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중반을 넘겨가는 여태까지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밖에 지각을 해보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몇 번의 지각조차도 대부분은 교통사고나 천재지변에 가까운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럴 때조차도 저는 사전에 연락을 드렸고, 늦더라도 10분을 넘긴 적은 없었습니다. 12년간 학창 시절을 개근으로 채웠다는 사실은 저에게 그리 대단한 훈장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군 생활을 했을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였지요. 정확한 시간, 철저한 준비,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환경에서 보낸 시간들은 ‘지각’이라는 개념 자체를 제 삶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더구나 한참 일을 배우고 그럴시기에 대한민국 사회는 출근시간이 9시였어도 8시 30분 전에는 출근하는것이 당연한 분위기였고, 그 누구도 그 분위기에 토를 달지 않았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약속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지각이 흔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준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도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누구를 만나기로 했다면 그 약속 장소를 찾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고,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연락할 방법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미리’ 움직였습니다. 12시에 만나기로 하면, 최소한 11시 반에는 도착할 수 있게 출발했죠.
저는 이렇게 지각이 만연한 사회가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12시 약속에 스마트폰이 20분이면 간다고 알려주면, 사람들은 11시 40분에 출발합니다. 정확하게 맞추겠다는 의도이지만, 실제 상황은 항상 변수로 가득합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그 20분을 믿고 움직이다가 결국 5~10분씩 지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지각은 당연해지고, 어느샌가 습관이 되어버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그 생각이 좀 바뀌고 있습니다. 이건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출근을 보면 지금은 ‘9시에만 도착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다 보니 9시에 딱 맞춰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당연히 그중 일부는 9시를 넘깁니다. 학원 건물 주차장만 봐도 그렇습니다. 8시 50분까지는 여유롭지만, 9시 10분쯤만 되면 차량들이 몰려들어 주차장이 아수라장이 됩니다. 이런 일이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그 오래전에도 암묵적인 30분까지의 출근시간을 10분정도 늦게 오는 사람들은 언제나 많이 있었습니다. 9시 기준으로는 지각이 아니지만, 8시 30분 기준으로는 지각을 했었던 거죠~
변화한 것은 도구와 분위기지만, 사람의 본성은 잘 바뀌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저를 늘 고민하게 만듭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항상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습관처럼 5분, 10분씩 늦는 아이도 있습니다. 단순히 늦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태도와 마음가짐이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을 저는 여러 차례 경험으로 확인해왔습니다.
시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신뢰를 지키는 것이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타인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지각은 누구나 한 번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반복입니다. ‘또 늦었네’, ‘오늘도 조금 늦었어요’라는 말이 입에 붙은 사람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결국 중요한 기회를 잃게 됩니다. 남들이 몰라줘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신뢰를 잃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지각하는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습관은 말처럼 쉽게 바뀌지 않고, 바꾸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충고는 잔소리로 들릴 뿐이니까요. 차라리 시간을 지키는 사람, 작은 약속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그런 이들에게 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 나중에 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성과를 낼지는 명약관화합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 태도의 출발점은 ‘시간약속’이라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정직한 기준으로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