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참고, 억누르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
태풍이 지나간 9월의 날씨는 좋았다. 맑은 하늘, 따스한 햇살, 선선한 바람. 가을. 내가 참 좋아하는 계절.
집 앞 공원 벤치에 앉아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가 적셔놓은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돌리고 있었다.
사실 날씨에 대한 글을 적을 상태는 아니었다. 한숨도 못 잘 정도로 마음이 힘든 밤을 보냈으니.
이런저런 생각에 두어 시간을 보냈을까.
꽤나 어두워진 공원, 동네 꼬마들은 죄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심통이 가득 난 표정의 꼬마 하나가 돌계단에 턱 하니 걸터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돌멩이를 툭툭 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어, 그러고 보니 내가 자리를 잡을 때도 있던 녀석인데.
“너, 집에 안 가니?”
꼬마는 슬쩍 고개를 들어 나를 본 후 고개를 슬쩍 꾸벅이고는 다시 심통스런 표정으로 발로 돌멩이만 툭툭 건들었다. 누가 봐도 ‘저 고민 있어요.’ 모드였다. 오지랖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집에 가기 싫어? 근데 이제 좀 어두운데… 집에서 걱정하시지 않아?”
“집에 아무도 없어요... 아, 다들 늦게 와요.”
혹시라도 내가 가족이 없나 보다 생각할까 봐 말을 덧붙이는 것 같다. 가족에 대해 방어적이구나 싶었다. 예전의 나처럼.
“그렇구나. 아저씨도 어릴 때 텅 빈 집이 싫어서 친구 집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밥 잘 먹는다고 친구 엄마들이 칭찬도 많이 해 주셨고.”
“저도 잘 먹는다고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씩 웃었더니 녀석도 씩 웃는다.
말없이 하늘을 잠깐 바라보니 녀석도 하늘을 본다. 그러더니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아저씨네 집은 왜 아무도 없었어요? 혼자 살았어요?”
“아니, 아저씨도 가족들이랑 살았어. 근데 그냥 집에 가면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던 거야.”
“그렇구나.”
녀석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좀처럼 입을 못 여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내가 더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음. 아저씨가 살다 보니 제일 후회되는 게 하나 있는데, 그 이야기 좀 들어줄래?”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는 꼬마에게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뭐가 후회되냐면, 사람은 슬퍼해야 할 때가 있거든? 울어야 할 때. 너처럼 어린이들은 특히 참으면 안 되는데, 누군가에게 매달려서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하는데… 아저씨는 그러질 못했어.
아저씨 엄마가 큰 병에 걸려서 하늘나라로 가셨거든. 1년 정도 아프시다가. 그때 슬픈 걸 참고, 울음을 참았어.”
“왜요? 어른들이 참으라고 시켰어요? 혼날까 봐 무서워서?”
“아니. 아니야. 오히려 어른들이 불쌍해 보여서 참았어. 아저씨의 아빠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고, 두 누나는 일부러 밝은 척 애쓰고 있었거든. 툭 하고 끊어질 것 같은 팽팽한 고무줄 있지? 그런 것처럼 다들 위태로워 보였어. 그래서 아저씨도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 그때가 11살, 12살쯤이었지 아마."
“아저씨 속상했겠다.”
“그땐 속상하지 않았어. 오히려 뿌듯했지. 내가 사람들을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지. 아저씨가 제일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다들 아저씨가 힘들어할까 봐 걱정했거든. 그래서 오히려 더 까불거리면서 지냈어.
그리고 조금 뒤에 아저씨의 아빠가 다시 결혼했어. 재혼이라고 알지? 그래서 또 아저씨는 감정을 꾹 누르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
“... 어른들처럼요?”
“아... 그렇지. 어른들처럼.
새로 온 새어머니는 엄마가 될 수 없었어. 큰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에는 어리고 상처가 많은, 아니 스스로 상처를 만들어서 받는 사람이었거든. 우울증이라는 병, 들어봤니?”
“네. 그게 진짜 무서운 병이래요. 약을 먹어도 잘 낫지도 않는대요.”
“맞아. 그 병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새어머니 본인도, 아저씨 아빠도, 온 가족 모두 몰랐지. 그래서 힘들었어.”
“왜요? 병 때문에 아파서?”
