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안됨'을 '파격'으로 포장하지 말라.
파격 : 격식을 파괴한다는 뜻이죠~
좋은 뜻으로 사용될 때에는 이전까지의 낡은 문화나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실리적인 행동양식으로 나아갈 때 많이 쓰입니다. 변화, 혁신등의 보통 긍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쓰이는 단어인 듯합니다.
그런데 요사이 이 "파격"이란 것과 "준비되지 않음"을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얼마 전, 두 아들의 졸업식과 입학식을 다녀왔습니다.
큰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과정에 있었고, 작은아들은 중학교에 입학하는 단계였습니다.
그런데 두 행사를 경험하면서 나는 매우 큰 차이를 느꼈는데요~ 큰아들의 졸업식은 그야말로 준비되지 않은 행사였습니다.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고, 일정이 어긋났으며, 참석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모두 혼란스러웠습니다.
반면 작은아들의 입학식은 매우 체계적으로 준비된 행사였습니다. 진행이 깔끔했고, 절차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었으며,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어 참석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입학식을 보면서 작은 아들이 이런 학교에 다니게 된다는 것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자긍심과 더불어 돈 많이 벌어서 계속 이런 학교에서 학습을 시켰으면 좋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전 이 일을 통해 나는 사람들이 흔히 ‘파격’과 ‘준비되지 않음’을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 반드시 준비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파격은 철저한 준비 속에서 의미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고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형식을 따르지 않는 것을 ‘새로움’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은 단순히 기존의 것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영역에서도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예술가들은 기존의 틀을 이해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 낸 경우가 많습니다. 피카소가 입체파를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완벽히 습득했기 때문이며, 베토벤이 고전 음악의 형식을 깬 것은 누구보다도 고전 음악을 깊이 이해했기 때문이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반면, 준비되지 않은 혼란은 단순한 무질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졸업식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으면 감동도, 의미도 없는 허술한 행사가 될 뿐입니다. 진정한 혁신과 파격은 기존의 원칙을 충분히 이해한 뒤에야 가능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구나 사회적 격식은 단순히 전통적인 형식에 대한 집착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원활하게 소통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결혼식, 졸업식, 입학식, 장례식 등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의식(儀式)이고 이런 행사가 엉망이 되면, 참석하는 사람들은 혼란을 느끼고 불편함을 겪게 됩니다.
이런 내용과 관련한 명언들은 수도 없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If you fail to plan, you are planning to fail."(계획하지 않으면 실패를 계획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Rules are not necessarily sacred, principles are."(규칙이 반드시 신성한 것은 아니지만, 원칙은 그렇다)라고도 했습니다. 짐 론은 "Discipline is the bridge between goals and accomplishment."(규율은 목표와 성취 사이의 다리다)라고 했고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은 곧 실패를 불러오기 마련이지요. 따라서 사회적 격식을 유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전통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파격은 준비되지 않은 혼란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기존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위에서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원칙이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에서 중요한 것은 그 격식 자체가 아니라, 그 격식을 통해 학생들에게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준비 또한 반드시 필요하고요.
졸업식이 감동적인 경험이 되려면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무대는 어떻게 꾸밀 것인지, 학생들은 어디에 앉을 것인지, 진행자는 어떤 멘트를 할 것인지, 순서는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의 준비가 있어야만, 졸업식이 혼란스러운 자리가 아니라 뜻깊은 행사로 기억될 수 있다.
두 달 정도 지난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사회적 격식과 준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임관하는 장교들을 의자에 앉아서 임관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진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결국 다시 바뀌긴 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서 다시 한번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종종 기존의 틀을 따르지 않는 것이 곧 혁신이라고 착각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기존의 것을 이해하고 그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파격적인 것은 무질서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단순히 형식을 깨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생각한다면, 더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