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놀이터를 갈 때면 아이들이 얼마나 노는 걸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밥 한 숟갈 더 먹이고 싶어 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면,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더 놀고 싶어 하는 게 아이의 마음. 그만큼 아이에게 놀이는 먹고 자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한 때 놀만큼 놀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보다 더 놀았으면 놀았지 절대 부족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순간부터 ‘먹고사니즘’에 빠져버린 우린 그동안의 ‘놀이’와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바쁜 일상에 치이며 나조차 돌볼 여유가 없던 그때, 놀이는 생산활동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시간낭비이자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되었다. 끝없는 경쟁 속에 내몰려 남들만큼은 갖추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앞에 놀이는 하등 쓸모없는 일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정신없는 서른을 보내고, 마흔 되던 어느 날. “나도 신나게 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잘 놀았다’라고 느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 기분과 감정을 모아둔 박물관이 있다면 거기에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아득했다.
오로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내게 “나도 신나게 놀고 싶다”는 생각은 매우 생뚱맞았다. 내가 혹시 배부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게 잘 사는 것과 잘 노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잘 살고 있다고 해서 항상 잘 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잘 놀고 있다고 해서 항상 잘 사는 것 또한 아니었다. 하지만 잘 사는 것과 잘 노는 것 모두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필수요건임은 분명했다.
우리에게 매일 주어지는 오늘 하루는 항상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것들로 말이다. 그러다 자신의 이기적인 즐거움을 위한 행동은 한마디로 언감생심이 돼버린 지 오래.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삶의 즐거움과 행복은 다 다르다. 자신이 즐겁다면 행복하다면 그것이 바로 정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은 진정한 놀이가 될 수 없다. 놀이는 특정한 목적이나 이해관계없이 오직 본인의 즐거움과 흥겨움이 보장된 자유로움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놀이는 단순히 ‘재미있는 시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에게도 순간의 즐거움과 쾌감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법. 자신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놀이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야 하고 어떤 놀이를 해야 할까?
사회적으로 커다란 성공이나 성취감을 안겨주는 일도 좋겠지만 평소 관심 있거나, 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조금씩 발을 담그며 작은 기쁨과 희열을 먼저 맛보는 게 중요하다.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일이 아니더라도 작은 호기심만 있다면 조금씩 시작하며 간부터 보는 것이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성과는 그다음 일이다. 먼저 자신에게 의미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면, 결과야 어떻든 과정이 주는 즐거움과 보람 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한층 즐거워질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놀이를 통해 느꼈던 신나고 즐거운 감정이 아닐까? 자신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삶의 즐거움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시간 없다는 말이나 바쁘다는 핑계는 잠시 접어두자.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담아 둔 게 있다면, 남의 눈치 때문에 미뤄둔 게 있다면 과감히 펼쳐 보자.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마흔은 세상의 평가와 잣대로부터 벗어나 당당히 자신의 날개를 펴고 올라도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내게 부여된 특권이기 때문이다. 잘 노는 아이가 행복하듯 잘 노는 어른 또한 행복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