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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츠시대의 독서

by 곰선생


최근 한 원장님들의 독서모임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여러번 말씀드린것처럼 2003년도부터 일주일 책한권 읽기를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 제 독서에 좀 변화도 줘보고 싶었고, 혼자서 하는 독서보다는 여러원장님들의 의견도 들으며 지평을 넓히고 싶었습니다.


두 권정도를 읽어가는 과정인데, 예전에 쇼펜하우어에 대한 글을 쓸 적에 들었던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책읽기가 너무 쉬웠다는 점입니다. 판형도 예전의 판형보다 작아져서 소지하기가 쉬워졌고, 여백과 글 간격도 넓었으며, 챕터 하나하나도 많아야 서너페이지를 넘어가지 않는, 이른바 쇼츠를 보는 기분으로 독서가 가능했던것 같습니다.


현재 제가 읽고있는 책,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있는 책, 그리고 오래된 책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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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대로 독서모임에서 읽고 있는책, 현재읽고 있는 책, 그리고 오랜 명저입니다.



간결한 문장, 명확한 메시지, 그리고 독자의 감성에 즉각적으로 호소하는 친절한 구성까지...

마치 잘 만들어진 '쇼츠'나 '릴스'처럼 독서도 빠르고 흥미롭게 소비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더 많은 사람들을 책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다고 느꼈던 이들에게, 혹은 두꺼운 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던 이들에게 '쉬운 책'은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줍니다. 독서의 문턱을 낮추어 지식과 이야기가 주는 유익을확산 시킨다는 점에서, 이러한 경향은 분명 의미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우려가되는것도 사실입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모든 것이 쉬워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어려운 글을 마주할 용기'와 '스스로의 힘으로 의미를 해석해내는 능력'입니다.


사고력과 문해력은 마치 근육과도 같아서, 적절한 부하와 저항이 주어질 때 더욱 단단하고 정교하게 발달합니다. 훈련의 영역이라는 소리입니다.

여러 겹의 의미를 품고 있는 복잡한 문장, 생략과 비유로 가득한 함축적인 글, 낯선 개념과 씨름하게 만드는 밀도 높은 텍스트를 읽는 과정은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뇌를 적극적으로 훈련시키는 행위입니다.

문장의 구조를 파악하고, 행간에 숨은 의미를 추론하며, 때로는 앞뒤 문맥을 여러 번 오가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사고는 더욱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이러한 '지적인 분투'의 경험이 줄어든다는 것은, 문해력의 근육을 단련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은 쉽고 편안한 독서가 즐거울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세상을 다각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을지 모릅니다.

(이는 대학교재나 원서를 읽어보시면서 많이 느껴보셨으리라고 생각됩니다.)


AI 시대의 관점에서 이 현상을 바라보면 더욱 흥미로운 지점들이 보입니다. AI는 방대한 텍스트를 학습하고 핵심을 요약하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쉬운 책'들은 독자들이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얻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잘 요약된 콘텐츠의 한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AI 시대에 걸맞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요약된 결과'를 얻는 것과 '스스로 요약해내는 과정'을 겪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라는 점입니다. 기술의 발달이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편리함에만 의존하게 될 때 인간 고유의 사유하는 능력은 퇴보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쉬운 독서'와 '힘든 독서'를 대립적인 가치로 볼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독서'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책으로 독서 습관을 유지하고 새로운 흥미를 발견하는 동시에, 의식적으로 자신의 지적 수준에 도전하는 '어려운 책'을 한두 권쯤 곁에 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쉬운독서의 트렌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입니다. 출판계는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책을 계속해서 선보일 것이고, 그것은 분명 환영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젠 독자 개개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베스트셀러 목록이 권하는 책, 읽기 편한 책에만 머무르지 않고, 때로는 고전의 숲으로, 때로는 낯선 학문 분야의 두꺼운 벽돌책으로 기꺼이 탐험을 떠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문장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사전을 찾고, 단락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밤새워 고민했던 경험이 주는 희열과 지적 성장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책상위엔 어떤 책들이 놓여 있나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책과 깊이 사유할 책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는지 한번쯤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균형 속에서 우리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지혜롭게 항해할 수 있는 진짜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쇼츠를 보는 재미와 장편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라는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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