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의 '쓸모', 그리고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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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의 '쓸모', 그리고 어린 왕자.
'한국형 책 읽기'는 책을 빠르게 읽고 요약해서
핵심 메시지와 쓸모 있는 구절들을 잘 뽑아내는 것
책의 '쓸모'를 찾는, 극도의 효율성 추구다.
그게 우리가 국어 시간에 요구받은 능력이었다.
긴 지문을 툭 잘라놓고, 작가의 의도를 묻거나
어떤 인물인지, 그의 성격이나 감정을 유추시키곤 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국어 시험 성적은 썩 괜찮았다.
수능도 언어영역 만점을 받을 정도로
'한국형 책 읽기' 능력은 자신 있었다.
만화책으로 단련된 속독과 맥락 파악이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아주 효율적인 능력이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4~5권 정도는 뚝딱 정리할 수 있다.
실제로 강의를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읽어선 안 될 책들도 많다.
단순히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말이 아니라
작가, 당시 시대상황, 주변 인물 등을 연구하면서,
또는 작품에 따라 스스로를 대입해 보거나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각자의 시선을 공유해 보는 등
조금 더 깊고 풍성한 독서가 필요하기도 하다는 걸 최근에 많이 느낀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어린 왕자'다.
'어린 왕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문학 작품에 꼽힌다.
'명작'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다른 고전들에 비해
쉽고, 짧고, 읽기에 부담 없기 때문이리라.
다만 생텍쥐페리 형도 '동심에 대한 동경'만 담긴 동화로 인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우려했다고 한다.
'예전에 본 적 있는, 유명한 감성적 동화'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과 가치관을 통째로 '갈아 넣어',
놀라운 통찰을 담은 비유들을 사용해 함축적으로 재구성한 이야기라서
아마 그런 우려를 했으리라.
그는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충고하고 싶었던 것 같다.
최근 북클럽을 위해 저자와 주변 인물, 시대상황 등을 공부하며,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나를 반영해 보면서 읽었다.
작가가 이 대상을 통해 의미한 것은? 이런 퀴즈를 푸는 게 아니라,
그것과 어긋나더라도 나만의 해석을 해 보기 위해서
모든 대상에 대해 '나는? 내 주변에 비슷한 대상이 있나?'
라고 자문하며 차근차근 읽었다.
어릴 때 한국형 책 읽기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 이러이러한 의미를 전하기 위해 이런 설정을 했구나.'
라는 오만한 평론가가 아니라
'아, 내게도 이런 대상이 있을까? 만약 나를 이렇게 표현한다면?'
이라는 독자로서의 상상과 반영을 하게 되었다.
'어린 왕자'라는 작품은 '쓸모'를 찾는 독서방법에 비춰 봐도 '쓸모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읽히기에는 너무도 위대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