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머애들러 #독서법
"애들러 선생님! 이쪽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가워요."
간결한 답을 하는 큰 테의 안경을 쓴 노신사. 편안해 보이지만 완고해 보이기도 한 인상의 그가 바로 오늘 인터뷰를 하기로 한 모티머 애들러이다.
공교육의 개혁을 제창하고 독서법으로 유명한 모티머 애들러.
그는 미국의 철학자, 교육사상가, 저술가로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철학자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시카고 대학교에 재직하였고, 로버트 허친스 등과 함께 항존주의 교육사상을 주장하였으며, 파이데이아 제안을 통해 공교육의 개혁방안을 제시한 인물이다.
"선생님, 독서법, 독서의 기술로 유명하셔서 그런데요. 만나게 되면 꼭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습니다.
저는 왜 책을 읽어도 생각이 안 나고 멍하기만 할까요?"
"그건 학생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배운 적이 없어서 그래요."
“학생이라고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듣네요. 그런데, 책을 읽는 방법이라고요? 그냥 글자를 읽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요? “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에요. 고전을 통해 우리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진리를 배울 수 있어요. 특히 좋은 책은 열심히 읽으면 그 대가가 확실히 있답니다. 일단 책 읽는 기술이 늘어요. 또 좋은 책은 이 세상과 독자 자신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
"음... 저는 독서를 할 때 별생각 없이 이 문장은 무슨 뜻일까? 에 대해서만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누구나 그렇게 시작합니다. 그게 바로 초급 독서지요. 괜찮습니다. 조금씩 배워가면 되니까요."
"그럼 선생님, 그다음 단계는 어떤 것인가요?"
"점검하며 읽어보세요. 띄엄띄엄 골라 읽는 것이죠. 무엇에 대해 쓴 글인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어떻게 나눌 수 있는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으면 좋아요. 목차를 본 적이 있나요?"
"아뇨. 그냥 제목을 보고 고르고 바로 첫 페이지를 읽었어요. 어차피 순서대로 읽을 거라서 목차를 중요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죠."
"저자가 목차를 쓴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목차를 읽어보며 먼저 말했던 질문들을 해결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글쓴이의 의도를 잘 이해한다면 책의 전반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겁니다."
"앞으로는 목차뿐 아니라 머리말도 꼭 읽어볼게요. 잘 생각하면서."
"좋아요. 그다음은 분석하면서 읽어보세요. 아주 철저하게.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아주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 자기가 맞붙은 책을 완전히 피가 되고 살이 될 때까지 철저하게 읽어버리는 겁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선생도 이렇게 말했어요. ‘책은 맛봐야 할 책과 삼켜야 할 책이 있다. 또, 약간이긴 하지만 잘 씹어서 소화해야 할 책도 있다.’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읽는 겁니다."
"아, 그분께서는 맛있어 보이는 이름처럼 책도 맛있게 드셨나 봐요!... 죄송합니다… 가장 고도의 독서 수준은 어떤 것일까요?"
"신토피칼 독서지요."
"그것도 열대과일처럼 굉장히 맛있어 보이는 이름이군요!"
"…"
"…죄송합니다. 그건 어떤 독서법인가요?"
"한 권뿐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대해 몇 권의 책을 서로 관련지어서 읽어보는 겁니다. 해당 주제에 대해 기술한 책을 찾아서 본다면 큰 그림을 보는 눈도 생기게 되지요. 여러 시각을 배우게 된다면 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는 것이죠."
"아하. 저는 경복궁이나 여러 궁궐을 가는 걸 좋아합니다. 여럿이 가는 것도 좋아하고 혼자 가는 것도 또한 좋아합니다. 이렇게 궁궐을 좋아하게 된 까닭은 궁궐의 여러 문화유산과 경관을 보는 방법을 알게 되면서부터이죠. 그전까지는 그냥 사진을 찍는 곳, 이야기 나누며 데이트하는 곳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함께 걷던 한 분과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가이드를 따라가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지요. 각각의 전각과 그 안에 거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궁궐의 지붕이 어떤 구조이고, 궁궐 전체의 구조는 왜 이렇게 배치했는지, 혹은 하다못해 바닥에 깔아놓은 돌마저도 그러한 형식을 갖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으니까요. 그 이후로는 궁궐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건축양식이나 기술 등의 수많은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궁이나 혹은 다른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았을 때도 내용뿐 마니라 건축 양식을 본다든지, 구조를 본다든지 하는 등 여러 다른 시각을 갖게 했죠.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다르리라."
"맞습니다. 제대로 이해했군요. 오늘 학생과 대화를 하니 확신할 수 있네요. 독서법과 같이 진리는 절대적으로 존재합니다. 다만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을 뿐이죠. 그러니 공교육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제대로 된 진리를 배울 필요가 있어요."
"그게 가능할까요?"
"국가 주도 하에 12년 동안 국민공통교육을 실시해야만 합니다. 기본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니, 깊은 학문을 대학에서 가르쳐야 하고요. 그렇게 진리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시간과 문화에 관계없이 동일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존중받고,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요. 고전을 통해 그 길을 나아갈 수 있습니다. 출세가 문제가 아니에요. 진리에 입각해서 경건하게 사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절대적인 가치를 알아야만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세울 수가 있는 겁니다.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도록. 그래서 저와 절친한 허친스 총장이 100권의 훌륭한 책을 선정했습니다. 위대한 책들이죠."
"그렇지만 그게 모두에게 가능할까요?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경제적 문제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게다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사람들마다 취향도 좀 다를 거고요."
"교육은 생활의 준비입니다. 그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있습니까? 교사의 훈련과 통제로써 극복해 내야 합니다. 모두에게는 꼭 필요한 보편적 교육이 있으니까요. 교육의 기회가 반드시 주어져야만 하죠. 그래서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는 겁니다."
"선생님, 한국의 공교육에서도 공통적인 교과목 위주의 노력을 강조하며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런 교육환경이 인간의 다양한 가치체계를 소홀히 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아마 기본 교육이 고등교육으로 가는 수단으로 쓰였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공교육은 모든 인간이 각자의 학습 세계로 들어가는 준비 역할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적지나 취업을 위한 수단이 아니지요. 인간은 평생 교육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준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객전도 된 대한민국 현실이 아쉽네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나다운 것이 가장 창의적인데, 선생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되기까지의 기본 준비여야 하는 공교육이, 단지 고등교육을 위한 수단으로써만, 취업의 발판으로만 쓰이는 지금이 참 안타깝습니다. 오늘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의 공교육이 가야 할 진정한 방향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그가 제창한 공교육의 혁신은 분명 대한민국 공교육의 모습과는 다른데,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것이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각자의 학습세계로 들어가는 준비를 시켜주고자 했던 그의 철학이야말로 교육에 몸을 담은 나와 같은 사람들이 반드시 회복해야 하는 핵심이 아닐까?
#모티머애들러 #교육학 #독서법 #교육이론 #인문학 #교육철학
모든 책은 빛이다.
다만 그 빛의 밝기는 읽는 사람이 발견하는 만큼 밝아질 수 있다.
결국 독자에 따라서 그것은 빛나는 태양일 수도,
암흑일 수도 있다.
-모티머 애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