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걸까? 믿고 싶은 걸까?

마흔이 돼서야 깨달은 삶의 이치를 고전의 대화를 통해 말하다.

by 이로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내게 뇌를 주지 않는다면 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네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난 전과 같을까 봐 두려워요”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죠. 나는 당신이 심장을 주기만 한다면 그 모든
불행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이겠어요”
“이러니 어떻게 내가 사기꾼이 되지 않을 수 있겠어. 아무도 못하는 일을 내가
해 주기를 바라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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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보면 어떤 사람들이 피켓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있는 모습을 종종 보게 돼. 피켓에는 새빨간 글씨체로 자신의 종교를 믿지 않으면, 즉 불신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 쓰여있지.


대부분의 사람이 힐끗 한 번 쳐다볼 뿐이지만 그들은 매일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정말 궁금했어. 그들은 정말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믿고 있는 걸까? 아니면 믿고 싶은 것일까? 직접 가서 물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금세 접었다. 끌려갈까 봐.




뇌와 마음, 용기를 보여 달라고 한 도로시 일행에게, 그것의 실체는 없고 이미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 오즈의 말은 과연 그들이 바라는 대답이었을까?


그들은 이미 머릿속에 어떤 형태로 만들어진 실체를 상상하며 걸어왔을 거야. 전당포에 자신의 물건이라도 맡겨 놓은 듯 만나기만 하면 바로 내 줄 거라는 생각이 더해져 다른 변수는 생각조차 못했을 테고. 그렇다면 그들의 요구는 과연 무리한 것이었을까?


실체가 없는 것에 대한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어리석다고 몰아붙일 일만은 아닌 듯싶어. 왜냐면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


우리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아서 아사 버거의(Berger, Arthur Asa) 말을 자주 인용하곤 하지.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해주는 행위이기 때문이지.


그러나 사람들의 말이나 행태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그 반대인 ‘믿고 싶은걸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이 더 맞는지도 몰라.


<긍정의 재발견>을 쓴 조셉 T. 핼리넌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어



“보는 것은 중립적인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태어난 바로 그날부터
우리가 보는 대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마다 자신이 보는 대상은 전부 다르며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본다 라는 뜻이지.

우리가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면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게 마련이지. 그리고 그 생각이 지지받게 될 경우 ‘역시’라는 말을 되뇌며 한껏 자존감이 치솟게 돼.


반대로 자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결과와 맞닥뜨리게 될 경우,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꼬투리를 잡으며 이것저것 트집을 잡기 시작하지.


이는 본능적으로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심리기제야. 사실이 어떻든, 진실이 어떻든, 지금의 상황을 자신이 의도한 대로 조금이라도 바꾸려 들지. 나름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신이 믿고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생각인 거지.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어. 자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편견이나 특정 이념, 특정 종교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자신이 위기에 몰릴 경우,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무리를 지으며 자신과 같은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확인시키려고도 해.


이와 관련,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칼 소렌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어.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옛말이 있다. 그러나 보다 정확한 말은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은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으며 당신이 경험하려고 마음먹은 상황으로 당신을 몰고 가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들이 받은 선물의 실체는 허술하고 형편없기 짝이 없는 것들이야. 그런 것에 그들이 바라는 지혜, 마음, 용기의 실체가 있을 리 만무하지.


그럼에도 그들은 사기꾼 오즈의 말을 철썩 같이 믿으며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까지 아끼지 않아. 처음 본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겠지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그들이 믿고 있었던 실체를 보았기 때문 아닐까?


모양이 어떻든 기능이 어떻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 오로지 믿고 있던 것의 실체를 보고 싶어 하는 집념뿐. 그만큼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강렬할수록 그에 걸맞은 실체를 보여줘야 할 때도 있는 것이지.


아무리 연인 사이라도 그 사랑이 마음으로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으로도 그 사랑을 확인할 수 있지.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즈가 말한 대사를 다시 한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었지만 결국 엉뚱한 것을 만들어 또 한 번 사기 치게 된 거지.


그들은 자신의 지나친 요구(?)로 인해 타인을 사기꾼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고 그들 또한 무지와 욕심으로 인해 사기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지.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구는 때로 자신이 믿는 것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과 자존심을 보호하고 싶은 욕구 앞에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야.


우리는 자신들의 생각과 신념 앞에 우상숭배하듯 맹목적으로 빠지지 말아야 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라는 것도 사실 가면을 쓴 것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것은 결국 진실의 맨 얼굴과 마주할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고 자신을 속인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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