“음… 솔직히 병 때문에 그랬다고 편들어 주고 싶지는 않아. 그 사람은 늘 피해자였고, 주변에 자기 아픔을 호소만 하면서 모두를 힘들게 했거든. 즐거운 날이든, 추모식처럼 마음이 슬픈 날이든 가족들이 모일 때면 과민한 반응에 스스로 상처 받고 힘들어하면서 ‘몸이 안 좋으니 자기 빼고 나가서 외식하고 오라’며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기 일쑤였지. 서로에게 부정적인 감정은 잘 표현하지 않고, 늘 배려하며 좋은 분위기를 위해 노력하고 지내던 가족들은 눈치를 보게 됐지. 그래서 아저씨는 감정을 또 눌러놓고 살았어."
“힘들었겠다.”
“너, 사춘기라는 말 알아?”
“네. 우리 형이 사춘기래요. 엄마한테 반항하고 막 그러더라고요.”
“하하 그래. 아저씨도 그때가 아마 사춘기였을 거야. 근데 그런 표현 한 번 제대로 안 하고 살았던 것 같아. 아저씨는 불편한 분위기가 싫었어. 특히 여러 사람에게 피해 주는 사람을 되게 싫어하거든 그런데 그걸 표현해 버리면 다른 가족들, 특히 아버지가 힘들어하실까 봐 걱정이 됐지. 그래서 그냥 참기로 했어.
그 참기로 한 게 제일 후회가 돼. 감정을 억누르고 지내서 아저씨도 마음의 병이 생겼거든. 그리고 가족들은 아저씨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지냈고.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폭발해서 더 큰 아픔을 낳게 돼.
꼬마야. 너도 억누르지 마. 슬프면 슬퍼해야 해.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꼭 표현을 하고.
가족이라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속상한 게 싫어서 꾹 참잖아? 그게 더 아프게 만들어. 너도, 네 가족들도. 그러니까 잊지 마.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야. 그리고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은 네가 어떤지를 잘 모르더라. 알겠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꼬마는 이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내 마음은 후련하기보다는 복잡하고 어려웠다. 한 번 휘저은 마음에는 작은 일렁임이 생겼고, 그 일렁임은 곧 태풍처럼 내 속을 뒤집어 놓기 시작한 것이다. 숨을 잠시 고르고 일어나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가끔 함께 농구를 하던 동네 동생이다.
이 녀석 얼굴도 심상치 않았다. 까불거리던 놈이 온 세상 근심은 다 가진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무슨 일 있냐?”
공원 옆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들고 나오며 물었다.
“… 형님. 진짜 싫은 놈이 있는데, 친구들이 다 같이 친하거든요. 후…그래서 머리 아파서요.”
“머리 아플게 뭐 있어? 왜 싫은데?”
“싫은데 이유가 있나요.”
“당연히 이유가 있지. 그냥 싫은 게 어딨냐.”
“… 맞아요. 걔 하는 행동이 진짜 마음에 안 들거든요. 이기적이고, 매번 분위기 망치고. 그래서 싫은데. 제 베프랑 걔랑도 엄청 친해요. 그래서 제 베프가 자꾸 용서하고 화해하라는데, 그 소리가 더 싫은 거 있죠? 서운하고. 뭐 그 친구도 사이에서 힘들겠지만요.
자꾸 용서해야 제 마음도 편해진다고, 뭘 그리 용서 못하냐며 되려 뭐라고 하기도 해요. 자기 소원이라고, 마음 불편해 죽겠대요.
형님. 용서 못하는 제가 옹졸한 건가요? 베프를 봐서라도 용서해야 할까요?”
“음. 글쎄… 나랑 상황이 비슷하네.”
“형님도 친구랑 안 좋아요?”
“아니, 친구는 아니고… 차라리 친구관계였으면 얼마나 편할까 싶다. 너 내 이야기 알지? 어린 시절 이야기. 그 뒷 이야긴데, 들어볼래?
대학생이 된 큰 누나는 집을 벗어나서 지냈어. 나는 집에 가기 싫어서 친구들이랑 늦게까지 놀고 나쁜 짓도 할 뻔했었지.”
“어떤 나쁜 짓이요? 형님 양아치였어요? 일진?”
“절대 아냐. 일진은 무슨… 노는 친구들이랑 두루 친하긴 했지. 음… 그냥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일들 좀 했지. 그래도 누굴 때리거나 하진 않았어.”
아무튼… 형은 그때 둘째 누나 덕분에 더 나쁘게 되진 않았던 것 같아. 내가 가출을 하지 않은 이유가 누나였거든. 착하고 배려심 많았던 누나한테 많이 의지했지.”
