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다고, 바빠서 힘들다. 라는 핑계 대지 마라!
배움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아깝지 않다. 주위에서는 이런 나를 신기하게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배움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부모님은 고등학교에서 필요한 학자금과 입시에 필요한 과외선생을 대주셨고 그때의 과외선생님은 서울대 재학 중인 체육교육학과 학생이었다. 또한, 대학 입시학원에 다녀서 좋은 성과로 대학 진학을 간절히 원했다. 우리 집의 아버님 벌이가 유별나게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부지런하게 농사를 짓는 분이다. 학벌도 스펙도 없는 무지의 농사꾼이지만 자식에게는 자신이 못 배운 것을 다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나 나는 항상 반항심이 많은 자식에 불과하였다. 늘 말썽만 피우고 다니는 학생과 같이 돌아다니고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한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군대 전역 후 1990년 9월 제대하고 1991년 3월에 야간 전문대에 입학하였다. 전문대도 야간을 간신히 합격한 것이다. 그때의 어머니는 아들이 전문대라도 입학하여 대단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어머니와 나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지금의 기억을 해도 생생하다.
수원공업전문대학의 건설 분야 건축설비학과였다. 건설설비학과가 건축과와 유사한 일을 하고 취업도 잘 된다고 하여 입학을 하게 되었으며 어느 정도의 점수만 있으면 입학 가능한 전문대였다. 야간전문대의 특성상 7시부터 강의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은 서대문이고 전문대는 경기도 화성시에 있었다. 학교의 강의는 대부분 10시 전후에 수업이 끝났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였다. 당시에 1학기에 출석률은 50%도 안 되었고 학점이 2점대였다. 그리고 대학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수원공업전문대를 다니면서 낮에는 일하였고 졸업 이후 약 20년이 시간이 흐른 후 깨달은 것은 공부해야 한다. 라는 목표의식이 생겨났으며 나는 나이 들어 늦게 철이 들어 건축 관련 자격증을 수집하면서 자신감을 확보하였다.
그 후 46살 넘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공부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나는 건설현장에서 발로 뛰어다니는 기술직이었다. 물론 한때는 기능직으로 현장 목수, 배관공, 철근공, 호텔 실내에 실내장식 공사 일부인 고급가구 설치 및 아트월 등을 설치하고 일당 개념의 보수를 받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밤낮없이 공부를 시작하였다. 기능사부터 차례로 산업기사, 기사, 기능장, 건축 시공기술사를 하였다. 건축 시공기술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공학사를 취득하였다. 일과 학교, 학원에 다니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없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주변에 잘 나가는 사람을 살펴보니 항상 책을 들고 다녔다. 물어보기도 미안하고 창피하였다. 나는 서점으로 가서 자기계발서를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사오정과 오륙도는 피해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늦은 배움이었지만 창피하지 않았고 나도 늦었다고 할 수 있으나 내가 동고동락했던 학원생의 평균 연령대보다 적었다. 배움은 어릴 때 깨달아야 하지만 나는 깨닫지 못하고 자랐다. 물론 주변 환경도 영향이 있었다.
가난이란 대물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당시에 깨달은 것이다. 대기업 L 건설사에 계시는 성 부장의 합격 수기를 보고 많이 깨달았다. 그 역시 수많은 도전 하였으나 실패만 돌아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다. 실패는 성공의 아버지라 볼 수 있다. 나는 그 실패를 줄이기 위해 한 번에 성공하였다.
성공을 한 번에 하고 나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악착같이 지금도 배움에 열정을 두고 있다. 나는 나이 들어서 배움에 열망이 생긴 것에 대하여 감사한다. 마음속에 뜨거운 열정만 있으면 된다. 나이가 들어 이직과 조기 명퇴, 정년을 앞두고 있다면 과감하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야 한다.
직장을 다니면 수입이 발생하니 학원비, 책 구매비 등을 수월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바빠서 힘들고, 잠이 많아서 힘들다. 라는 핑계 대지 마라!
우리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나이가 들어 배운 것은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 많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관점과 상대방이 생각하고 있는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다. 내 친구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그 친구는 돈 없어서 못 하겠다는 친한 친구가 있다. 그는 현재 현장에서 관 공사의 건설사업관리 일부인 건축 관련 감리로 근무하고 있다. 약 30년 동안 월급이 변화되지 않고 동일하게 받고 있다. 누가 보아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지만 내 친구는 해마다 1천만 원의 빚이 계속 발생한다고 하며 자녀의 학비, 아파트 대출금, 생활금 등이 매월 지출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빚은 없다.
난 1997년 결혼 이후 한 번의 빚이 있었다. 2005년 아파트 대출금 약 4천만 원이 전부였다. 한 달을 쉬더라도 두려움이 없고 나의 배우자도 두려움이 없다. 그 이유는 우리 가족은 나를 믿고 살고 있으면 안 되는 일도 척척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아들과 딸이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난 자신감을 느끼고 배움을 통해서 돈을 벌 방법을 깨닫고 시간 외 돈을 받는다. 3시간의 건축 관련 심의비용으로 돈을 받는다. 물론 매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을 벌 수 있다. 시간당 최저임금의 10배에서 15배 정도이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는다면 더욱 많이 벌 것이다. 내 주변에는 4시간에 기본 50~100만 원을 벌고 있다. 또 다른 투자를 하고 있다. 그것은 월급 외에 부동산 경매를 하고 있다. 부동산 경매도 책으로만 배우고 실전에 투입하여 실행한 결과이다. 우리는 책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절실함에서 비로소 돈으로부터 행복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사람은 더 벌 방안을 찾는다.
행복은 성적순이라고 한다. 그 말은 우리가 모두 진짜로 공감이 갈 것이다. 예전에 몰랐던 지식을 가지고 살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좌절과 실망 속에서 자녀들의 하소연에 시달릴 수 있다. 차분하게 생각하고 배움의 열정을 다할 수 있도록 나도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당장 나와 독자가 내세울 것 없다고 포기하지 마라. 나도 성공한 사람은 아닐 수 있지만, 정직과 신의를 가지고 자식을 키우는 가장입니다.
당신은 오늘도 힘내시고 배움에 도전하시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