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란, 선생님이란 무엇일까

#교육 #환경 #철학 #에세이

by 전종목

학교, 선생님에 대한 콘텐츠를 구상 중이다. 그러다 보니 큰 벽에 부딪혔다.

좀 죄송한 이야기지만 학창 시절 그다지 인상 깊었던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자체에 충실하지 않았던 나라서 좋아하는 선생님, 싫어하는 선생님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죽하면 효준이의 교육을 생각하면서 중학교부터는 보내지 않는 게 어떨까 하는 고민도 하는 나다. 그만큼 학교에서의 시간은 나처럼 강제로 갇힌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보내는 시간이었고, 그래서 최대한 재미있게 보내려고 애썼던 시간이었다. 마지못해, 말 그대로 피할 수 없어서 즐겼던 시간이었다.


경험하지 못한 일이나 상상을 쓰는 재주가 미약하다 보니 더 막막하다. 선생님이라… ‘나도 교육을 하고 있지만 선생님은 아니지 않나?’, ‘좋은 기억으로 남은 선생님은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 ‘이상적인 선생님은 어떤 요건들을 갖추고 있을까?’ 질문들만 머리에 맴돈다.


벌써 20년이 넘어 버려서 그런 걸까? 그래도 학생으로서의 나는 기억난다. 선생님들 입장에서 좋은 학생, 정확히는 ‘모범학생’은 아니었겠지.


방황이 심했던 중학시절, 그래도 학교는 다니던 고교시절. 심지어 초등시절까지 통틀어 공통점은 장난치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내가 즐긴 건 주로 ‘드립’ 치기였다. 선생님 수업시간에도 틈틈이 던졌고, 쉬는 시간은 애들을 놀리거나 반대로 놀림당하며 놀았다. 그 외에는 엄청나게 잘 졸았고, 무협지나 만화책을 몰래 읽거나 옆자리 친구와 필담을 나누는 등 온갖 안 좋은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억울하다면 억울한 것이, 수업이 흥미로울 때면 나는 최고의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힘을 얻을 정도로 대답을 잘하기도 했고, 아침마당 어머님들 이상으로 리액션을 잘하기도 했으며, 때론 안 좋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유머도 제공했다. 심지어 수업에 지친 선생님들이 ‘누구 나와서 노래할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면 단 한 번도 뺀 적 없이 터벅터벅 걸어 나가 “야, 신청곡 받는다ㅋㅋ”하면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성적은 엄청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공부와는 철저히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이상으로 떨어져 지냈다. 고교 시절 내가 푼 문제집을 다 통틀어도 한 권이 될까? 모의고사 기출문제 몇 장 푼 기억은 있다. 문제집 비용으로 아버지께 받은 돈은 대부분 안양 1번가의 '새천년 노래방' 사장님, 그리고 '모이세 분식 사장님'께 돌아갔다.


나와 함께 노래방을 다니던 무리가 몇 있었는데, 기본 일주일에 2번 이상, 하루에 세 번을 간 적도 있었다. 워낙 자주 간만큼 노래방 사장님께 우리는 의붓아들 수준은 되었다. 돈을 아예 안 받는 대신 알바처럼 정리나 가게를 잠시 맡기고 외출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친구들이 오면 시간 100분이 아닌 100곡을 넣어 주기도 하는 등 아지트처럼 활용하기도 했다.


올해 고3 친구들에게 자리를 빼앗길 것 같긴 하지만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고3이 바로 우리다. 2002 월드컵 덕인데, 나는 당시 붉은 악마 군포/산본 지구 멤버였다. 붉은 악마라니, 축구를 원래 좋아했느냐? 그건 아니었지만 같이 놀던 놈 중 하나가 대단히 열성적이었고, 나는 노는 자리는 이곳저곳 잘 끼던 차라 붉은 악마도 함께 가입하게 되었다. A매치부터 포르투갈 전까지 직관을 하는, 내 인생의 다시없을 축구광 시절을 경험했다. 나는 월드컵 기간 내내 광화문, 안양, 군포, 인천 등을 다니며 북을 치고 대~한민국을 선창하고 다녔다. 그 놀라운 시절을 온몸으로 즐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후회 없는 시간이었다.


친구들, 시대가 준 추억이 이처럼 많다. 정말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20년이 넘어도 기억이 나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음이, 마음속 깊이 존경하는 은사 한 분 없음이 괜스레 씁쓸하다. 늦깎이 초임으로 부임하신 고2 때 선생님이 그나마 졸업 이후에도 가끔 뵙긴 했지만 그다지 깊은 교류를 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분의 축가를 내가 부르긴 했다. 놀랍게도 “다시 시작하는 연인들”을 불러 드렸다. “그래 알고 있어 지금 너에겐 사랑은 피해야 할 두려움이란 걸.” 가사부터 축가답지 않다. 그래서 지금도 죄송하다. 아마 그게 깊은 교류를 막은 이유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이라는 역할은 무엇인가. ‘학교’란 무엇인가. 답답한 마음에 동료들에게 설문을 돌릴 정도로,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선생님과 학교가 학생으로 하여금 '공부에 대한, 학습에 대한 오해'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은 안다. 공부처럼 재밌고 설레는 일을 ‘재미없는 것, 지겹고 답답한 것’으로 여기게 하는 ‘오해’ 말이다. 나는 평생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모두가 나와 같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절대 적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그게 우리가 가진 '환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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