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이라는 걸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마흔에 깨달은 삶의 이치를 고전의 대화를 통해 말하다.

by 이로
“제가 답을 맞힐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네가 정말로 답을 맞힐 수 있다는 거야?”
“네 그럼요”
“그렇다면 네가 생각한 대로 말해야 해”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요. 내가 말하는 것은 내가 생각한 거예요. 어차피 그 말이 그
말이잖아요.”
“아니 그 말이 그 말은 아니지! ‘나는 내가 먹을 것을 본다’와 ‘나는 내가 보는 것을 먹는다’
가 어떻게 같은 말이야?”









어느 한가한 일요일 오전, 우리 가족은 집안 대청소 중이었어. 모든 방문을 열어놓고 청소하던 중 아내는 내가 사용하는 작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기겁했어. 놀란 소리에 호기심이 발동한 4살 딸아이도 무슨 일인가 싶어 따라 들어갔지.


아내는 정리가 안된 지저분한 방을 보며 “너무 심하다”라는 말을 했고 같이 따라온 딸아이 역시 “너무 심하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따라 했어. 마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야.


평소 말을 곧잘 하는 아이였지만, 아빠에게 방이 지저분하다고 타박하는 딸아이의 말을

들으니 기가 막혔어. 한마디로 ‘네가 지저분한 걸 알아?’ 이런 생각이었지.


청소를 마친 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내 방을 보고 ‘너무 심하다’ 고 말한 아이의 말이 정말 심하게 지저분하다고 생각해서 한 말인지, 아니면 엄마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냥 따라서 한말인지가 궁금했어.


물론 아직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말로 표현하기에 이른 나이라 별생각 없이 엄마 말을 따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돼지우리는 아니었으니까.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도라 생각했기에 과연 4살짜리 아이의 생각인 건지가 궁금했던 거야.




이렇게 우리가 평소 내뱉는 말은 자신의 입을 통해 누군가의 귀로 흘러 들어가기 마련이야. 그 말이 옳든 틀리든, 그건 두 번째 문제. 오직 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이라는 사실이 제일 먼저 들어오기 마련이지.


특히 자신이 속한 조직 전체의 문제나 개인의 삶과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결정해야 할 경우,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상대의 머릿속에 그대로 꽂히게 되고, 추후 번복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게를 지니게 되지.


아무리 자신이 가벼운 의미로 내뱉은 말이라 하더라도 상대는 은연중 그 사람의 생각을

표현 한 말이라 생각하고 가볍게만 받아들이진 않아.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경우, 자신의 말은 나비의 날개 짓에 불과했겠지만 전혀 엉뚱한 곳에서 큰 바람을 일으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도 하지.


‘엎질러진 물’에 비유할 만큼 우리가 내뱉은 말은 그만큼 자신을 대표하는 말로 주워 담을 수 없는 물과 같은 존재야. 하지만 몇 초 후 세상 밖으로 나올 자신의 말이 본인의 생각에서 나온 말인지 생각해보는 경우는 흔치 않아.


일단 나부터도 아무 말 대잔치에 끼어들고자 뇌를 거치지 않고 말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생각해보면 내가 한 말이었지만 어디선가 들었던, 누가 했던 말을 그대로 포장해 내보내기가 바빴던 거야.


어떤 사건에 대해 ‘남들은 이렇게 말하더라’ ‘댓글엔 이런 말이 있더라’는 식의 말은 우리의 무의식 속으로 스며들게 마련이고 이내 자신의 생각으로 둔갑하게 되지. 상대방의 말에 그저 동의하는 것뿐인데도 말이야.


이렇게 자신이 내뱉은 말이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해서 나온 말이 아닌, 어디서 보았거나

누구에게 들어본 듯한 말을 그대로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해본 적 있니?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아? 마치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한 자신의 말이라며 굳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할수록 말이야. 방금 내가 누구한테 한 그 말이 정말 내가 충분히 알아보고 고민하고 내린 결정일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야.





영국의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 가 쓴 <누가 내 생각을 움직이는가?>에는 우리가 방금 내린 결정으로 한 말이 정말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누군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해서 내린 결정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어.


특히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그럴싸한 말과 글이 자신의 뇌에 그대로 주입되어 자신의 생각으로 둔갑해 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실험 또한 공개되었는데 피실험자가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을

때 뇌에서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부위가 스위치를 꺼 놓은 것처럼 활동을 멈췄다고 해.


전문가가 말하는 순간, 우리 뇌는 잠시 꺼지고 생각하기를 멈춘다는 말이지. 생각만 해도 등골 오싹한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들도 알고 보면 실수투성이라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하고 정답인 양 우리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바쁠 뿐이야.




그럼 우리는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허츠는 끝까지

의심하고 질문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어.


어떤 전문가가 아무리 타당하고 논리적이고 백 번 지당하신 말씀만 지껄인다 하더라도 그 반대되는 목소리 즉, 상반된 의견이 있다면 끝까지 경청해야 하고, 궁금하거나 문제점이 있다면 질문하기를 서슴지 않아야 한다고 해.


또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접한 뒤 본인 스스로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오롯이 내 생각이 되고, 그것이 내 생각을 담은 말이 된다고 하지.


이렇게 보면 타인이 아닌 진정한 나로 살며 내 생각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게 돼. 그동안 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 결정한 생각이라는 치킨에 얼마나 많은

세상의 양념과 소스가 묻힌 말인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어.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복잡하고 불안하며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 정보 홍수라 불릴 만큼 인터넷과 각종 매체를 통해 매일매일 새로운 정보들이 우리 앞에 쏟아지고 있지. 그만큼 사람들, 특히 전문가들이 하는 말 또한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 솟아나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지.


인터넷 속도만큼이나 빨라지는 세상 속에서 시간은 곧 돈이고 돈은 곧 시간을 만들어 내지. 그만큼 우리는 무엇을 빨리 생각해야 하고 결정해야 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어.

그럴수록 우리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결국 내 생각과 결정을 타인의 생각에 맞춰 생각하고 말해 버리는 일생일대의 실수를 범하게 되지.


때론 생각하는 것조차 힘들고 버거울 때가 많지만 그럴수록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생각과 말을 정리하도록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 이것이 조금이나마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내게 주어진 인생을 남이 대신 살아줄 수 없듯, 내 생각 또한 남이 해줄 수 없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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