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미니볼링 놀이를 할 때였어. 게임이 끝나면 각자 몇 개 쓰러트렸는지 확인한 후 내가 많이 쓰러트렸으면 “아빠가, 일등” 하고 외쳤지. 딸아이에게는 자연스럽게 ‘꼴등’라는 말을 했고. 그 후 아이는 자신이 이길 때마다 “내가 일등. 아빠는 꼴등”을 신나게 외쳤어. 마치 통괘 하다는 듯 말이야.
그때 문득, 달랑 둘이서 하는 게임에 무슨 일등과 꼴등을 구분하나 싶었어. 그리고 나중에 커서 ‘일등만 기억하는 뭣 같은 세상’이라고 생각할까 싶어 얼른 말을 바꿨지.
“아빠가 잘못 말했네. 일등이 아니고 내가 더 많이 쓰러트렸다!라고 말하는 거야. 알았지? “
결국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경쟁을 부추기는 말은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것이 내 평소 지론이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우리는 타인과의 크고 작은 경쟁 속에서 살아왔어.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아이들 놀이부터 진학과 취업을 위한 경쟁까지.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엇을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된 거나 다름없어 보여. 마치 숨 쉬듯 우린 누군가와의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내가 어릴 적엔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았던 남과의 경쟁이 요새는 좀 지나치다는 걸 느껴. 한창 뛰어놀아야 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만큼은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아이를 치열한 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있지. 거기에는 경제 불황과 불안한 미래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 할까 걱정 섞인 부모의 한숨도 분명 있어.
그렇게 경쟁의 파고 속으로 내몰린 아이들에게 친구는 더 이상 속 터 넣고 마음을 나누는 그런 상대가 아닌 내가 이겨야만 살 수 있는 경쟁자로만 남게 되지.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세상을 살게 될까? 심히 걱정되지 않을 수 없어.
모든 일에 동전의 양면이 있듯 경쟁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어. 문제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없는, 오직 남을 밟고서라도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과 그러기 위해선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문제 인 거지.
또 누군가는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라며 그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과대포장해버리고 말지. 이건 가득이나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야. 아 생각만 해도 열 올라오네.
정글 같은 입시경쟁의 소굴에서 겨우 살아남아 원하던 직장에 취업했다 하더라도 경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처음엔 어렵게 회사에 들어갔으니, 별 다른 문제만 없다면 회사는 나를 끝까지 보호해 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게 되지.
하지만 회사는 더 치열했어. 공부는 성적이 공개되고 누가 더 잘하는지 금 방 알 수 있지만, 여기는 도통 누가 더 잘하는지 알기가 어려워. 시쳇말로 안테나가 높아야 회사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어느 임원이 대세고 어느 라인이 썩지 않은 동아줄인지 알아야 했지. 그래야 타인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게 되는 거니까.
이렇게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경쟁도 즐기면서 할 수 없는 걸까? 왜 매번 이기기 위해 죽자 살자 덤벼야만 하는 걸까?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사이 우린 점점 지쳐가고 있는 건 아닐까?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처럼 말이야. 잠시 들고 있던 창과 방패를 내려놓고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이 험한 전쟁에 맞서야 하는 것일까? 누구를 밟고 일어서지 않더라도 동료와 함께 지치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영화 <챔피언>에서 마크(마동석)는 한때 팔씨름으로 세계 챔피언을 꿈꿨던 남자였어.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승부조작이라는 누명을 쓰고 클럽 경비원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지.
그러던 중 친한 동생의 권유로 다시 팔씨름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마지막 결승전에서 그의 팔이 넘어가는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지. 그런 그가 이길 수 있었던 건 상대방에 대한 승부욕이 아닌 가족과 자신에 대한 승부욕이었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스스로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
생각해보면 우린 먹고사는 문제와 끝없는 팔씨름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몰라. 매번 이겨야만 하는, 단 한 번이라도 지는 날엔 나와 내 가족의 앞날을 책임질 수 없는 절박한 상황. 그렇게 라도 살기 위해 이 시대의 직장인들은 동료들과 원하지 않는 팔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고.
설사 운이 좋아 상대 동료를 모두 꺾었다면 어떻게 될까? 그다음엔 스스로에게 꺾임을 당하게 될 거야. 스스로에게 지쳐 버리게 된 거지.
바로 옆 동료는 자신이 이겨야 하는 상대가 아닌 각자의 삶을 위해 함께 가야 할 동반자야. 나의 승리를 위해 이겨야만 하는 대상으로만 본다면 설사 최종 챔피언이 되었다 한들 자신의 주변에 과연 남아있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서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들로만 즐비할 뿐, 자신의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거나 공감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야.
세상은 남을 밟고 일어서야 자신이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하지. 지금까지 패자는 누구 하나 원망하지 않고 ‘원래 세상이 그래’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왔어. 그럼 그렇게 승리한 자의 곁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돈? 명예? 아니면 권력? 그런 건 다 한 순간이야.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말이야.
아무리 선의의 경쟁을 한다 하더라도 남을 지나치게 의식한 경쟁의 결과는 승자나 패자 모두에게 씁쓸한 뒷맛만 남길뿐이야. 그보다는 의식적으로 경쟁 상대를 내 안에 있는 자신으로 돌려 삶의 원동력을 끌어올리게 하는 건 어떨까?
스스로를 다독이고 위로하며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면 영원히 지치지 않은 내 삶의 승리자가 될 거야. 또한 그런 사람이 하나둘씩 모여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면 우리 모두는 내 삶의 우승자가 될 것이고.
We are the champions, my friends
우린 모두 챔피언이야, 내 친구여
And we'll keep on fighting 'til the end
우린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We are the champions
우린 모두 챔피언이야
We are the champions
우린 모두 챔피언이야
No time for losers
패자를 위한 시간은 없어
'Cause we are the champions of the world
우린 모두 세상의 챔피언이니까
‘We are the champion’을 부른 그룹 퀸(Queen)의 노래가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우리 모두가 챔피언이 되는 그런 날을.. 내심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