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말이 맞아. 그리고 그것의 교훈은 ‘남들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라’인데,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 외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생각하지 마라’는 거야.”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였어. 업무와 연관된 사람들 모임에 참석한 뒤, 몇 달이 지나 우연히 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지. 그 소문은 이랬어.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는데 몇 달 지내보니 사람 참 좋네”
그러면서 처음 봤을 땐 긴장했다나 뭐라나.
뒷말은 좋았지만 앞에 말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 하지만 어쩌겠어. 나도 그렇게 보이는데. (슬픔)
그런데 만약 인상만큼이나 성격도 더럽고 까칠했다면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거봐 내 말이 맞지?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나를 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착하다’ ‘생각보다 순하다’ ‘까다롭지 않다’는 등 사골처럼 우려낸 나의 매력을 맛보게 되지.
하지만 문제는 첫인상이 99.9% 모든 걸 좌우하는 소개팅이었어.
아무리 비싼 옷을 입고 나가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직장에 다녀도 ‘소개팅의 완성은 외모’라는 말도 안 되는 말 때문에 쓰디쓴 커피만 마시고 나와야 했지.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차라리 사골곰탕 한 그릇 떠먹으며 내 매력을 우려낼 기회를 달라 말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이 멘트 좀 괜찮네)
첫 만남부터 사골곰탕을 먹지 않았지만 나의 진면목을 대번 알아보고 수렁에서 구제해 준 아내가 갑자기 고마워졌어. 막 하트라도 날려주고 싶은 심정이야.
이렇게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오류를 범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첫인상으로 상대방을 판단해버리는 일이야.
마치 점쟁이라도 된 듯 온갖 상상과 추측이 난무하는 험담으로 열띤 대화의 장을 만들지. 상상력은 이럴 때 쓰라고 준 능력은 아닐 텐데 말이야.
그 오해로 인한 보이지 않는 피해는 당연히 당사자의 몫이야. 남에게 그렇게 보이려고 한 것도 아닌데, 벌써 상대는 상상을 초월한 SF급 소설을 쓰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 아니겠어? 따로 해명하는 것도 우습고.
사실 남의 시선에 신경 안 쓰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를 드러내며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라는 거대 조직을 생각해보면 톰 크루즈 형님도 성공하지 못할 임파서블 한 미션이야.
알다시피 자신의 본모습과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간 곱게 보는 시선보다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을 더 받게 될 것이고,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에 의해 어디론가 사라지게 될 뿐이지.
실제 20여 년간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그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봐온 내가 내린 결론이야.
남이 보는 내 모습. 내가 보는 내 모습. 과연 어떤 모습이 내 진짜 모습일까? 거울 앞에 서서 요리조리 몸을 돌려봐도,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어봐도, 내가 본모습과 남이 본모습은 희한하게 같지 않아.
내 생각과 행동으로 드러난 내 모습 또한 남이 바라보는 모습과 같을 수 없어. 그럼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일까? 아니, 진짜 내 모습이 있기는 한 걸까? 만약 있다면 남이 나를 보는 대로 보이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어.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데 여러 등장인물의 감정을 드려낸 일종의 가면이지.
심리학자 ‘융’은 이 개념을 통해 사람은 현실과 자신 사이의 괴리를 이 가면을 통해 극복해 낸다고 해.
또한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여러 종류의 가면을 가지게 되는데 주로 타인에게 인정받거나 사랑받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고 해. 정말 사회생활하거나 연애할 때 잘 활용하면 이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고마운 능력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아무리 좋은 능력도 남발하거나 지나칠 경우 숨겨져 있던 역효과가 드러나기 마련이야. 적재적소 잘 사용하던 가면이 어느새 자신의 맨 얼굴마저 가리게 될 경우, ‘자아’ 마저 잃어버리게 되고 내 안의 나와 연락마저 끊기게 되는 거지.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삶은 허무해지고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돼.
설사 자신의 본모습을 찾았다 한들 남들은 그런 너의 모습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아. “너 변했니?” “어디 아파?”라고 말하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 버리지.
그럼 “이게 원래 나야. 내 모습이야” 하고 당당히 나서기라도 하면 참 좋으련만, 우린 그 말에 또 흔들리게 되지.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나?” “이게 정말 내 모습일까?” 하고 말이야. 그러다 남들에게 보였던 예전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곤 하지.
물론 나도 모르는 나의 장점을 누군가 보고 좋아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알아내 지속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끔 노력해야 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말이야.
하지만 상대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맹목적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가린 채,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만 보이고 행동한다면 정작 자기 자신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내 본모습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내 안이지만, 정작 그 자리는 텅 비어있을 뿐이지.
‘페르소나’라는 가면은 동전의 양면처럼 시의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을 주지. 하지만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게 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어.
결국 상황에 맞게, 사용해야 할 때와 사용하지 말아야 할 때를 판단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 없어. 내 삶에서 어느 때 어떤 가면을 써야 하고 어느 때에 맨 얼굴로 나서야 하는지, 복잡하고 어려운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점이라 생각해.
사실 이런 걸 다 떠나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속마음을 다 말해도, 오해하지 않고 음해하지 않으며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착해 보이는 나쁘게 보이는 가면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지구 상에 절대 없을, 세상 물정 모르는 허무맹랑한, 말도 안 되는 나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세상. 꿈도 못 꾸나? 상상력은 바로 이런 때 쓰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