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재미있겠다. 나도 저 말들 중에 하나면 좋겠다! 저 게임에 낄 수 있으면 졸 이라도 상관없어. 물론 여왕이면 제일 좋지만.”
(거울나라의 앨리스 중)
한 때 ‘힐링’이라는 콘셉트로 유행했던 TV 예능프로그램이 있었어. 연예인부터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을 초대해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프로그램으로 당시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지.
그 참석자 중 법륜스님이 출연한 적이 있었어. 그러자 사회자 한 명이 자신이 평소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던 질문이 있다며 스님에게 질문을 던졌지.
“우리는 왜 태어났냐? 그런 생각을 요즘 가끔 한다. 사춘기 때도 했지만 지금도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라며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했었어.
우리가 왜 태어났냐니?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나? 태어날 만하니까 태어난 거 아닌가? 머리가 달린 인간이라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법한 질문이었지만, 하루하루 무언가에 쫓기는 삶을 살았던 나에겐 시간의 사치나 다름없었어.
결국 유치원생 수준의 대답만이 내 뇌리를 스쳐갔고, 나이만 먹었지 생각의 깊이는 접시에 담긴 물보다 얇디얇구나!라는 한탄을 하며 스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지.
스님은 이미 답이 나와있다는 듯 말을 했어.
“순서가 바뀌었다. 이유가 있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 태어났기 때문에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라며 “태어나는 데는 이유가 없다. 이미 삶은 주어져 있고, 주어진 삶을 즐겁게 살든, 괴롭게 살든 우리가 선택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를 문제 삼지 말고 어떻게 태어났든 태어난 존재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라는 말을 했어.
오~멋지다. 바로 저거야!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었네. 철학자처럼 있어 보이는 그럴싸한 대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대답은 유수와 같이 명쾌했어.
생각해보니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따로 있을까 싶었어. 부모님도 때가 되어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고, 나를 나으신 건데 나 같은 아이를 낳고 싶어서 나으셨을까 하는. 다소 운명론 같은 그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거렸지.
물론 각자가 생각하는 태어난 이유는 다 다들 수 있어. 하지만 그 역시 태어난 이후의 문제일 뿐. ‘신’이라면 모를까, 우린 절대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끔 태어난 거였어.
스님의 말처럼 세상에 태어난 이유에 대해 고민하지 말고 현실에 집중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스스로에게 태어난 이유를 자꾸 묻게 끔 만들고 있었어.
원하는 데로 바라는 데로 노력하면 대부분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우리 부모세대와 달리, 지금의 청년들과 그 부모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어.
오직 대학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반납한 채 공부에만 매달린 아이들. 하지만 그들을 받아줄 자리는 점점 줄어만 가고 남들이 말하는 ‘평범한 삶’ 조차 헛된 꿈이 돼버린 채 스스로를 위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그 자식에 비해 비교적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고 있는 부모들. 하지만 오랜 경기불황과 함께 불어 닥친 명예퇴직으로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은 부모들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불안한 삶을 살게 되었지.
이 세상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막다른 골목이라고 느낄 때, 우리는 왜 이런 세상에 태어났는지 의문을 품으며 회의감까지 들기도 해. 그러다 주변 사람들의 외면까지 더해질 경우,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상황까지 맞이하게 되겠지.
우리가 왜 사는지, 왜 이런 세상에 태어났는지에 대한 성찰이나 사유는 인간이라면 한 번쯤 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힘든 현실 속에서 나온 질문이라면 스스로를 자멸의 길로 안내하는 지름길에 불과할 뿐이야.
그런 와중에 스님이 말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이제 전혀 평범하지 않은 오히려 금수저로 태어난 특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은 의미가 돼버렸어. 우리가 흙수저로 태어나길 바란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스님이 말한 태어난 이유를 묻지 않고 행복한 삶을 선택해 살 수 있는 걸까? 지금이라도 우리의 작은 힘들을 모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당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비록 저자가 행복전도사나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조금이나마 그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난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후부터 행복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어. 물론 아내를 만나기 전에도 즐겁고 행복한 일들이 있었지만 주로 일회성으로 끝났고, 꺼진 촛불처럼 아련한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지.
거기에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나이와 비호감에 가까웠던 외모. 내성적인 성격. 거기에 잦은 연애 실패로 자존감은 이미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상태.
급기야 ‘난 왜 이럴까? 왜 이리 못났을까?’ 하는 자기 비하에 빠지기 시작했고, ‘왜 이런 세상에 태어났을까?’ 하는 답답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지. 그러다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님까지 원망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결혼 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행동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어.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로 변하기 시작한 거지.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아내 덕에 떨어졌던 나의 자존감은 점점 살아나기 시작했어. 거기에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의 도움으로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며 긍정의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기 시작했지.
서로 아껴주고 위해주는 삶 속에서 즐거운 일들은 마구 샘솟기 시작했고,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인해 유대관계는 더 단단해졌어.
그런 관계 속에서 난 스스로의 위치와 존재를 깨닫게 되었어. 풍족하지 않았지만 일상 속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혼 전 나를 괴롭혔던 존재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지. 아니 필요조차 못 느끼게 된 거지.
이런 내 이야기를 ‘사람은 역시 결혼을 해야 해’ 쯤으로 해석해버린다면 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주길 바라. 결코 그런 뜻 아니라는 거 알지?
우린 많은 사람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어. 특히 가까이 지내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존재를 느끼며 살고 있지.
하지만 삶이 힘겨울수록, 버티기 힘들수록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예전보다 떨어지게 마련. 그럴수록 서로 보듬어주고 위로해주는 그런 관계만이 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조금이나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설사 인생이라는 체스판에서 우리가 왕으로 태어나더라도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왕으로 태어난 걸 후회하게 될 테니까.
졸로 태어나든 왕으로 태어나든 중요한 건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 어쩌면 우린 자신과 더불어 서로에게 행복한 존재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아닐까? 오직 ‘신’만이 알고 있을 내가 태어난 이유, 이제 나도 조금은 알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