“그렇구나. 우리 형은 둘 다 안 착한데…”
생각해보니 누나도 고작 여고생이었는데. 관심이 많이 필요했을 텐데도 한참 어린 동생의 쉼터가 되기 위해 애쓰느라 힘들었겠구나… 나보다 더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누난데…
“으음. 어쨌든 나도 대학생이 됐어. 한동대학교라고, 저 멀리 포항이라는 곳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집안의 불편한 분위기에 힘들어하진 않게 됐지. 그렇게 졸업도 하고 군대도 다녀오고 했지. 근데 둘째 누나가 아프기 시작한 거야. 그때 많은 문제들이 함께 시작됐지.
형네 아버지는 둘째 누나를 살리려고 엄청 노력했거든? 근데 거기에 힘을 보태도 부족할 새어머니란 사람은 자기가 우울증으로 힘들다고 떼를 쓰더라고. 그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화 낼 여유도 없었어. 둘째 누나의 병은 어머니와 똑같은 위암이었어."
“아…”
“결국 누나도 하늘나라로 떠났고, 그때 새어머니에 대해 깊이 좌절했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와 책임도 다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아주 깊게 박였다는 말이지.”
“그래서 싸우기도 했어요?”
“아버지께서 그 뒤로 많이 힘들어하시더라고. 당연하겠지. 아내와 딸을 같은 병으로 잃었으니까.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서 난 일부러 화내거나 싸우진 않았어. 그런데 마음 깊이 실망하고 화가 나니까 가끔씩은 쾅 터지더라고. 몇 번씩 다투기 시작했어.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화가 났어. 자기 역할은 못 해놓고 대우받고 인정받길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모든 말들이 기분 나쁘게 들렸고, 여전히 감정적으로 행동하면서 자기 아픈 것만 크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어. 그런 모습이 엄청 싫었지. 환멸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그때 나도 진짜 힘들었어. 티는 안 냈지만 진짜 힘들어서 새벽까지 잠도 잘 못 자고. 누나 생각이 미칠 듯이 나더라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어버릴까 여러 번 생각도 할 정도였거든.
그때 게임도 엄청 했을 거야. 하루 종일 누나 생각이 나서… 그걸 잊으려면 게임이 최고였거든. 게임 실력이 엄청 늘더라."
“지금 롤 실력이 다 그때 생긴 거군요?”
“에이 지금은 비교도 안 돼. 아무튼 그러다 뭐 잔소리를 들었을 거야. 기분 나쁜 대화였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 불쾌해서 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날 걱정해서 그런 이야기를 꺼냈단 것 같은데… 내 자존심을 엄청 건드리는 말들이었던 걸로 기억해. 그런데 내 안에는 이미 인정하는 마음이 없다 보니까 그 말이 더 기분 나쁘게 들리더라고. 그래서 참다가 폭발했는데, 거기에 상처를 받았겠지? 그런데 가출까지 하더라. 나가고 싶은 건 나였는데 말이지.
게다가 일본에 있던 큰누나에게 문자로 호소하고 그랬나 보더라고. 큰 누나도 작은 누나가 하늘나라로 갈 때 이미 진절머리를 내고 살던 시절이었는데, 무슨 생각이었을까. 거 참. 어쨌든 그 사건이 결정타가 됐지. 큰 누나는 그 시점부터 새어머니와 연을 끊어버렸어. 나도 그전까지 새어머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아주 조금의 정과 안쓰러운 마음들도 있었거든? 그때 죄다 버리게 됐지.
이후 대충 정리가 됐어. 그래도 나는 아버지의 아내로서 그 사람을 존중하려고 애썼어. 나도 결혼을 했고. 근데 아이를 낳으면서 아내가 45일 동안 입원을 했거든?”
“조산기가 있었다고 했었나요?”
“어 맞아. 태아를 지키려고 진짜 힘들고 무서웠지. 아내는 입원해 있는 내내 중환자실이라서 면회도 잘 안 됐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지. 난 혼자서 병원에 들락거리면서 힘든 마음을 버티고 살았고. 그런데 그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찾아오지도 않더라.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어차피 와 봤자 면회도 길게 못 한다고 오지 말라고는 했지만 진짜 안 오더라고.
아기를 낳고도 마찬가지였어. 회복도 못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아내는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고, 아저씨도 일하랴 아내와 아이 돌보랴 정말 힘들었거든. 그럴 때도 뭐 전혀 도움을 줄 생각도 안 하더라고. 말이라도 맡아줄 테니 좀 쉬라고 할 줄 알았거든? 단 한 번도 그런 말이 없더라.
다른 사람들이 육아가 힘들다고 하면 난 늘 말해. 아주 잠깐이라도 숨 돌릴 틈이 있으면 버틸 수 있는데, 그게 없어서 몇 배로 힘들었다고.
