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나를 사랑하라' 말한다.

마흔이 돼서야 깨달은 삶의 이치를 고전의 대화를 통해 말하다.

by 이로



“나처럼 생겼어? 정원에 또 다른 여자애가 있다니!”
“음, 너처럼 이상하게 생기기는 했어. 하지만 너보다 더 빨갛고 꽃잎은 더 짧은 거 같아”
“그 꽃은 달리아처럼 꽃잎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너처럼 어수선하지 않아”
“그게 네 잘못은 아니지. 넌 시들기 시작했고, 그러면 꽃잎이 지저분해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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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물품을 정리하던 중이었어. 그러다 잠시 잊고 있었던 오래된 앨범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지. 그리고 신비한 물건이라도 발견한 듯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보았어.


거기엔 기억조차 나지 않은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의 앳된 모습이 담겨 있었어. 그런데 그들 사이로 어딘가 어설프지만 풋풋한 향기(?)를 내뿜고 있는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지.


내 손발은 순간 오그라들었고 ‘내가 저렇게 촌스러웠다니, 저건 내 모습이 아니야’ 하며 얼른 앨범을 덮어버리고 싶을 정도였어.


그래도 다림질이라도 한 듯, 팽팽했던 피부는 나름 볼만했어. 포샵도 없고 스킨 하나로 남자의 얼굴을 완성하던 시대에 이 정도면 선방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런데 이 사실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나름 꿀 피부였다는 사실 말이야. 그때 알았더라면 이성에게 좀 더 어필했을 텐데. 아까비~




뉴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이라는 그룹이 맹위를 떨치던 20대 초. 그때만 하더라도 마흔, 아니 서른 살의 내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생각했지. 의심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매끈하고 촉촉한 내 피부는 영원할 거라 생각했어.


이런 약도 없는 근자감에 빠진 난, 젊음 하나만 믿고 내 피부의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아. 소중한 걸 잃어봐야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야.


그렇게 서른을 넘어 마흔의 내 피부를 위해 모든 걸 양보하던 중 아뿔싸! 내 피부만 푸석푸석해진 게 아니었어.

마흔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어느 날, 심하게 기력이 떨어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어. 새벽 1시에 자도 벌떡 일어나 활기차게 출근하던 그때의 내가 아니었던 거야.


갑작스럽게 몰려온 알 수 없는 피곤함과 능률 저하 그리고 만사 귀차니즘까지. 딱히 어디가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애매한 느낌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지.

그렇게 한동안 내 몸을 걱정하던 중 나만 이런 증상을 느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속된 말로 ‘한풀 꺾였다’라는 말 그대로였지.


아! 나이는 속여도 몸은 못 속인다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구나! 7,80 된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몇 년만 젊었어도……”라는 말을 내가 하게 될 줄이야!


“뜨거운 여름 열기가 한풀 꺾였습니다”라고 말했던 어느 기상캐스터의 말이 떠올랐어. 내 여름 열기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고개 숙인 남자가 돼버린 느낌은 정말 비참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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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마흔을 넘어 중반에 들어선 나. 저항조차 할 수 없었던 그때를 다시 한번 돌아봤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그 느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자만감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어. 아니 인정할 수 없었어. 원래 내 모습은 이게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나이가 들면 으레 찾아온다는 병들까지 더해지자 더 괴로워졌어. 급기야 삶의 회의까지 느껴졌지. ‘어차피 병들고 죽을 몸. 아등바등 살면 뭐하나? 돈이라도 쌓아놓고 있으면 막 쓰기라도 할텐데’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야.


어쨌든, 세월에 빼앗긴 기력과 건강을 조금이나마 되찾고 유지하기 위해 작은 노력들을 하기 시작했어. 내 몸에 맞는 생활패턴을 찾아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거지.


방탕하지 않았지만, 젊은 혈기만 믿고 친구들과 돌아다니며 무리하게 마셨던 술과 밤늦게 자던 습관 등을 자제하고 오로지 나에 맞는 맞춤형 ‘바른생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어.


그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믿고 따라준 내 몸에 대한 보상이랄까. 이제 내 몸은 내가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야. 그런 생각은 곧 일상생활로 이어지게 되었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 성격과 취향에 맞는 일을 찾아 나서게 되었어.


그러던 중 관심조차 없었던 사진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세상과 일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 글을 쓰면서 내 삶과 타인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되었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그림까지 그리며 내게 숨어있는 미적 감각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했지.


관련 대학을 나오거나 소위 작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던 예술활동을, 나 같은 오리지널 아마추어 회사원도 얼마든지 배우고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야.


세상이 좋아진 탓도 있었지만, 스스로 배우고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그런 마음이 일어나도록,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관심 있는지 알 수 있게 도와준 건 바로 ‘나이 듦’이라는 선물을 준 ‘세월’이었어.


나이 든다는 건, 어쩌면 그동안 타인과 외부 세계로만 몰두한 나의 시선을 내 안으로 내 세계로, 시선을 돌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함부로 몸을 놀리지 말고 아껴, 내게 의미 있고 즐거워하는 일에 조금 더 관심을 두라는 의미로 세월의 신이 보낸 선물 아니었을까?


늙는다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계를 돌리는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질문은 이게 된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무얼 할 것인가? _ 영화배우 골디 혼




우리의 주름은 어제보다 더 짙어질 것이고 듬성듬성 자라던 흰머리는 잡초처럼 자라게 되겠지. 침대에서 일어나기는 점점 힘들어질 것이며, 말로만 듣던 온갖 병들이 곧 우리를 찾아오게 될 거야. 때마다 먹어야 할 쓰디쓴 약 또한 늘어나게 될 것이며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실망도 하게 되겠지.


그럼에도 우린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조금 더 즐겁고 의미 있는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하니까. 또 그것이 우리의 기력을 빼앗아간 세월이 준 교훈이니까.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물론이요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삶에 대한 자신감은 필수겠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역시 두말할 필요도 없겠고.


우리의 꽃잎 또한 지금보다 더 시들고 지저분해지겠지. 하지만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예쁘다’는 법륜스님의 말처럼, 외적으로 축소된 자신의 역량과 기운을 내면으로 돌릴 수 있다면 그로 인해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어떤 가을에 열리는 단풍보다 더 진하고 생기 있는 인생의 단풍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인생 책갈피에 껴두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그런 인생 말이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에게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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