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삶'을 살아온 당신에게

마흔에 깨달은 삶의 이치를 고전의 대화를 통해 말하다.

by 이로
“경기가 이제야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네요.”
“그래, 그것의 교훈은 바로 이거야. ‘사랑, 사랑이여. 사랑이야 말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이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일에만 충실해야 세상이 빨리 돌아가는 법이라고요”
“아,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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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싫어하는 기억 중 하나는 바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야. 술만 드시면 난폭해지는 성격 탓에 우리 가족은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지. 거기에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은 반 포기한 채 내키는 대로 자신의 삶을 사셨던 분이었지.


때문에 가수 GOD의 노랫말처럼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공석처럼 돼버린 그 자리는 절로 어머니의 몫이 돼버렸지. 집안 살림과 더불어 밖에서 돈까지 벌어와야 하는 가장의 역할까지 말이야.


누가 봐도 빵점 짜리였던 아버지. 주변의 충고조차 진지하게 받아들일 그릇이 못되었기에, 누구 하나 대 놓고 질타하거나 욕하는 사람 조차 없었어.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이런 상황을 모를 나와 내 동생이 아니었어. 가장의 역할을 외면한 채 온갖 자신의 불만을 쏟아낸 아버지를 우린 절대 공감할 수가 없었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머니를 바라볼 뿐이었어.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게 된 나는 어른이 되면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세상의 통념에 ‘그 물로 내 피를 희석 시겠다’는 의지로 전혀 다른 삶을 살겠다고 나 자신과 수차례 약속까지 했었지.


세월은 곧 나를 어른으로 만들었어. 그리고 가장이 되었고, 아빠로서 사위로서 아들로서의 역할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지. 다행인 건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내가 행복하고 원만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힘들었던 아버지의 삶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 좋은 계기가 되었어. 그렇게 난, 내게 주워진 삶을 충실히 살게 되었고 아버지는 내 기억의 심연 속으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지.




‘자신에게 주워진 일에 충실할 것.’


누구나 공감하는 지당하신 말씀이라 어떤 반기조차 들기 힘든 말이야. 아무리 단단한 짱돌을 던져도 깨지기 힘든 고정관념처럼 말이야.


그만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각자 정해진 위치에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해내는 것. 그것만이 나와 내 가족 나아가 온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삶이라 여기며 살아온 거지.


그런데 이런 생각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어.


그는 ‘상인계급과 보조자 계급 그리고 수호자 계급이 각기 제 할 일을 함으로써 나라 안에서 제 구실을 하게 하는 능력, 이것이 정의일 것이며, 이것이 나라를 올바르게 만들어 줄 것이네’라는 말을 했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을 위하고 사회,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지.


여기서 ‘일’이란 먹고살기 위한 경제활동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여러 분야에 걸쳐 자신에게 주워진 역할까지 포함돼 있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해내야 하는 회사 일처럼, 자신의 역할 또한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일이 돼버린 거지.


가족 구성원 모두 자기 역할에 충실해야 했지만, 특히 부모님은 누구보다 더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만 했어.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것은 기본. 위로는 자식 된 도리, 아래로는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해야만 했지.


안타까운 건 세월이 흘러도 부모로서의 도리가 끝이 안 보인다는 사실이야. 자식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가도록 응원을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이지 않았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좋은 인연을 만나 결혼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했지. 그렇게 해야 비로소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생각이 든다는데, 과연 자식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일 뿐이야.


사실 경제 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역할을 수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 내 아버지처럼 살지 않았다면 말이야. 끼니 걱정하지 않고 가족 내에서 맡은 자신의 역할까지.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도리까지 할 수 있었단 말이지.


그러나 갑작스럽게 닥친 경제위기는 서민의 기본적인 삶 자체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어. 5,60년대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다시 우리의 화두가 돼버린 거지.

평생직장이라 생각하며 자기 맡은 일에 성실히 일하며 살아왔는데도 말이야. 열심히 일하면 나와 내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 이런 게 바로 노력의 배신이라는 걸까? 아무튼.


바늘구멍이 된 취업과 일상화된 실업 속에서 더는 자신에게 주워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에 어려운 세상 되었어.

자기 밥그릇 조차 유지하기 힘들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에게 주워진 삶을 살아야 할까? 또 자신에게 주워진 역할은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




과거처럼 자신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분명 한계는 존재하기 마련. 그 한계를 너머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분명 주변 사람들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세상이 온 거야.


아버지 세대처럼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떠안고 책임져야 하는 시대를 끝내고 서로 도와가고 위로하며 이 험난한 파고를 넘어야만 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거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유대관계 즉 사랑이 아닐까 해. 서로 이해하고 돌보며 애정 어린 관심만이 이 어려운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원천이라 할 수 있지.


세상이 빨리 돌아가든 천천히 돌아가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바라는 방향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만이 중요할 뿐.

그것을 느낄 수 있다면 아무리 자신이 힘든 위치에 서 있더라도 끝까지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사랑의 힘. 나와 당신이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이미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을지 모를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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