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꽤 흥미롭고도 씁쓸한 글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이 친구에게 생일 선물을 줬는데, 그 친구가 본인의 생일에는 아무런 선물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조금 서운하다’ 정도를 넘어서 ‘인성이 문제다’라는 비난으로까지 번졌다는 것입니다.
그 글의 댓글들은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그런 친구는 친구도 아니다”, “손절해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등등, 선물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어디로 가고, 손익계산서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마음 한구석이 꽉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면, 그것은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입니다.
내가 줄 때 이미 끝난 것입니다.
그 이후에 그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돌려주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이미 선물이 아니라 일종의 뇌물이고, 품앗이에 불과합니다.
서로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는 품앗이는 분명 아름다운 전통이지만, 그것은 주고받음이 서로 약속된 것이기에 선물과는 다릅니다.
선물은 오로지 ‘내 마음의 자발성’으로 시작되고, ‘주는 순간 끝’이어야 합니다.
예전에 제 개인적인 경험도 하나 떠오릅니다.
15년도 더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어려운 형편의 한 아이가 피아노를 너무 배우고 싶어 하는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 피아노를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침 집에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피아노가 하나 있어, 고민할 것도 없이 그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피아노라는 악기를 직접 쳐보고, 음악의 꿈을 조금이라도 꿀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제 아내가 “그 집에서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더라”라며 조금 서운해하더군요.
그때도 저는 똑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뭘 바라고 준 게 아니지 않느냐.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을 그 모습이면 된 거다.”
돌이켜 보면, 선물을 주는 마음도 참 각박해진 것 같습니다. 서로 잘해주고 돌려받고, 주고받음에 익숙한 사회는 인간관계를 따뜻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주고도 못 받으면 손해’라는 생각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계산적으로 관계를 따지다 보면 어느새 선물은 사라지고, ‘계산된 보상’만 남게 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물질만능주의, 즉 돈과 교환가치 중심의 사회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물질이 부족해서 정과 마음으로 채웠습니다. ‘쌀독에 쌀이 있어야 마음도 있다’는 말이 있지만, 지금은 오히려 물질이 넘치면서도 정은 더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 마음의 빈곤이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나누어야 할 선물조차 가격표가 붙고, ‘얼마짜리를 주었으니 얼마짜리를 돌려받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돌려받지 못하면 상대의 인성을 의심하고,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등장합니다.
선물이 선물이 아닌 시대입니다.
어쩌면 이건 SNS 문화의 영향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뭘 받았는지, 얼마짜리를 받았는지가 공개적으로 공유되고, 그에 대한 평가가 일파만파 퍼집니다. ‘내 마음만 주면 된다’는 선물의 본래 의미가 ‘남들이 보기에 충분히 괜찮은가’를 먼저 따지는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렇게 비교와 평가가 난무하다 보니, 진심은 사라지고 가성비와 등가교환만 남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선물은 선물일 뿐입니다.
주고 나면 끝입니다.
마음이 오가는 데에는 가성비도 없고 시가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고도 그것을 되돌려받지 못해 서운하다면, 애초에 주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정말 주고 싶었는지, 아니면 보답을 기대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감사 인사를 받지 못하면 인간적으로 서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감사받으려 준 것이 아니라면, 마음속에서 쿨하게 내려놓는 것이 진짜 선물의 자세라고 봅니다. 그것이야말로 마음의 여유이고, 진짜 부유함 아닐까요.
마음이 점점 더 각박해지는 시대입니다.
저부터라도 ‘주는 순간 이미 끝났다’는 태도로 사람을 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런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는 ‘내가 주는 마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글은 충분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