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by 이로

일 년간 친구와 팟캐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첫 책을 출간한 친구는 책 홍보 목적으로 팟캐스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내게 함께 하자는 제의를 했다. 친구의 제안은 무척 흥미로웠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웠다. 노래방에서 마이크만 잡아본 내가 감히 녹음실에 앉아 정해진 대사를 읽고, 진행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거기다 긴장되면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던 나는 혹여 친구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 것도 사실. 하지만 우리가 유명인사도 아니고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니, 편히 즐긴다는 생각으로 하자는 말에 흔쾌히 응하게 되었다.


녹음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대본에 있는 자신의 역할에 제대로 몰입하기 위해 냄새나는 발연기도 서슴지 않았고, 수시로 빵빵 터지는 애드리브는 생각하지도 못한 재미를 더해 주었다. 어떤 날은 너무 웃다가 녹음 시간을 초과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잘 진행되다가도 한 번씩 대사를 더듬는 나로 인해 진행이 매끄럽지 못한 상황도더러 있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괜찮다, 재미있다는 반응에 힘입어 계속 진행했다. 유재석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입담이 뛰어난 멤버 3명이 추가로 영입되면서 녹음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던 어느 날. 친구는 단체 카톡방에 팟캐스트에 올라온 댓글 하나를 올렸다. 그 글은 평소 우리 팟캐스트에 많은 관심을 보인 독자 한 분이 올린 글이었다.


그런데 평소 올렸던 응원의 댓글과 달리 그 글에는 뼈와 가시가 있었다. 그분은 평소 자신의 귀에 거슬렸던 멤버들의 단점 하나하나를 지적했다. 일 년이 다돼가도록 개선되지 않는 나의 말 더듬는 습관에 대해 지적한 글도 있었다. 물론 전체적으로 더욱 잘하라는 의미의 댓글이었다.


친구는 의기소침해 하지 말고 조금 더 잘해보자는 의미로 올렸다고 했다. 처음엔 나도 한 개인이 올린 댓글이라 참고만 하고 그냥 넘기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지적은 내가 간단히 넘길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러자 잠시 잊고 있던 말더듬이라는 내 아킬레스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그 움직임은 알량한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 순간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을 테니까.


댓글을 보기 전 행복 모드였던 내 기분은 순간 진지모드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즐겁다고 팟캐스트를 계속하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그만둬야 하는 게 맞는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 고민 끝에 친구에게 팟캐스트를 진행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 친구는 나의 반응에 놀랬고, 마치 자기 잘못인 양 나에게 미안해했다. 그러면서 같이 하자는 말도 꺼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지적은 내 부족함 때문에 일어난 일로 그 친구의 잘못은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도 나의 하차를 만류했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평소 숨겨져 있던 내 단점이 드러난 것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친구가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렇게 멤버들에게 여러 차례 내 생각을 말한 뒤, 난 그 자리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내가 말을 더듬기 시작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초등학생 시절, 선생님은 수업 중에 내게 국어책을 소리 내 읽으라는 말씀을 하셨다.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갑자기 말을 더듬기 시작하더니 이내 말문이 막히듯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고개 숙인 채 우두커니 서있던 내게 선생님께서는 조용히 앉으라는 말을 하셨다.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라 잊을 법도 하지만, 그 사건은 아직 내 머릿속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내가 왜 그때 말을 더듬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조용하게 보낸 날이 별로 없던 가정에서 받은 크고 작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말을 더듬기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커가면서 증세는 호전되기 시작했고,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을 주지도 않았다. 다만 이번 일처럼 여러 사람 앞에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너무 긴장할 경우 말을 더듬는 증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있었다.





우리는 평생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고 살아갈 운명에 처해 있다. 특히 가족이나 친척,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로부터 받는 아픔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과 비교적 거리가 먼 회사 동료나 친목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이 툭툭 던지는 말로 인해 뜻하지 않은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 또한 그 말이 내가 오랫동안 감춰왔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의도적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한 그저 별 뜻 없이 좀 더 잘하자는 의미로 던져진 말 일수도 있다. 어쨌든 듣는 상대방에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린 것으로 그것만으로도 화나가고 괴로울 것이다.


차라리 화라도 시원하게 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 바로 화를 낼 수 도 없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제일 싫어하고 걱정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나와 별 상관없는 가깝지도 않은 사람들이 던진 그 한마디에 쉽게 상처를 받는다. 내가 말 더듬을 지적당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보다 호전됐지만, 숨죽인 채 고이 잠들어 있던 나의 단점이 헐크처럼 일순간 폭발해 버릴 수도 있다. 자신은 그런 의도로 쓰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 말은 상대 가슴에 비수가 되어 그의 가슴을 파고들 수도 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처음부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면 그건 새빨간 거짓말. 하지만 마음의 비수가 되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 상황, 그리고 내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애써 부정하고 화를 낸다고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 단점 또한 지금까지 나와 함께 했었고, 또 앞으로 함께 할 나의 일부분이기에.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그 사람이 나의 이런 사연을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한 번이라도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했더라면 과연 그런 댓글을 쓸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진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하더라도 직접 얼굴을 보며 이야기했을 것이고 그럼 그럴 수밖에 없는 내 사연도 듣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근거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어느 누구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이상, 상대방이 꼭꼭 감춰둔 사연이나 아픔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마치 상대를 잘 알고 있다는 듯 편협한 생각과 말을 쏟아낸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을 구성하는 한 단면이라면 말이다.


그런 인간의 행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를 적당히 알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 비난하더라도 조금은 태연하고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내 안의 내밀한 사정을 다 알고 말한 게 아니니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 내게 어떤 과거가 있는지 물어보고 말한 것도 아니니까. 그러려니 생각해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물론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이나 추측성 기사로 인해 극단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한두 명도 아닌 수많은 사람이 쏟아내는 비난의 화살로부터 자유롭게 의지를 굳건히 지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굳건히 자신의 삶을 지키며 살아가는 연예인들도 많다. 나를 모르고 말하는 것임을 알기에,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들은 무시할 건 무시하고 대응할 건 대응하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이유 없이 부는 바람에도 울컥하는 게 사람의 마음인 것처럼 우리가 알게 모르게 받는 것 또한 마음의 상처다. 그리고 그런 크고 작은 상처를 치유하기에 우린 그리 한가하지도 않다.


그러니 우리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하는 말에 굳이 촉수를 들이대며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렇게 반응하며 살아가기엔 우리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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