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일 년에 두어 번 정도 만나는 타 직원이 있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 그는 갑자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젊은 시절, 회사 일에만 전념했던 그는 월급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목돈을 모아 작은 빌라를 샀다고 한다. 몇 차례 집을 사고팔면서 점점 수익이 나기 시작했고, 현재 공인중개사가 집을 몇 채 관리할 정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재테크를 꼭 하라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돈을 모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 사진을 보여주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야 해외에도 나갈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결국 자기 자랑으로 끝난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내가 일하는 곳은 매년 정년퇴직자가 나올 정도로 나이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가끔 땅 부자, 건물 부자로 알려진 직원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젊었을 때부터 투자해 짭짤한 수익을 보고 있다고 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여도 속칭 ‘알부자’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살짝 배부터 아파온다. 매일 같은 밥을 먹었는데도 “난 지금까지 뭐 했지?” “내가 인생 잘못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방심한 상태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이런 생각들은 바로 떨쳐내기가 어렵다. 지더라도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도 이대로 가만있을 수만은 없었다. 평소 내 지론을 위협하는 사건 앞에 내가 잘 못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증거가 필요했다. 돈 모으듯 흩여 있는 생각들을 긁어모았다.
재테크를 하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취급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불나방이 되어 불속으로 뛰어들었고, 대부분은 나처럼 멋모르고 덤볐다가 크게 대였다.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재미를 본 사람들도 있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은 본능에 가깝다. 나쁜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오히려 미덕으로 통한다. 돈이 있어야 인간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삶과 직결돼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로 이득을 취한 사람들을 향해 우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사람이 아닌 돈이 벌었다고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힘없고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에 행해지고 있는 투자는 사실 투기에 가깝다. 투자와 투기는 내가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일정 부분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는 면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인의 사익만을 추구했느냐는 점이다. 실 거주가 아닌 자산증식을 위해 싼값에 사서 비싼 값에 팔아 돈을 버는 행위는 분명 투기이다. 그로 인해 잠재적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을 나무라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 있고 경제관념이 많은 사람으로 바라보며 심지어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거기에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도 한몫하고 있다.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투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있다. 점점 커가는 자식, 부모와 자신의 노후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돈이 필요했다.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난 재테크를 하지 않는다. 풍족해서가 아니다. 뜨거운 맛을 본 것도 있지만, 내가 진정 투자하고 싶은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나’였다. 지난 10년간 일을 하며 틈틈이 사진 작업을 했고, 현재는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있다. 경제적인 보탬은 전혀 안 된다. 계속 돈과 시간, 그리고 열정만 쏟아붓고 있다. 이런 나를 누군가 본다면 웃고 지나갈지도 모른다. 비록 외부로 빛을 발하고 있진 않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배워가고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즐겁다. 설사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나름이다.
누구에게나 먹고사는 일은 중요하다. 돈이 많으면 지금 겪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도 있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행복도 찾아올 수 있다. 마치 인생의 만병통치약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올인 하는 건 오히려 삶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돈과 지위, 명예를 가졌어도 인간적인 자질이 부족하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우린 주변에서 매스컴에서 자주 봐왔다.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느 정도 확고하다면 이제 삶의 품격과 인격에 투자해보는 건 어떨까. 더불어 나에게 돈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삶에 어떻게 사용할 건지에 대한 고민 또한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의식의 밑바탕에 깔려있지 않는 한 우리의 삶은 자칫 공허하게 끝날 것이다. 언젠가 우리 앞에 다가올 생의 마지막 관문 앞에선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음을 이미 그대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