 크리스마스에 강남역에 있었는가. 당시 친하게 지냈던 아나운서 학원 친구들과 연말 파티를 하기로 했다. 파티의 사회자인 나와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어떻게 진행할지 회의를 위해 강남에서 만났다. 회의 후 나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 당시 한창 롤에 빠져 있었던지라 굳이 정신없는 강남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료 중 한 명이 ‘크리스마스’인데 일찍 들어가지 말자며 나를 붙잡았다. 클럽에 가자는 것이었다. 그는 흥이 많은 2살 위 형이었다. 이른바 클럽맨. 참고로 나는 클럽 혐오인이다. 내가 싫어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기 때문이다.


1. 사람들로 붐벼서 덥고 갑갑하다.

2. 담배냄새가 지독하다. 공기, 냄새에 민감한 나에겐 최악의 공간이다.

3. 귀가 아플 만큼 음악소리가 크다. 나는 부르는 걸 즐기지, 모르는 노래가 쿵쾅 거리는 걸 별로 즐기지 않는다.


이외에도 춤추기도 싫고, 땀 흘리기도 싫고… 정말 진심으로 싫었다. 그렇지만 눈을 반짝이는 두 사람을 외면하기엔, 또 ‘크리스마스’가 주는 특별함에 애써 저항하기에는 나는 그래도 젊었나 보다. 클럽맨 형, 중도파를 지향하지만 내심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싶었던 동생, 그리고 클럽맨 형의 지인을 더해 4명의 청년들은 ‘엔비’로 향했다. 하지만 클럽맨 형은 그 날의 나를 이렇게 회상한다. 클럽 가드, 즉 ‘기도’인 줄 알았다고. 두 시간 내내 맥주 한 병 들고 굳은 표정으로 구서에 서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x두컷 당한 블루클럽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클럽에서 탈출한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 내게 미안했던 클럽맨 형은 ‘이대로 널 보낼 수 없다!’ 라며 한잔 사겠노라 외쳤다.

나는 알아주는 수다쟁이라서 내심 반가웠다. 내가 좋아하는 수다! 찜질방 가서 수다로 밤도 새우고, 동료 강사와 왕복 9시간을 다니면서도 쉬지 않고 떠드는 나. 당시 블루클럽, 아니 블루 케첩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공인된 합석 술집이라는 콘셉트로 꽤나 인기 있었다. 한번 가보자!라고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엄청난 대기열에 기죽은 우리는 그냥 집에 가자는 귀가파와, 그래도 포기하지 말자는 의지파로 나뉘었다. 하지만 강한 의지는 모든 것을 이기는 법. 주변에 비슷한 콘셉트의 ‘레테’라는 주점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았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클럽맨 형이 아내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머뭇 거리는 아내 일행에게 내가 가서 설득을 했고,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아내와 친구들도 헌팅 술집이 처음이었는 데다, 그 전까지 어린 친구들이 흑심을 품고 들이대는 게 여간 짜증 났던 차였다고. 그게 싫어서 거절만 하다가 나름 젠틀(?)한 오빠들이 예의 바르게 말을 걸었고, 사람 수도 맞지 않아서 꽤 안심한 덕에 합석이 이뤄졌던 것이다.


나의 지나칠 정도로 건전한 진행 덕에 크리스마스에 술집에서 헌팅(?)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 같지 않은 분위기- 마치 술 없이 게임만 한다는 기독교 대학 한동대 MT처럼 건전한 밤을 보냈다. 아침이 밝아오고 헤어질 때에는 거의 비전을 나누다시피 했었고, 단톡 방까지 열게 되었다.


하지만 청춘은 푸르러야 청춘이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 자리에서 아내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예뻤다. 외모도 예뻤지만 태도가 정말 예뻤다. 잠깐의 대화, 정신없는 술자리에서 이 사람이 나를 존중하고 있구나, 경청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그 느낌을 받은 나는 노골적으로 아내의 게임 흑기사가 되었다.


비화가 하나 있는데, 당시 클럽맨 형의 지인 또한 아내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 헤어지자마자 아내에게 따로 연락을 시도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훗’ 웃을 뿐이었다. 자신이 있었으니까. 나는 여유롭게 다음날 오후 연락을 했다. 아내 스타일이 아닌 그는 지인 1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나는 커트라인을 통과하면서 우리의 공식적인 썸 관계가 시작되었다.


문제는 지방에 내려가 있는 아내와의 거리. 다행히 시기가 우리를 도왔다. 한해의 마지막 날, 결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그 날, 아내의 전 상사가 건대 주변에서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는 그녀에게 이후 시간을 허락받았다. 부랴부랴 분위기 좋은 와인바를 예약하고 일주일 내내 카톡을 주고받았다.

건대 와인바에서 와인을 두어 잔 마셨을까? 아내가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는 게 아닌가.


몸이 안 좋아 혼자 있던 친구가 우울하다고 연락이 왔다며 홍대 쪽으로 가서 만나야 될 것 같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렵게 만났는데… 거절의 의미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엔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는데…(글을 쓰며 확인한 결과 아내는 별생각 없이 이후 일정을 말한 것이었다고. 서울에 올라온 김에 친구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즉, 나와는 오래 볼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ㅠㅠ) 여튼 와인도 잔뜩 남았는데,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럼 나도 친구(크리스마스에 함께 있었던 중도파 동생)가 그 주변에 사니, 함께 홍대에서 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이 적절했던 걸까, 아님 내가 싫지 않았던 걸까. 둘 다였겠지. 어쨌든 우리는 건대에서 홍대로 이동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2의 만남이 된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두 조연들 덕에 훨씬 덜 어색한 분위기로 우리는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역시나 대화의 주제는 건전하기 그지없었다. 인생, 가치관 등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두 번 만나서 두 번 밤새 대화를 나눈 우리는 부쩍 가까워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있었다. 서울과 영주라는 거리. 집에서 집으로 치면 3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였다. 하지만 나는 거침없이 말했다. 영주로 가겠노라고. 아내는 걱정했다. 와서 할 것이 없다며. 그 흔한 영화관조차 없는 동네라서 진짜 심심할 거라고 했다. 나는 꽤 당황하긴 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영화 보러 가냐, 너 보러 가지.”


지금 생각하면 ㅋㅋㅋ오글거리고 막무가내였지만, 그 덕에 우린 진짜 할 것 별로 없는 영주에서 3번째 만났다. 3주 연속으로 얼굴을 보며 오래도록 대화를 한 덕인지 그렇게 우리의 원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의 네 번째 이파리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