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펀드매니저,
세상을 노래하다"

아버지 글 편집

by 전종목


"고등학교 운집에 글을 내라는 요청에 미적거리다가, 조금 전 일필휘지?로 글을 썼네.

A4용지로 2장 이내라는데, 용량도 봐주고 내용도 수정해 주길 ㅎㅎ"


아버지께서 보내신 카톡.

원글 내용이 워낙 좋아서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노래하는 펀드매니저, 세상을 노래하다"


직장생활 33년을 마친 후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릴 때 꿈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시절 나는 어린이 음악대에서 하모니카를 담당했고 참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중학교 일 학년 첫 음악시간에 가창 테스트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내게 음악을 하길 권하시면서 밴드부에 나오라고 하셨다.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께 말씀드렸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그토록 인자하시던 아버지께서 언짢아하시며 ‘음악은 돈도 많이 들고 굶을 수도 있으니 잊어버리고 공부에 집중하라’며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신 것이다.


그 바람에 지금껏 마음속에만 음악을 담아 두고 살았다.


하지만 담아 둔 마음속 꿈은 사그러 들지 않았다. 직장 생활 중에도 음악에 대한 목마름은 계속되었다. 바쁜 중에도 판소리를 배우려 흥부가 인간문화재님을 찾아뵈었고, 기타 전공자를 찾아 배우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별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그저 가벼운 취미 생활로만 만족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런 어느 날, 노년의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되는 제안이 의외로 아들로부터 왔다.


"아버지, 누나가 알려줬는데요. KBS에서 이번에 최초로 52세 이상의 실버 합창단을 모집한다는데 응모하시죠."

"52세?”

“예, 남자의 자격 출연자 중에 이경규가 52세로 제일 연장자인데 늘 큰소리를 쳐서 아예 그 이상의 어르신을 뽑기로 했다네요"

"그런데, 나는 평생 합창의 합자도 안 해 봤는데.."

"에이, 아버지 실력이면 충분하지요!"

당연한 걸 왜 걱정하시냐는 듯한 아들의 인정에 기분이 정말 좋았다.


내가 동의를 하자 아들이 지원서를 곧장 작성했는데, 돌아보니 그 제목이 신의 한 수였다.

"노래하는 펀드매니저, 세상을 노래하다. 전 증권회사 CEO 전 웅"

40명 단원을 뽑는데 4000여 명이 응모했고, 서류 전형에서 단 220명이 뽑혔다.

노래 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도 불러보지 못하고 탈락한 것을 보면 수긍이 간다.

방송은 다채로운 사람들을 원하니까.


서류 전형 2주 후에 오디션이 있다는 통보를 받고 노래를 선곡하려는데,

나는 평생 합창 경험도 없고 가곡도 불러보질 않았다.

별 수 없이 평소에 즐겨 부르던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로 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열창을 해야 하는 노래인데, 연습을 시작하려는 찰나 눈부상을 입게 되었고, 당분간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처방을 받은 것이다. 결국 오디션 당일까지 노래를 듣기만 할 뿐,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


‘아, 나는 안 되는구나. 음악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며 포기해버리고 싶었지만,

어릴 적부터 꾼 꿈, 그 마음이 발걸음을 이끌었는지, 아내와 아들과 함께 오디션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호명에 따라 오디션장에 들어서니, 수많은 카메라 빛에 눈이 부셨다.

앞에 눈에 익은 출연자들이 앉아 있었다.

이경규, 김태원, 박완규, 이윤석 등 많은 출연자들이 긴장을 풀어주려고 이런저런 질문을 해주었고,

드디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한 번 포기하려 했던 덕분이었을까? 긴장하지 않고 집중하며 거의 무아지경으로 열창을 했던 것 같다.


노래를 마치고 김태원 님이 "아버님, 목소리도 좋으시고 노래를 참 잘하시네요"라는 순간부터 혹시 하는 기대감에 긴장감이 온몸을 감쌌다.

역시 모든 일에서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마지막 순간의 기대처럼 최종 합격통지서가 왔다.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었다.

우리 청춘합창단은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2011년 KBS 감동대상 수상, 이듬해 꿈에 그리던, TV로 즐겨보던 열린 음악회에도 출연했다.

급기야는 유엔본부까지 진출하여 수많은 대사 부부들을 모시고 합창을 통해 국위선양에 이바지를 하게 되었고, 이 과정이 KBS 인간극장을 통해 국민들께 알려지게 되었다.


CEO 출신이라는 명목으로 청춘합창단 초대 단장으로 추대되어 수많은 공연을 주선했고,

이 인연으로 재경 전주고 동창회의 요청으로 전주고 합창단, 노송 콰이어를 창단하고 아직까지 단장의 역할을 맡고 있다.


돌아보니, 어떻게 이 길이 선택되어 걸어올 수 있었을까 참 신기한 느낌이 든다.

마음속에 간직했던 꿈, 나이 들어 그 꿈을 바라보며 걸어온 길, 그 걸음에 격려를 보내주신 주위의 모든 분들 덕이리라.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그 감사의 마음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마지막 순간까지 노래하며 기쁘게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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