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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와 융. 오늘은 두 거장을 만난다는 사실이 이질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알프레드 아들러, 현대 심리학의 거장. 의사, 심리치료사로서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칼 구스타프 융, 역시나 현대 심리학의 거장으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라 할 수 있다.
아들러와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어색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인식이 유대인들만의 전유물로 굳어지는 걸 원치 않았던 프로이트는 당시 이인자였던 아들러가 아닌 융에게 학회를 이끌도록 했다.
그 시기가 하필이면 아들러 입장에서 자신과 이론적 지향점이 다른 프로이트를 불편해하던 차였다. 그래서 프로이트와 갈라지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어쩌면 융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둘을 한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니…
문을 열자 말끔히 차려입은 두 노신사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먼저들 와 계셨군요. 두 분 인사는 서로 나누셨죠?”
내가 먼저 의식하면 할수록 더 어색할 것 같아 둘의 관계를 모르는 척 말을 걸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둘은 서로를 보며 씩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물론, 오랜 친구를 만나니 반갑다네.”
궁금해진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 두 분, 서로 괜찮으세요?”
“괜찮다 마다. 프로이트 그 양반이 워낙 꽉 막혀 있어서 그렇지. 우리는 이른바 공동의 적을 가진 전우랄까? 적의 적은 친구니까. 하하하 안 그런가?”
아들러 선생님이 웃으며 융 선생님께 말을 건넸다.
“하하. 적이랄 것까진 없고. 프로이트 선생님은 훌륭하신 분이지. 다만 늘 제자나 동료들을 환자처럼 바라보고, 자신의 권위에 대한 위기의식을 늘 가지고 계셔서 힘들게 사셨던 것 같아. 그 점이 못내 아쉬웠지."
융 선생님도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그는 위대한 사람이야. 모든 초점을 인과관계, 원인에 둔 점은 나와 생각이 달랐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정신에 대해 연구했을 만큼 열정적이고 훌륭한 사람이었어. 나와는 다른 길을 갈 수 밖엔 없었지만.”
“그럼 말 나온 김에, 왜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시는 거죠?”
“이런 평이 있더군. 프로이트 선생이 정이라면 내가 반, 그리고 여기 융 선생이 합이라고.
그걸 완전한 표현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프로이트 선생과 나는 지향점이 완전히 달랐다고 할 수 있지. 그는 신경증의 모든 원인을 성욕의 억압에서 찾으려 했지. 나는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네.
나는 ‘열등감’에 집중했지. 사회성을 갖추게 된 이후 열등감이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그게 동기가 되어 인간은 나아간다네. 물론 열등감에서 얻은 동기를 활용해 얻은 성과가 제대로 자존감을 채우지 못하면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뒤틀린 삶을 살게도 되지만 말이야."
“ 그럼 '열등감’이 인간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동기라는 말씀이시죠? 좋은 예가 있을까요?”
“나폴레옹이 키가 충분히 컸다면 그는 황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내가 말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나폴레옹은 평균 이상의 키였다더군요. 사후에 그의 키를 잰 수치를 영국에서 멋대로 자기들 기준으로 바꾸다 보니 나온 촌극이었다고…”
빙긋 웃으며 융 선생님이 거들었다.
“나도 들은 적이 있네. 프랑스 단위인 피에를 영국 기준인 피트로 적어버려서 ‘나폴레옹은 키가 작다’라는 것이 사실이 되어 버렸다지?”
“… 엣 헴. 비유는 비유일 뿐이네. 나도 그걸 들은 적이 있네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는가!”
“왜 화를 내고 그러세요. 어쨌든 좋은 예시이긴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이론이거든요. 인간이 가진 가능성을 잘 나타내기도 해서요.”
“인간은 선과 악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일세. 사회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영향을 받는 것이지. 그래서 의식적 자기 결정과 자유의지가 더 중요한 것이고. 나는 그래서 과거의 원인을 찾아내어 균형을 맞추는 프로이트 선생과는 다르게 앞으로 추구하는 목표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 집중하게 되었지.”
“그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점입니다. 선생님의 이론은 오늘날 각박한 사회정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고 있어요. 모두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들에게 있어서 선생님의 이론과 사상들이 반가운 거죠.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씀처럼요. 그리고 요즘은 사회적 관심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거든요.”
“그렇다면 다행이지. 모든 문제는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다네. 모든 공동체가 관심을 기울인다면 해결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네.”
옆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융 선생님께 질문을 드렸다.
