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리고 여기

지금의 삶에 충실하고 치유하며 살아가는법

by 이로

아내와 아이가 처제 집에 머물러 있던 어느 주말. 모처럼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던 나는 평소 자주 보지 못했던 TV를 켜놓고 채널 돌리기에 여념 없었다.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엄지손가락과 좌우로 움직이는 눈동자는 모 케이블 방송에서 재방송 중이던 '무한도전'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프로그램이 종료된 지 꽤 되었지만 평소 애청자였던 한 사람으로서 그냥 채널을 돌린다는 것은 내 취향에 대한 일종의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내 속마음을 알아차린 TV는 드디어 낚았다고 생각한 듯 내 영혼을 조금씩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날 내가 본 내용은 종료를 얼마 앞둔 무한도전이 멤버들의 친구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는 콘셉트로 진행되었다. 그중 조세호(분)가 월정사 템플스테이에서 1박 2일 동안 묵언 수행하는 미션을 보게 되었다.


그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말조차 해서는 안된 다는 다짐과 이를 어길 시에는 3천 배를 해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약속을 하게 된다. 돌부처 같은 굳은 결심을 한 조세호. 하지만 '글로 쓰지 말고 말을 하라'는 혜안 스님의 꼬드임에 빠져 겨우 근질근질 참고 있던 입 봉인을 스스로 해제해버린다. 둑방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그의 말은 말 그대로 청산유수. 본업인 개그맨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는 무한도전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프로그램 종료라는 사실이 막막하고 불안했는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스님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하고 있는 이 일..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없는 때가 올 텐데.."


그러자 스님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고민하지 말아라. 오직 할 뿐"

"그냥 하면 돼요. 꾸준히"


라고 말하며 말이 아닌 '행동'의 중요성을 말했다.


사실 여기까지 봤을 때만 해도 어디서 한 번쯤 들어봄직한 그냥 좋은 말이라 생각했다. 수분크림처럼 내 피부 깊숙이 침투해 윤기가 번지르르하게 흐를 정도가 아닌 눈과 귀에만 번지르한 정도? 그저 책 좀 많이 읽어본 스님이 하는 말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깨달음'이라는 본편을 보기 위한 쿠키영상에 불과했다. 그 후 내게 들려온 스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내 몸 안에 잠자고 있던 신경세포가 감전된 듯 짜릿한 전율을 경험하게 할 깨달음을 선사해 주었다.


묵언을 지키고 싶은 자신을 꼬드겨 말을 하게 만든 스님 덕분에 벌칙으로 108배를 한 조세호. 그는 다시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스님은 말한다.


"108배 자체를 두려워할게 아니라 할 말은 해야 되는 거예요"


아, 사실 여기까지 시청을 했지만 부끄럽게도 무슨 뜻인지 깨우치지 못했다. 다만 내가 모르는 그 무언가가 내 안으로 점점 파고들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다.


조세호는 스님과 걸으며 묻는다. 당장의 헤어짐이 눈앞에 있는데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려 하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라고. 그러자 스님은 차분한 어투로


"Now & Here"


라고 짧게 말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것. 현재의 자신에 확신이 있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잘해왔고 앞으로도 그대로 하면 돼요. 아무 걱정할 필요 없죠"



이 말을 듣자 아리송함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머리가 총 맞은 듯 일순간 뻥 뚫린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스님이 하신 말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내가 지금 묵언 수행을 하든, 벌칙으로 108배를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순간,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충실히 보내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게 한다면 미래 또한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전제조건이 있었다. 현재 자신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것. 이것이 동반되지 않으면 앞으로 잘해나갈 수 없을 거라는 뉘앙스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고 있었던가?'

이 물음 앞에 방금 전에 느꼈던 해탈의 쾌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 뒤에 가려져 있던 커다란 질문의 벽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 '카르페 디엠' ( Carpe diem )은 라틴어로 '즐기다, 잡다, 사용하다'라는 의미의 카르페(Carpe)와 '날'을 의미하는 디엠(diem)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잡다'라는 단어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늘을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잡아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나에겐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사실 유수와 같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내가 먼저 잡아야 할 건 바로 '나'였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며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 들지만,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불안하고 갑갑해져 갔다.


어느 저명한 학자가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하지만 지금 당장 내가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과 사고를 보고 있노라면 내 몸 어디선가 한 숨 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리고 난 이제 나이 먹는 일만 남았다며 스스로를 체념하고 좌절하며 힘든 하루를 겨우 버티기도 했었다.


결국 그것들이 한 대 모여 내 안의 나를 흔들기 시작했고 그런 불안감을 숨긴 채 가장으로서 남자로서 살아가야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 또한 불안한 미래를 대비한다는 명목 아래, 부족한 나를 다그치기 바빴고, 그럴수록 내 모습 어딘가에 알 수 없는 그늘이 드리우기도 했다.


결국 나에 대한 확고한 믿음,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확신이 바로 내가 잡아야 할 그것이었다. 그것이 전제되어있지 않는 한 '지금'이라는 이 순간은 뜬구름을 잡기 위해 허공에 대고 손짓하는 격이며, 바닷물에 쓸려가는 모래성을 잡고 싶지만 모래알만 잡는 격이었다.





비록 한 번도 뵌 적 없고 이름조차 생소한 스님의 그 말 한마디는 마음이라는 대지에 '나'라는 나무를 뿌리 깊게 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스님이 말한 '지금까지 잘 해왔고 앞으로 그렇게 하면 된다'는 흔하디 흔한 말이 나에 대한 확신의 근거가 되었다. 그렇다. 나에 대한 확신은 방금 전까지 걸어온 나의 과거가 말을 하고 있다.


또한 밤새도록 밑줄 쳐가며 달달 외웠던 물리학 법칙 중 하나인 관성의 제1법칙도 우리 삶에 적용된다고 말하고 싶다.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 한다는 그 법칙은 지금까지 우리가 굴러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굴러갈 것이며, 더 나아가 잘 살아갈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관성의 법칙처럼 평소 80km 정도의 속도로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그 보다 조금 가파른 길(불행)을 만날 때도 있고, 달리기 쉬운 내리막길(행복)을 만날 때도 있다. 그것이 삶의 곡선이라 말하고 싶다.


달리는 자동차도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와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 때가 있지만 결국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달린다. 우리 삶 또한 관성의 법칙에 의해 돌아가는 것뿐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니 이제 조금은 내려놓아도 된다. 다 내려놓을 필요도 없다. 반에 반, 그 이하도 괜찮다.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어제와 다른 새로운 나의 삶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내려놓은 만큼 내 앞에 주워진 시간에 충실하며 조금씩 내 삶을 채워나가면 된다. 다 채울 필요도 없다. 내 삶을 가득 채울 만족이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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