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으로 시작되는 주말이 다가오면 ‘이번 주말은 어떻게 보낼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해. 그러면 본능에 충실한 내 몸은 소파에 종일 누워 TV를 보거나 밀린 잠을 자는 것을 추천하지.
만약 그런 주말을 보내는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할 일이 그렇게도 없니?’하고 혀를 찰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이런 마음, 과연 나만 그럴까? 주말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누구나 굴뚝같을 거야.
물론 현실의 주말은 엎드려 자고 있는 나를 일으키기에 바빠. 그래도 산소호흡기와 같은 주말이 있다는 건 정말 축복받을 일이야.
우리에게 ‘주말은 쉬는 날’이라고 말하신 주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우린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쉰다는 개념조차도 모른 채 쓰러지는 순간까지 어디선가 일만 하고 있지 않을까? 오. 주여~
이렇게 축하(?) 해야 할 일이 매주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금요일 오후가 되면 아무 이유 없이 기분부터 좋아져. 심장이 콩닥콩닥 뛰는 일이라도 있는 거냐고? 그런 일은 처녀총각 때나 있는 일. 퇴근 후 곧바로 집으로 달려갈 뿐이야. 난 오리지널 집돌이니까.
집에는 항상 나를 목 빠지도록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가 있어. 내일부터 주말이라는 사실에 아이는 손뼉 치며 좋아하지.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도, 하기 싫은 회사일 안 해도 되는 주말. 그런 주말이 있기에 평소보다 조금 더 여유 있는 저녁을 즐기고, 오늘 일어난 작은 이야기에 서로의 귀를 기울이게 되지. 그것만으로도 내 주말 기분은 한층 즐거워져. 그 어떤 만찬도, 모임도 부럽지 않아. 오직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시간이니까.
이런 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내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가 있더라도 얼른 아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 아닐까? 물론 그들과의 삶이 매번 달콤하지 않지만 분명한 건 내 삶에 새로운 기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야. 그렇게 난 사탕 같은 단맛에 취하며 살아가고 있어.
인생의 절반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 인생의 쓴맛 단맛, 다 겪어본 건 아니지만 세상은 분명 냉정하고 차가운 부분이 많은 곳이야.
TV나 각종 매체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는 인간을 향하고, 인간을 위한다고 말하지. 하지만 그 이면을 살짝 뜯어보면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기 위한 이미지 홍보일 뿐 실제 그런 세상은 아직 오지 않고 있어.
내가 몸 바쳐 일하고 있는 조직 또한 ‘다 너를 위한 일이라고,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라며 따뜻하게 감싸는 듯 말 하지. 하지만 대부분 그들의 목적과 이익을 위한 말일뿐 ‘나’라는 존재는 나이 먹어갈수록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로 여길뿐이야.
그런 숨겨진 단면을 모른 채, 세상에 갓 입사했던 우리는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어. 일에 치이고 사람에 속으며, 세상과 인간을 원망할 뿐이었지.
냉면에 뿌린 적정량의 식초는 우리의 입맛을 돋워주지만, 과도하게 넣은 경우 우리에게 쓴맛으로만 기억될 뿐이야. 불행히 세상의 첫맛도 그런 맛이었어. 감히 내 인생에 허락도 없이 식초를 팍팍 넣은 그런 맛. 우린 그런 세상의 쓴맛에 괴로워하고 있지.
그런데 그것도 맛이라고, 쓴 맛에 점차 익숙해질 때쯤, 세월은 내게 ‘경험’이라는 선물을 주었어. 그건 삶에 대한 노하우랄까? 덕분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인간의 습성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지.
세상에 대한 경험이 쌓여 갈수록 쓴맛은 ‘원래 그런 맛’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고, 감각은 점차 무뎌진 채 세상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어.
쓴맛을 통해 ‘경험’이라는 선물을 얻었으니, 이제 좀 세상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던 중 예상하지 못한 내 몸의 이상 신호가 느껴졌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세월은 나의 건강을 야금야금 먹어가고 있었던 거야.
나이 40 되면 한번 꺾인다는 세간의 소문은 사실이었어. 나이도 세월을 속일 수 없었던 거야.
처음엔 단순히 몸의 기력만 떨어졌지만 몇 년 후엔 혈압이 높아지는 증상이 생기고 말았던 거야. 혼자만의 노력으론 개선 아니,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 결국 약의 힘을 빌려야만 했지.
감기 걸렸을 때만 먹었던 약에 내 건강을 맡겨야 한다는 그 사실에 첫 슬픔이 밀려왔어. 아 이렇게 나도 병들어 가는구나. 나도 별 수 없구나 하는 처절함까지 말이야.
밥 먹듯 꾸준히 먹어야 하는 약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삶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 또한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어. 약에 담보라도 잡힌 듯 내 삶을 연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눈물도 핑~ 돌기까지 했어.
그런 게 나이 듦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세월이 야속하더라~’는 노랫말까지 떠올랐어.
중년의 나이가 되어보니 세상이라는 것, 세월이라는 것은 결코 내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세상에 공짜는 없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게 세상 이치라고 말하지만,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그 뒷맛은 항상 씁쓸할 뿐이야.
달콤하지 않은 세상과 야속한 세월이지만, 신이 내게 부여한 삶까지 원망할 수는 없었어. 여기까지 걸어온 것만으로도, 견뎌 온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해하고 기특하게 여길 일들이 많으니까.
그 누구도 쉽게 살아온 인생은 없으니까. 각자 자신의 삶을 버티고 이겨내며 살아온 그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 자신의 모습이 있는 거니까.
‘그 말, 당연한 거 아니에요?’ ‘누구나 그렇게 살지 않나요?’ 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인생의 쓴맛이나 매운맛을 덜 본 사람일 거야.
그런 사람에겐 일일이 대응할 가치조차도 못 느껴. 곧바로 어마 무시무시하게 무시하면 되는 거지.
내 인생을 사랑하는 일에 더는 인색하지 않았으면 해. 진짜 사탕이 아닌 사탕발림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설사 사탕발림이면 어때? 내 인생인데.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말이야. 아무리 타인이 나를 위로하고 사랑한다 말한들 스스로를 사랑하고 위로할 수 없다면 내 인생을 진정 사랑하고 인정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내 삶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부드럽게 세상을 살고 싶다면, 가끔 내 입에 사탕발림 같은 위로와 사랑해라는 말 한번 건네보는 건 어떨까? 그것이 남아있는 내 인생을 조금 더 달콤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살아갈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