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를 희망하며.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은 충격적인 하루를 마주했습니다. 대통령에 의한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 국회의 저항, 그리고 국민들 사이의 극심한 혼란. 그날 이후로 대한민국은 더 깊은 분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 저는 오히려 이 사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다름'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계엄 사태는 그 불안을 가장 날카롭게 드러내는 신호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는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회,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습니다.
계엄 사태 이후,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기 바빴습니다. "저 사람들은 나라를 망치려는 자들이야", "저쪽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무리들이야"라는 식의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왔습니다. SNS에는 끝없는 분노와 조롱, 언론에는 더 자극적인 제목들이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정말로 모든 국민이 그렇게 분열되어 있을까요?
뉴스에서 보여주는 '분노한 군중', '격앙된 시위대'는 혹시 양극단의 사람들만을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 가운데 조용히 걱정하고, 대화를 희망하며, 타협을 바라는 사람들은 왜 보이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이제는 그 중간에 있었던 사람들조차 점점 극단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두려움도 듭니다. 중간의 목소리는 묻히고, 조용히 생각하던 사람들도 어느새 "너는 어느 편이냐"는 질문을 받기 시작했으니까요.
하지만 위에 얘기한 것은 이미 이전에도 역사적으로도 꾸준히 있었던 것이니 그러려니 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해악은 '그래도 된다'는 인식의 확산 입니다. 이 계엄 사태가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깊은 상처는 정치적 결과나 헌법적 논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법도, 절차도 무시해도 된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일련의 사건이 이뤄지는 동안 거리에서 벌어진 폭력적 시위나 법원에 대한 파괴 행위에 대해 "어쩔 수 없다"며 동조했고, "나라를 구하려면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법과 최소한의 질서 위에 마음이 올라선 셈입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니)으니 당연히 나는 그럴수 있다"는 말도 안되는 인식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전직 대통령이자, 법의 틀 안에서 큰 기둥인 검찰총장을 하신분의 작금의 모습은, 보는 모든사람들에게 '저래도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분노할 수 있습니다. 절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 헌법과 법치까지 갈것도 없이 기본적인 상식에 반하고, 사회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방향이라면, 우리는 결국 또 다른 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어렵고 힘든 부분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혐오와 마음대로 해도 상관 없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그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점점 더 많이 느끼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님들은 이 부분을 잘 인식하셔야 합니다. 전직대통령도, 검찰총장도 아니고, 값비싼 변호사를 쓰기도 쉽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만에 하나 저런상황이라면 인생이 실전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상황에가서 '대통령도 그러던데요~' 라는 외침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질 것이 명확하니까요. 저는 그게 참 걱정이 됩니다.
지금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정치 개혁이 아닙니다. 저는 ‘듣는 연습’과 ‘기다리는 인내’가 이 사회에 절실하다고 믿습니다.
저는 우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하기 전에,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듣고자 하는 태도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과의 대화는 피곤하고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야말로 진짜 민주주의가 자랍니다. 그걸 어릴적부터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합니다.
두번째, 법과 절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판결,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부라도, 헌법과 법치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엘빈토플러는 부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가장 변화가 느린것이 '법'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법은 느리지만 우리의 기본적인 상식과 사회의 발전방향과 함께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도 있고, 그게 나일 수도 있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제도와 삶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존중과 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과 교육의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혐오를 유도하고, 사실보다 선동을 우선하는 언론은 사회의 분열을 부추깁니다. 또, 다양한 시각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은 비판이 아닌 배제를 배우게 만듭니다. 양끝단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자극적으로 내지말아야 합니다. 교육도 사람들의 생각을 얘기 할 수 있도록,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고 서로의 의견이 다를떄는 타협점을 찾아가고, 결과에 승복하고 잘 되어지도록 응원하는 것을 어릴때부터 가르쳐야 할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써두고 보니 정말 지금 상황에 뭐하나 쉬운게 없는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전 회복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참담한 현실 앞에서 쉽게 희망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늘 한순간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들의 지혜로 다시 균형을 찾아왔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지혜를 찾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여전히 법을 믿고, 질서를 지키려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분열을 딛고 다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희망의 시작이 바로 ‘한 사람의 태도 변화’에서 출발한다고 믿습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