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본 내 모습, 내가 본 내 모습. 무엇이 나일까?

마흔이 돼서야 깨달은 삶의 이치를 고전의 대화를 통해 말하다.

by 이로



"아, 알았어요! 겨자는 식물이에요. 그렇게 보이진 않지만 사실은 식물이에요”
“네 말이 맞아. 그리고 그것의 교훈은 ‘남들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라’인데,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 외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생각하지 마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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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였어. 업무와 연관된 사람들 모임에 참석한 뒤, 몇 달이 지나 우연히 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지. 그 소문은 이랬어.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는데 몇 달 지내보니 사람 참 좋네”


그러면서 처음 봤을 땐 긴장했다나 뭐라나.

뒷말은 좋았지만 앞에 말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어. 하지만 어쩌겠어. 나도 그렇게 보이는데. (슬픔)


그런데 만약 인상만큼이나 성격도 더럽고 까칠했다면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거봐 내 말이 맞지?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나를 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착하다’ ‘생각보다 순하다’ ‘까다롭지 않다’는 등 사골처럼 우려낸 나의 매력을 맛보게 되지.

하지만 문제는 첫인상이 99.9% 모든 걸 좌우하는 소개팅이었어.


아무리 비싼 옷을 입고 나가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직장에 다녀도 ‘소개팅의 완성은 외모’라는 말도 안 되는 말 때문에 쓰디쓴 커피만 마시고 나와야 했지.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차라리 사골곰탕 한 그릇 떠먹으며 내 매력을 우려낼 기회를 달라 말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이 멘트 좀 괜찮네)


첫 만남부터 사골곰탕을 먹지 않았지만 나의 진면목을 대번 알아보고 수렁에서 구제해 준 아내가 갑자기 고마워졌어. 막 하트라도 날려주고 싶은 심정이야.




이렇게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오류를 범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첫인상으로 상대방을 판단해버리는 일이야.

마치 점쟁이라도 된 듯 온갖 상상과 추측이 난무하는 험담으로 열띤 대화의 장을 만들지. 상상력은 이럴 때 쓰라고 준 능력은 아닐 텐데 말이야.


그 오해로 인한 보이지 않는 피해는 당연히 당사자의 몫이야. 남에게 그렇게 보이려고 한 것도 아닌데, 벌써 상대는 상상을 초월한 SF급 소설을 쓰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 아니겠어? 따로 해명하는 것도 우습고.


사실 남의 시선에 신경 안 쓰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를 드러내며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사회라는 거대 조직을 생각해보면 톰 크루즈 형님도 성공하지 못할 임파서블 한 미션이야.


알다시피 자신의 본모습과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냈다간 곱게 보는 시선보다 따갑게 느껴지는 시선을 더 받게 될 것이고,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에 의해 어디론가 사라지게 될 뿐이지.

실제 20여 년간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그런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봐온 내가 내린 결론이야.


남이 보는 내 모습. 내가 보는 내 모습. 과연 어떤 모습이 내 진짜 모습일까? 거울 앞에 서서 요리조리 몸을 돌려봐도,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어봐도, 내가 본모습과 남이 본모습은 희한하게 같지 않아.


내 생각과 행동으로 드러난 내 모습 또한 남이 바라보는 모습과 같을 수 없어. 그럼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일까? 아니, 진짜 내 모습이 있기는 한 걸까? 만약 있다면 남이 나를 보는 대로 보이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어.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하는데 여러 등장인물의 감정을 드려낸 일종의 가면이지.


심리학자 ‘융’은 이 개념을 통해 사람은 현실과 자신 사이의 괴리를 이 가면을 통해 극복해 낸다고 해.

또한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여러 종류의 가면을 가지게 되는데 주로 타인에게 인정받거나 사랑받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고 해. 정말 사회생활하거나 연애할 때 잘 활용하면 이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고마운 능력이 아닐 수 없어.


하지만 아무리 좋은 능력도 남발하거나 지나칠 경우 숨겨져 있던 역효과가 드러나기 마련이야. 적재적소 잘 사용하던 가면이 어느새 자신의 맨 얼굴마저 가리게 될 경우, ‘자아’ 마저 잃어버리게 되고 내 안의 나와 연락마저 끊기게 되는 거지.


그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삶은 허무해지고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돼.


설사 자신의 본모습을 찾았다 한들 남들은 그런 너의 모습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아. “너 변했니?” “어디 아파?”라고 말하며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 버리지.


그럼 “이게 원래 나야. 내 모습이야” 하고 당당히 나서기라도 하면 참 좋으련만, 우린 그 말에 또 흔들리게 되지.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나?” “이게 정말 내 모습일까?” 하고 말이야. 그러다 남들에게 보였던 예전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곤 하지.


물론 나도 모르는 나의 장점을 누군가 보고 좋아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알아내 지속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끔 노력해야 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말이야.


하지만 상대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맹목적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가린 채,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만 보이고 행동한다면 정작 자기 자신은 어디에 있는 걸까? 내 본모습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내 안이지만, 정작 그 자리는 텅 비어있을 뿐이지.


‘페르소나’라는 가면은 동전의 양면처럼 시의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을 주지. 하지만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게 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어.


결국 상황에 맞게, 사용해야 할 때와 사용하지 말아야 할 때를 판단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 없어. 내 삶에서 어느 때 어떤 가면을 써야 하고 어느 때에 맨 얼굴로 나서야 하는지, 복잡하고 어려운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점이라 생각해.




사실 이런 걸 다 떠나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도 속마음을 다 말해도, 오해하지 않고 음해하지 않으며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착해 보이는 나쁘게 보이는 가면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지구 상에 절대 없을, 세상 물정 모르는 허무맹랑한, 말도 안 되는 나의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세상. 꿈도 못 꾸나? 상상력은 바로 이런 때 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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