아이가 혈우병이라는 큰 병을 가지고 태어난 걸 알게 됐을 때, 진짜 지옥 같은 심정이 들었지. 그때도 아내와 단 둘이서 이겨내야 했어.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야."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 쌓인 걸 토해내듯.
"그래도 잘 지내려고 노력을 했었어. 아내랑 아이를 위해, 무엇보다 아버지를 위해.
큰 누나는 몇 년이 지나도록 새어머니와 의절을 유지하고 있었고, 아버진 그걸 대단히 힘들어하셨거든. 그래서 나도 애써서 잘 지내보려고 노력한 거야. 아이 돌맞이 해외여행도 함께 가고, 제주도, 부산 등 함께 여행을 많이 갈 수 있게 힘썼지. 마음 같아서는 안 보고 살고 싶었지만 말이지.
아내도 참 착한 사람이라서 내 닫힌 마음을 풀어주려고 엄청 노력하면서, 새어머니를 잘 챙기려고 노력했지.
그런데 사람은 진짜 안 변하더라. 자기 몸이 안 좋을 때 연락도 없었다며 전화를 걸어서 서운하다고 우리 부부에게 말하더라고. 그때 진짜 힘들 때였거든.
장모님이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셨고, 무엇보다 장인어른이 그때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였어. 심정이 어땠겠니? 게다가 일도 잘 안 풀릴 때였어. 회사 동료와의 큰 갈등, 진로에 대한 고민까지 겹쳐서 공황까지 온 상황이었지. 옛날부터 있었던 수면장애 때문에 몸도 많이 아픈 걸 겨우 버티던 시기였고.
그런 상황에서 서운하다고 전화로 투정을 부리는 그 사람을 보니 감정이 주체가 안 되더라. 억눌렀던 감정들이 폭발한 거지. 내가 내 상황과 상태를 말하고 그만 하라고 했는데도 되려 소리를 지르면서 전화를 끊더군. 그 날 이후 그 사람은 내 인생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지."
“에고…”
“아, 미안. 내가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고발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용서는 진짜 어려운 거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어.
사람은 각자의 시선과 상황, 입장이 있지. 난 내 입장에서 말한 거고, 새어머니는 그 나름의 고된 삶과 서운함, 서러움도 있겠지.
아버지도 본인의 입장에서 서운함과 아쉬움이 있으신지 문자로 화해와 용서를 하라고 등을 떠밀곤 하셔. 근데 그게 참 곤란하다 못해 서운하고 화가 나더라.
당사자는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자꾸 압박을 하면, 게다가 꼭 소중한 사람과의 특별한 날들, 아이나 아내 생일을 핑계로 화해하고 용서하라고 하시니 못 견디겠더라고.
용서는 진짜 어려운 거야. 시간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당사자의 마음이 정리가 되고 준비가 되었을 때 이뤄져야 하는 거지."
“네. 형. 맞아요. 그럼 저는 이제 어쩌죠?”
“베프한테 이 마음을 전해야지. 아마 그 친구도 우리 아버지처럼 전혀 모르고 있었을 거야. 사실 형도 어제 아버지께 문자를 받았어. 새어머니 생신도 다가오고 추석도 다가오니까 용서하고 화해하면 안 되겠냐고. 그게 자기 삶의 유일하게 남은 소원이라고.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더라. 진짜 미치겠더라고.
근데 나는 이미 이전에 용서와 화해를 할 생각이 있다고는 말씀드렸었어. 내 마음은 안 풀렸지만, 그래도 나 하나 조금 마음 힘들면 되니까. 다만 등 떠밀리고 싶지 않았어. 자꾸 압박을 하시니 그게 참 싫더라.
아내도 중간에서 안절부절못해하면서 혼자 애를 많이 쓰곤 했는데, 그 모습이 진짜 더 큰 스트레스였고.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아들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용서를 빨리 했으면 하셨나 봐. 그래서 내가 이렇게 글로 적어 말씀을 드렸지.
혼자 감정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곁에서 아내의 좌불안석하는 모습이나, 이런 말씀들을 들으면 압박으로 느껴집니다. 그런 압박들이 부정적인 마음을 키우고요.
이 일은 등 떠밀리고 싶지 않습니다. 제 감정을 제가 정리하지 않은 채로 간다고 무슨 좋은 상황과 분위기가 생기겠습니까. 몸만 같이 간다고 아버지께서 원하는 훈훈한 모임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요?”
