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이론으로 생각해본 요즘 아이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문득 낯선 벽 하나를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이는 분명 단어를 알고 있습니다. 말을 잘합니다. 그런데 막상 짧은 글 하나를 쓰게 하면, 문장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내용은 단편적이고, 문장은 구어체로 흩어져 버립니다. 생각을 정리하는 힘이 부족한 걸까요? 아니면 생각은 있지만 글로 옮기는 방법을 모르는 걸까요? 그냥입으로 하는 구어체를 그냥 나열을 하다보니 가독성이 떨어지고 문단 구분이나 띄어쓰기는 바라지도 않게됩니다.
이런 순간마다 저는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책은 얼마나 읽니?” 대답은 늘 비슷합니다. “안 읽는데요.” 읽는다 하는 학생들조차 읽는것이 아니라 오디오북이나, 책의 요약본을 읽거나 그마저도 유튜브로 듣는 정도입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단지 스마트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지금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구어 중심의 언어 환경 속에서 자랍니다. 손에 쥔 기기의 화면 속에는 실시간으로 흘러가는 말들이 있고,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대부분 말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문장은 대화체이며, 생각은 말로 풀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라고 하면, 말하듯 쓰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문해력 부족'이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한 깊은 언어의 변화가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철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특히 20세기 언어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사유는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단지 단어들의 집합이나, 의미를 담는 상자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기 철학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언어의 의미는 그 쓰임 속에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말이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방식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사족을 달자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이 둘 사이의 차이는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후기 언어철학에 대해서 말씀드리는겁니다.)
그는 이러한 언어의 다양한 쓰임을 '언어 게임'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명령하기, 부탁하기, 설명하기, 이야기하기… 우리는 모두 이러한 언어 게임을 통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각각의 언어 게임은 고유한 규칙을 지닌 사회적 행위입니다. 마치 바둑이나 체스를 배우듯, 각 언어 게임 역시 반복과 훈련을 통해 익혀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어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글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단지 ‘지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훈련된 언어 활동이며, 일종의 고유한 언어 게임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을 배우듯 글도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문어체는 구어체와 완전히 다른 규칙과 질서를 가진 언어 세계이며,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훈련의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 바로 독서입니다. 독서는 문어체 언어 게임에 참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타인의 문장을 읽고, 그 구조와 논리를 따라가며, 낯선 단어와 문법에 익숙해지는 과정. 그것이 바로 문해력을 키우는 시작점입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문장에 익숙해질 수 없고, 문장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생각을 글로 옮기는 힘은 자라나지 않습니다.
문해력의 문제는 단순히 글쓰기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아이들의 사고 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철학적 신호이기도 합니다. 빠르게 소비되고, 짧고 감각적인 언어만이 지배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긴 호흡의 문장을, 논리의 결을 따라가는 사고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신의 생각을 깊이 있게 펼쳐내는 힘도 함께 사라집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합니다. 철학의 임무는 "언어의 오해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저는 이 말을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을 글로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참여하지 못한 '언어 게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글을 읽게 해야 합니다. 다시 문장을 따라가게 하고, 논리의 결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생각을 키우는 일이며,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시작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지식을 얻는 행위가 아니라, 언어를 배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언어를 익힌다는 것은, 결국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다시 책을 읽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이의 삶을 깊게 만들어주는, 철학적이고도 인간적인 요청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