“융 선생님. 선생님도 프로이트 박사님과 결국은 멀어지셨죠? 그 이유가 뭘까요?”
“아까 얘기했지만 프로이트 선생님은 자신의 권위를 위협받는다는 인식이 들면 늘 두려워하셨다네. 나와의 대화에서도 여러 번 실신하실 정도로 말이지. 하지만 나는 그가 싫어서 그를 떠난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멀어진 것이지. 그는 성욕을 통해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나는 반드시 성욕만이 중심적 특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그에겐 그것이 큰 도전이자 위협이라고 여겨진 모양이야.
무의식에 대한 견해 차이도 많았지.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나온 것이고. 꿈 또한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지."
“그렇군요. 선생님 역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닌 이론적인 지향점이 달라서 다른 길로 가실 수밖에 없었네요. 저는 융 선생님이 심리학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신 영혼이라는 표현이 참 좋습니다."
“프로이트 선생님은 현실 적응이 주된 초점이라면 나는 진정한 자신이 되게끔 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네. 선생님이 중요하게 여기신 ‘승화’라는 개념은 결국은 '용인받을 수 없는 욕망'을 '용인받을 수 있는 욕망'으로 대체할 뿐이니까."
“선생님의 개성화는 더 깊은 본질을 향해서 가게끔 하는 개념인 거죠? 저도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오늘은 중점적으로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누가 꼭 물어봐 달라고 하더라고요.”
“오 어떤 건가?”
“선생님이 말씀하신 심리유형들에 대해 궁금해요. 선생님의 영향을 받은 후학들이 MBTI라는 진단으로 발전을 시키기도 했고, 콜브와 맥카시라는 분들이 학습으로 연결시키기도 했거든요. 저희도 그 이론인 4MAT을 중심으로 교육을 하는 사람들이라, 꼭 여쭤보고 싶은 부분이었어요."
“자네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 어디까지 인지는 모르겠지만 훌륭한 후배들이 잘 정리해 뒀을 걸세. 간단히 말하자면 대상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외향적 태도, 내향적 태도로 나뉜다네. 이건 알고 있지?"
“네. 저희는 학습에서 이해를 많이 했습니다. 사람과 사물들과의 교류를 통해 이해하려 하는 외향적 유형과 자신의 내면 감각에 의해 이해하려 하는 내향적 유형으로 말이죠.”
“그렇지. 중요한 건 ‘행동의 동기를 어디서 얻는가’로 바라봐야 하는 거야. 단순히 활달한지, 아닌지가 아니지. 그건 그러한 태도를 보일 때 나타나는 하나의 반응일 뿐이야.”
“네. 그리고 판단적 기능으로 사고유형과 감정 유형으로 나누신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버니스 맥카시 박사는 사고유형의 대질문을 What으로, 감정 유형을 Why로 정리해 두었죠. 무엇인지를 알고, 명명하는 사고유형, 가치를 고려하고, 관점과 견해를 발견하는 감정 유형으로요.
나아가서 요소적 기능을 나눌 때도 감각 유형과 직관 유형으로 두셨는데요. 어쩌면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감각 유형은 지각적이고 현실적인, 주관적 경험을 체험하기 위한 유형이라 하셨죠? 그래서 How라는 대질문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무의식적 과정, 잠재적 내용에 의한 지각을 말하는 직관 유형에는 가능성을 위한 IF라는 대질문을 두었고요."
“괜찮은 질문들이군.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감각과 직관의 차이를 잘 이해해야 하는 것이네.
‘이가 아프다’는 것처럼 자극의 근원이 설명 가능한 것이라면 감각이고 그럴 수 없이 ‘그냥 좌우간 그렇다.’라고만 할 수 있다면 직관이지. 근거가 없이 ‘그냥’ 아는 것이야.
판단적 기능을 합리적 기능이라고도 하고, 요소적 기능을 비합리적 기능이라고도 하는데, 비합리적이라 해서 이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관계가 없을 뿐, 무 이성적, 무 판단적이라는 뜻이야. 여기서 위에 말한 태도와 연결되면 더 다양하게 유형이 나눠지지.”
“네. 저희가 공부한 내용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니 정확하게 알고 싶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잘못 알고 있으면 안 되니까요. 어이쿠! 어느덧 4페이지, 아니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제가 가정이 있다 보니… 귀한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시게. 시간이 멈춘 우리와는 다르게 자네의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언제든 찾아오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