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이성을 잃고 화를 내면 안 된단다. 화를 참을 줄 알아야지”
“엄마! 엄마의 잔소리를 참아 낼 사람은 없을 거예요”
인간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는 아이유가 부른 ‘잔소리’가 아닌, 타인이 부른 ‘잔소리’ 아닐까? 그녀의 노래처럼 들릴 수만 있다면 계속 들려 달라고 오히려 잔소리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 순간부터 시작된 우리의 잔소리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때까지,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오랜 세월 동안 우리와 동거 동락하게 마련이야.
돌이켜 보면 나 또한 수많은 잔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어. 특히 서른 중반을 넘어 마흔이라는 나이에 가까워질 무렵, 어머니의 잔소리는 메아리처럼 내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어.
그래도 다른 분에게 비하면 우리 어머니는 신사임당이셨어. 답답한 마음에 자식을 앞에 세워 두고 쏘아붙이는 경우 보다, 혹여 내가 스트레스받을까 조심조심 말하는 편이셨지.
연이은 연애 실패로 가뜩이나 주눅 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때, 어머니는 내 방문을 조용히 두드리셨어. 웬만하면 자식 방에 잘 들어오시지 않는 편인데, 난 본능적으로 생각했지. ‘어. 혹시...’
아니나 다를까. “만나는 사람은 있냐?” “언제 결혼할 거냐?” 등등. 하도 궁금해서 물어보러 왔다고 하셨어. 하지만 난 차분하게 설명을 하는 대신, 퉁명스럽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알았어. 알았어요” 란 말을 했고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어.
지금 생각하면 오죽 답답해서 그러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난 결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해 햄릿처럼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지. 이런 상황이 매번 반복되어 앞으론 몇 분이라도 참고 차분히 이야기하기로 나와 약속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한 거야.
잠시 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차분히 상황 정리했지만, 미안함과 답답함이 서로 뒤엉켜 나를 괴롭혔던 순간이었지.
이렇게 상대는 나를 괴롭히거나 귀찮게 할 목적이 아닌 단지 궁금하거나 걱정되는 의도로 물어보지만, 그 말을 들어야 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런 의도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특히 평생 가깝게 지낸 가족일수록 자신의 결점이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조차 ‘잔소리’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지.
더구나 지금 말할 필요가 없는 또는 필요 이상으로 반복해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 생각되면 우리는 곧바로 ‘잔소리'라고 생각하며 인상부터 찌푸리게 되지.
그럴 때마다 우리는 ‘왜 내가 하는 일에 이리도 관심이 많은 걸까?’ ‘나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야. 누가 봐도 어린아이가 아닌 다 큰 성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그럼 그들은 왜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걸까? 정말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알다시피 잔소리는 나와 가까이 그리고 오래 지낸 사이일수록 자주 듣게 되는 말이야. 그들은 내가 처한 상황과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지.
특히, 나이 지긋한 어른의 경우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겪어 온 경험과 생각의 잣대를 들이대어 뭔가 부족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어김없이 걱정 어린 말투로 나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곤 하지.
또한 명절 때만 가끔 만나는 먼 친척일수록 서로에게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기 마련이야. 그래서 내가 결혼 안 했으면 “언제 결혼하냐?” 취업을 못했다면 “언제 취업하냐?”는 식으로 밖에 물어볼 수 없는 거지.
그렇게 상대는 관심이라는 이름의 돌을 무심코 던지지만 그 돌을 맞게 될 개구리에게는 결코 무심한 돌이 되지 않는 법이야.
문제는 자신이 난감해할 질문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관심이라는 의도로 뜬금없이 물어봤다는 거야. 예상치 못한 질문에 적절한 답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은 순간 난감해지고, 결국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무능한 존재라는 자괴감에 빠지게 마련이지.
설령 해결 방법을 찾았거나 찾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건 이래라 저건 저래라’는 식의 말투는 상대의 귀와 입을 닫고 고개까지 돌려버리게 하지. 아무리 백 번 맞는 지당하신 말이라 하더라도 과연 듣고 싶어 질까?
이런 이유로 가족 모임이나 명절 때에도 온갖 핑계를 이유로 ‘잔소리’ 클래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들이 있어.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명절 때마다 나오는 ‘명절이 싫은 이유’가 대표적인 기사지.
기사에는 미혼들이 명절을 싫어하는 첫 번 째 이유가 ‘어른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의견이었다고 해. 명절 제사 음식 준비가 싫어서 참석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있다면 바로 당신의 잔소리가 첫 번째 이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길 바랄 뿐이야.
그럼 이렇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 로 포장된 잔소리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듣기 싫다고 호적을 파버릴 수도, 안 만날 수도 없는 일.
그런 잔소리가 들려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소문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자주 듣는 잔소리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한 후 그에 맞는 재치 있는 대답을 준비한 사람도 있을 거야.
가까운 예를 든다면, 우리 어머니는 아내에게 얼른 둘째 아이를 가지라는 말씀을 가끔 하시는 편이야. 그럴 때마다 아내는 다음과 같은 레퍼토리로 말하지 “그러게요. 저희도 얼른 둘째를 갖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뭐 이런 식으로 말이야.
어머니에게는 미안한 말씀이지만 서로의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자신이 자주 듣는 잔소리에 대한 나름의 답변을 준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잔소리’에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바로 진심 어린 대화 즉 ‘소통’ 이야. 글 첫머리에 내 경험담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어머니가 가장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내가 먼저 터놓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서로 얼굴 붉히면서까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일일이 보고 할 필요는 없지만 여유 있을 때마다 조금씩 어머니가 궁금해하는 것(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면 조금 더 돈독한 사이로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노력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씀드린다면 어머니도 내 생각이 어떤지,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게 되실 거고 그럼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와 걱정 어린 말씀으로 하는 잔소리는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았을까? 아. 이렇게 후회는 한참 돌고 돌아서 나에게 돌아오게 마련이구나.
지금 나에 대한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의 잔소리는 많이 줄어들었어. 그들이 보기에 내 삶이 자신들이 바라는 삶의 모습과 비슷하게 보였거나 반대로 뜻을 굽혔다는 의미도 있겠지. 어쨌든 내가 선택한 삶이니까 후회하거나 누굴 원망해본 적은 없어.
생각해 보면,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우리 곁엔 누군가의 ‘잔소리’가 있었어. 그 소리는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렸지만, 힘들거나 어렵다고 해서 회피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진지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였어.
지금 자신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잔소리를 듣고 있다면 그냥 무시해 버릴게 아니라 다시 한번 자신의 선택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면 해.
대부분의 잔소리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자주 들려오기 마련이니까. 그들의 잔소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든, 거부 하든 그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삶과 인생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