“서운해하시더라. 용서가 그리 힘든 것이었냐고.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지. '내가 말하지 않고 지냈더니 내 입장을 전혀 모르고 지내셨구나, 왜 용서하지 못하는지 공감하지 못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 공감하신다면 저렇게 말씀하진 않으실 거니까.
그래서 아까 어떤 꼬마한테 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너한테 해 준 이야기까지 쭉 적어서 보내 드렸어. 이제는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말 안 하고 무작정 혼자 끌어안고 살았던 내 잘못이었지.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와… 그걸 보시곤 어떠셨어요?”
“사과하셨어. 그럼에도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도 하시고. 그러면서 자신의 삶, 어려움, 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시고, 종교적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도 하시고. 우울증의 힘듦과 교회에서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새어머니에 대한 이해를 종용하시기도 하고.
그러면서 아들인 나를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용서하고 마음이 편해지길 바란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근데 그게 내 입장에선 여전히 챗바퀴인 거지.
그래서 내 입장을 다시금 말씀드렸지.
아버지는 못내 아쉬워하시다가, 결국은 ‘그저, 그냥, 사랑한다.’라고 하셨어.”
“아버님도 대단하시네요.”
“그렇지. 결국 자신을 사랑한다는 아들이, 자기 소원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전한 거니까.
사실 따지고 본다면 내가 잘못 쌓은 성이야. 감정을 가두지 말고 흐르게 했어야 했지.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하면서.
내가 마음을 쓰고 살았다는 것을 주변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고 착각했고.
배려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고, 다른 사람들을 악당으로 만들고 살았던 거 거지.
물론 좋은 의도였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이야기하라고 말하고 싶어. 자신을 속이지 말고.
그래도 괜찮다고. 그래야 괜찮아진다고.”
“형, 힘드셨겠어요.”
“어. 진짜 죽겠더라.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어. 너도 힘들 텐데 미안하다. 너한테 도움을 주려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아, 아녜요. 저도 제 베프한테 잘 이야기하려고요.
근데 그 싫은 친구 용서는 잘 모르겠어요. 아직은 그러고 싶질 않아서... 형님은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솔직한 마음으로는 새어머니와의 시간을 '애증의 세월'이라고 퉁치고 싶지 않아.
내 안의 분노와 지탄의 목소리가 훨씬 크니까. 애 보다 증이 훨씬 큰 상태인 거지. 내 개인적인 인간관에서도 맡은 바 책임을 제대로 다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상처를 더 주고 싶지 않아. 악한 의도였던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그 인생, 그 세월을 부정하는 것이 될 테니까. 그건 참혹하거든.
게다가 굳이 그 사람이 아프게 하고 싶은 복수심은 전혀 없어.
그리고 가장 큰 건 내가 그런 에너지를 기울이기엔 나 또한 많이 지쳐있거든. 그냥도 힘들어.
조금 더 여유가 생긴다면, 적절한 시기에, 내 마음이 말하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은 아닌 것 같아.
기다려 보려고. 그래서 시간이 필요한 거지.”
나의 글들이 다 그렇긴 하지만 유독 이 글에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 개인적 관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쓰는 동안에도, 퇴고를 하는 지금까지도 고민이 된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게 옳은 걸까? 괜찮나?
누군가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 비난할 수도 있다.
어머니와 누나, 아들 이야기를 담은 내 세바시 강연 또한
아버지와 누나는 가슴 아파서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보지 않으셨다.
나처럼 자기 이야기를 꺼내어 놓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불쾌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각색을 하려고 해 봤지만, 부족한 필력 때문인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바에 그냥 쓰자라는 마음으로 적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이건 내 삶의 의미이자 목적이기 때문이다.
내 삶의 아픔, 고민이 누군가의 약재료가 되게끔 하는 것. 등불이 되게 하는 것. 똑같은 실수와 잘못을 하지 않게끔 돕는 것.
누군가가 만든 이정표. 그건 누군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꽤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다. 덜 헤매게 하고 싶은 마음. 덜 방황하게 하고픈 마음. 덜 아팠으면 하는 마음. 안 그래도 힘들고 무거운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마음.
어떤 이는 세바시 강연을 통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했다. 위로받았다고 했다.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했다. 강의와 코칭을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를 통해 누군가가 힘을 얻는다는 것. 그게 내 최고의 보람이며 기쁨이다.
네까짓 게 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부러질지언정, 다시금 가지를 뻗는 소나무와도 같은 사람이라서
그저 누군가를 향해 계속 팔을 내밀 것이다.
진심이 담긴 이야기가 주는 힘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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