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감정의 오아시스를 향해

by 이로

병원에서 시력검사를 받던 중 안구건조증 검사를 하게 되었다. 손톱만큼이나 얇은 종이를 동공 아래에 몇 초간 닿게 한 후 측정하는 검사였는데 왼쪽 눈은 3, 오른쪽 눈은 2가 나왔다. 정상수치가 5라는 간호사의 말에 걱정이 되어 안약이라도 넣어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평상시 건조함을 느끼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굳이 넣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딸아이 돌잔치 때 갑자기 울컥해 눈물을 보였을 정도로 눈물샘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안구는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비교적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어서 머나먼 증상이라 여겼던 안구건조증. 이젠 더 이상 남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래도 눈을 자주 감고 있으면 좋아질 거라는 아내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눈 뜨고 있으면 마치 내 몸 안의 수분이 빠져나갈 것만 같은 기분에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순간이었지만 촉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눈은 신체의 노화와 호르몬의 변화, 환경의 영향 등으로 점점 건조해진다. 눈을 자주 감거나 핸드폰을 멀리하는 습관으로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겠지만, 조금씩 메말라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문득 ‘2프로 부족할 때’라는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내 몸 안의 수분이 조금씩 메말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보이진 않지만 내 안 깊숙한 곳에 고여있을 감정의 샘 또한 궁금해졌다. 사막의 오아시스가 아닌 오아시스의 사막이 돼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세상은 사막처럼 후끈거리듯 타오르고 입이 바짝 마를 정도로 건조하다. 각자의 삶에 빠진 채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깃은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다. 거칠고 묵직한 그 무언가가 나를 밀쳐내고 있는 듯한 기분. 그런데 희한하게도 알 수 없는 그 기운이 내 안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내 안에 가두고 있었던 무시무시한 감정들이 그것들과 뒤섞여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만들어냈다. 곧 넘쳐버릴 것 같은 기세에 눌려 이를 받아줄 대상을 찾아야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변해버린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지 않으면 내가 미쳐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매끄럽고 촉촉했던 내 감정의 샘은 이렇게 목말라 가는 걸까? 사막은 원래부터 사막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로부터 전이된 그 거친 기운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건조해진 건 아니었을까?


오늘따라 유난히 거칠고 메마른 감정을 내뿜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물론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세계 평화도 좋고 인류애도 좋고 사랑도 좋지만 무엇보다 최우선은 ‘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비록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하지만 많아진 만큼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촉촉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세상 그 어디쯤에서 조금씩 오아시스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다시 한번 눈을 감아본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눈을 떠본다. 방금 보다 훨씬 촉촉하고 부드러워진 나의 시선이 느껴진다. 누군가 나를 향해 던진 거친 숨과 감정을 그대로 담아두었다가 다른 누군가를 향해 던질 필요는 없다. 솔직히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홍어처럼 내 안에서 삭히라는 말은 아니다. 그럴수록 참기 어려운 냄새만 날 테니까.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이 세상은 살벌하고 두려운 소식들로 떠들썩하다. 반면 희망차고 따뜻한 소식은 눈 씻고 봐야 할 정도로 희귀하다. 오늘도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곱지 않는 시선과 감정을 넘겨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때론 이곳이 사람 사는 세상인가 싶을 정도로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타인에게서 받은 쓰레기 같은 감정과 내 안에서 썩고 있는 그것이 뒤섞여 괴물을 만들어내더라도 걸러낼 수만 있다면, 걸러내도 괜찮다면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만약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누군가를 향해 토해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물론 그 후의 책임은 자신의 몫이다.


그러나 그 몫을 감당하기 전 한 번쯤 자신의 눈을 지그시 감아봤으면 한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눈을 떴을 때, 전 보다 한층 부드럽고 성숙한 자신의 눈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바라던 그리고 우리가 바라던 오아시스 같은 세상이 우리를 향해 조금 더 일찍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음껏 놀 나이 '마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